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를 바란 건 회사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놀이, 반려.

by 베니


회사는 배울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고 성과만을 바란다고 생각했다. 배울 시간도, 배울 사람도,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생각할 시간도 충분히 주지 않았다. 시간에 쫓기듯 알맹이 없는 보고서를 내면 그 결과는 당연히 반려. 몇 번의 반려는 우습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불평하던 회사와 정말 달랐을까? 아이에게 과정을 충분히 경험하게 해 주었던 걸까' 반려가 되어야 할 아이의 놀이를 보며 과정을 생략한 건 회사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조리원 동기들이 있다. 같은 해, 같은 계절에 태어난 5명의 아이들은 육아휴직 중에 종종 어울려 놀았다. 복직하고 1달 뒤, 우리만 멀리 이사를 했다. 그래도 아이들의 생일이 있는 달에는 한 번씩 모여 기념사진도 찍고 어울려 놀았다. 그중 셋은 특히 자주 모여 놀았고, 나는 오랜만에 그 모임에 가기 위해 연차를 내고 1시간가량을 운전해서 갔다.


워킹맘의 외동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놀 기회가 흔치 않다. 그래서 모처럼만에 친구들과 만나 잘 어울려 놀기를 바랐고, 한 공간에서 별문제 없이 잘 지내길 바랐다. 그런데 기대는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OO이가 내 소중한 장난감을 망가뜨렸어요. 그건 분명히 하지 말라고 얘기했는데도, 계속 자기 마음대로 해요" 당황해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본인이 그랬다고 한다. "재네들이 자기네끼리만 놀고, 내가 하는 건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니까요."


아이를 따로 데리고 가서 혼을 냈다. 친구의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같이 어울려 잘 놀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잘 어울리는 게 중요했던 나에겐 아이의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도 몇 번의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시간은 지나갔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아이한테 예고 없이 이제 집에 갈 시간이라고 말했다. 미리 말하면 안 간다고 떼쓰는 시간이 길어질까 봐 차라리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놀기를 바랐다.


헤어질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는 그곳에서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 감정을 표출했다. 집에 가고 싶지 않고, 더 놀고 싶다며 떼쓰는 아이를 통제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난감해했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자 온몸으로 울부짖는 아이를 나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한 그날의 최선은 즐겁게 놀다가 잘 헤어지는 엔딩이었다. 나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고 당연한 일이니 아이에게도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니었고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둑해진 저녁 꽉 막힌 퇴근길의 혼잡한 도로에서 집에 오는 내내 울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데, 이건 내가 바란 최선의 결과가 아니었다.


아이는 억울했던 걸까? 놀이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 완벽한 놀이는 아니었어도 오랜만에 또래들과 어울려 노는 걸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집에 간다고 미리 말해주지 않아서 화가 났던 걸까?


그날 이런 생각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나는 그저 아이가 망가뜨린 장난감과 집에 가기 싫다고 울부짖던 감정표출만을 이 모임의 결과로 인식했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수많은 놀이,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 이미 단짝친구들 사이에 갑자기 껴 놀라는 주문. 많은 중간과정을 생략한 건 나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집 근처 유아 전문 심리센터에 예약을 했다. 그렇게 놀이터로 가기 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보 같고 손쉬운 선택을 했다. 비용을 지불하고 나 대신 누군가가 내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면서. 상처를 치료하고, 배워야 하는 건 나였다는 걸 그때의 나는 정말 몰랐다. 오직 나의 노력과 나의 힘듦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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