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결핍은 우리를

by 베니


내 휴대폰에는 4살 때부터 7살 때까지의 아이 사진이 별로 없다. 시부모님께서 아이를 돌봐주던 시절부터 시터 이모님의 도움을 받은 시기에는 내가 직접 찍은 사진보다 어디선가 전송받은 아이의 사진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함께했던 시간이 적어서인지 힘들어서 기억을 못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그 시기만큼은 기억이 조금 희미하다.


그래서 나는 일 년에 몇 번 떠나는 여행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기억을 채우려 했고 오랫동안 남길 기억을 위해 여행에 집착하곤 했다. 돌이켜보니 여행이 좋아서라기보다 그때 찍은 사진과 추억들이 나를 버티게 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나는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먼 곳에서 내 행복을 찾으려 했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처럼 들지는 않는다. 물론 여전히 여행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집 근처를 산책하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작은 행복을 발견할 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계절에 상관없이 매일 같이 놀이터나 공원으로 나가 놀면서 함께 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나갔다. 장마철에는 우산을 쓰고 달팽이를 찾으려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니기도 하고, 뉴스를 보다가 슈퍼문이 뜬다고 한 날은 저녁 먹고 공부하다 말고 공원으로 달려 나가기도 했다. 벚꽃이 흩날리는 날에는 떨어진 벚꽃 잎을 주워 모아 오기도 하고, 울긋불긋 단풍이 예쁘게 들었을 때는 학교 끝나자마자 지하철 타고 가서 경복궁 주변을 산책하기도 했다.


시간의 여유가 생기자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났고 우리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친구들과 놀이를 하는 동안 기다리던 나는 주변 풍경들을 관찰하곤 했다. 매일같이 나가다 보니 어제와 다른 작고 미세한 풍경 변화들이 눈에 들어왔고 원래부터 있었던 동네의 풍경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비슷하게 닮아간다. 자신의 속도로 자라기 때문에 여전히 아이다운 모습이지만 여유와 안정을 찾은 나처럼 아이도 조금씩 나와 어딘가 닮아가는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


목표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시간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런 목표 없이 그 시간자체를 충실히 살아가는 날들도 우리에게는 중요했다. 목표 없이 그저 함께하는 시간, 그 시간을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 넣었고 그것을 발판 삼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 대신 놀이터로 출근합니다> 브런치 연재를 마칩니다. 다음 주 에필로그로 마무리할게요.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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