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박완서 선생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고 있다. 참 좋다. 정말 좋다. 박완서 선생님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고, 와 닿고, 감동이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은 어렵지 않지만, 무게가 있다. 자기를 비추어 보는 거울 같은 글이다. 겸손하고 솔직하다. 그 거울은 내 자신도 보게 한다. 글을 쓰셨을 당시의 박완서 선생님의 연세에 느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람 마음은 똑같은지, 지금의 내 나이에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된다. 역시 좋은 글이라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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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사람은 이 모습, 저 모습, 다양한 모습들이 있어서 어떤 상황이나,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비춰지는 모습들이 다르다.
다 다른 모습들 마저도 내 모습이지만, 어느 한 면으로만 비춰지는 것이 싫을 때도 있다. 상대방이 갖는 선입견이나 혹은 성향에 따라서 나를 자기네들이 보고싶은 데로 한정 짓고 이해하는 것을 많이 느낀다. 눈에 보이는 것은 너무나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라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오래 경험해 본 사이가 아니라면 외모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런데 그것은 나도 그렇지 않은가. 나에게 보이는 상대의 모습을 내 방식대로 판단하고 이해하고 그 모습이 그 사람의 전체인 양 단정 지어버리는 일이. 혹은 내 진심과 다르게 조금은 거짓된 모습이나 과장된 모습으로 상대를 대했던 나의 모습도 떠오른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동전의 양면 같은 얄팍한 내 마음이 누군가와의 관계를 어렵게 느껴지게 한다. 명확하게 좋고 싫음을, 혹은 나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투명하게 전달하는 일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일도 이상하게 두렵고 겁이 난다. 왜 이렇게 평가에 안절부절못하게 되는지.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쳤으면 하는 바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 바람들이 나와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지럽히고 어렵게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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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고 혼탁한 내 모습을 바르게 볼 수 있으려면 아무래도 깨끗한 거울을 봐야 할 것이다.
깨끗한 거울은 어디에 있나. 어떻게 볼 수 있나.
나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혼탁한 거울을 닦아내 가며 맑아진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울은 내가 처해진 상황이나사람들이다. 그리고 내 자신을 글로 담아냄으로써 거울을 닦아가며 다시 나를 보는 것이다. 진짜 나를 보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씀으로써 나는 내 자신에게 말을 건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그리고 사람들의 평가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고, 미움을 받더라도 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고. 미움은 결국 미워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외모나 행태로 어떤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다 설명할 수 는 없는 것이라고.
몸이 약해지면서 마음도 약해지고, 스트레스에 더 취약해졌다. 까만 밤이 찾아올 때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불안과 떨림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만 같다. 까맣고 어두워서, 모든 것이 잠들어 있어서 더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럴 때 지금처럼 나만의 거울과 빛으로 나를 닦아본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지금 이렇게 잘하려는 기특한 내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글 쓰는 일을 더 자주, 더 많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