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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연 Mar 13. 2017

삼거리 이별

들꽃처럼 당당했던 그녀

머리에는 흰 수건,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의 얼굴, 나른한 봄날 오물오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닮은 곰방대와 담배연기..   이것은 내가 지금껏 생각할 수 있는 내 기억 속의 그녀 모습이다.

그녀는 나의 할머니 친할머니이다.


충청도 어느 농촌 마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유년 시절이었고 아직도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넓은 들녘과 황금물결 넘실대는 논과 밭 각종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는 과수원에서 망아지처럼 뛰어놀던 기억이 난다. 논과 밭이 워낙 넓다 보니 부리는 일꾼들이 많아 매일 앞마당에 일꾼들을 위한 밥상이 차려지는 것을 자주 본 기억이 나며 식구들은 늘 농사일로 바빴던 기억이 난다.


아련하게 떠 오르는 그 유년 시절 덜 익은 참외 냄새와 원두막에서 장대비가 떨어지는 소리, 겨울이면 처마마다

주렁주렁 달린 고드름을 따러 하루 종일 온 동네를 쑤시고 돌아다녔던 기억 , 어릴 적 유년 시절은 자연 속에서 마음껏 돌아다니는 그야말로 어린 망아지 같았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해가 뉘엿뉘엿 붉은 치맛자락을 드리우듯 빨갛게 물든 둑길을 걸으며 밤늦도록

노느라 엄마와 할머니에게 야단맞은 기억도 난다.


그녀는 아니 할머니는 들꽃처럼 매우 강한 분이셨다.


어느 날부터 집안에 어두운 그림자와 할머니의 한숨소리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농한기에 심심풀이로 시작한 아버지의 내기 도박은 점점 액수가 커지면서 그 많던 논과 밭이

하나둘씩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기 도박이니 굳이 갚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의 말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남에게 진 빚은

꼭 갚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며 현금다발을 자루에 담아 돌리면서 그 많은 빚을 갚았다고 나중에

친척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보통 사람이면 집안에 이렇게 큰 변화를 치르면 몸져눕는 것이 보통인데 할머니는 계속 묵묵히

나머지 농사를 짓고 밭일을 나가고 집안일을 하셨다고 한다.


장남인 아버지에게 그 일에 대해서도 원망을 하거나 소리치는 일 없이 그저 남아있는 농사일을 놓지 않으셨다 하니 여장부라고 흔히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헛말은 아닌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간에 있던 엄마도 표현은 못해도 얼마나 힘든 감정을 느꼈을지 지금 생각해 보니 짐작이 간다.

아버지의 심심풀이 내기 도박은 그 뒤에도 계속 이어졌고 어느덧 그 많던 논과 밭과 살고 있던 집마저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급기야 가족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내 위의 언니와 할머니는 시골에 남아있고 나와 동생과 오빠 그리고 부모님은 남아있는 소소한 짐들을 챙기고 서울 어느 동네로 고향을 뒤로한 채  상경을 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어렵픗이 기억에 남아있는 기억..

동네 어른들과 삼거리에 서서 오랫동안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모습.

손을 잡고 아쉬움을 표현하던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시골에서의 나의 유년 시절은 막을 내리고 어려운 서울 생활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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