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대신 놀이터로 출근합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하던 일을 그만 둘 정도로 책임감이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책임감 때문에 저는 회사에서도, 육아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육아 휴직이 끝나고 복직하던 해 회사에서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걱정과 감사한 마음으로 뒤섞여 출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대부분 남자분들이었어요. 여자분들은 연차에 상관없이 '여직원'으로 불렸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곳에선 마치 아이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고, 공백 기간에 나왔던 문서를 뒤져가며 그동안 바뀐 프로세스에 대해 익히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지하철 타고 출근길 1시간, 퇴근길 1시간 10분. 퇴근길은 지하철 노선으로 인해 조금 더 걸렸습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여직원이었지만, 지하철을 타고나서야 저는 다시 엄마가 되었어요. 지하철에서 아이를 떠올리면, 미안한 감정과 녹초가 된 몹쓸 체력, 내가 없는 시간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어려 감정들이 한 번에 몰려왔습니다.
아이는 시부모님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희 집에 살면서 아이를 돌봐주셨습니다. 할아버지께 숫자와 한글을 배우고, 할머니께서 다양한 음식을 해주셔서 편식 없이 자랄 수 있었죠.
모든 게 문제가 없는 듯 보이고 아이도 나름 잘 자라고 있었는데, 저는 설 자리도 제 행복도 잃어버린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큰 게 아니었어요. 제 손으로 아이를 키우고, 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 오직 그 하나였습니다. 휴직 때처럼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놀고, 내손으로 하원시키고, 목욕시키고, 밥을 챙겨주는 그런 평범한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퇴근 후에는 아이와 1시간 정도 놀아주고, 씻고 잠자리 독서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시 새벽녘 저는 또다시 출근합니다. 지하철 타고 가는 내내 우울한 감정이 덮쳐왔지만, 출구로 나가는 순간 돌변해서 해서 다시 내 안에 있던 엄마의 모습을 잠재우고 '직원'으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울며 버티며, 5년. 아이는 많이 자랐어요. 하지만 더 이상 안 되겠다 생각한 건 역시 제 쪽, 저의 행복이었습니다. 코로나 시기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이렇게 아이가 커버리면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아 행복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 더 이상 회사를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부족했던 '놀이'를 위해, 추억을 쌓기 위해 회사 대신 놀이터로 출근하기로 결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