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사마귀

by 보리

사마귀



내가 너를 사랑한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내가 너를 사랑하게 둔

내가 문제였을까



너는

사랑을 끝내고

나를 먹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잘 익은 심장까지

사랑했던 순서대로

나를 음미했다.



너의 입이

나를 삼키기 전까지

나는 끝내

사랑이라 믿고 싶었다.



사랑은

때때로 희생을

입에 물고 웃는다.

그 웃음이 너무 다정해서

나는 끝까지 도망치지 못했다



막무가내로 깊어진 한낮

너 없는 나는

사랑과 증오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 하나 들고 서있다.


사마귀4.jpg





봄이 오면

초록빛 작고 예쁜 사마귀가 나타난다.


가을이 깊어지면

사마귀는

낙엽의 색을 닮아가며, 잔잔히 물든다.


꽃 사이에도, 통창 앞에도

긴 앞발을 곧게 세운 사마귀는

제법 위협적인 기세로 서 있다.



사마귀3.jpg


폭포처럼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한낮,

잔디 위에서

암컷에게 머리부터 서서히 잡아먹히며

사랑을 나누는 수컷을 보았다.


사마귀 암컷은 수컷보다 훨씬 크고

교미가 끝나면

수컷을 잡아먹는다.


열에 서넛은 먹히고

나머지는 도망쳐 목숨을 구한다.


머리와 턱에서 시작해

등뼈까지 씹혀 나가며

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수컷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도망쳐라, 그 사랑은 사기다.

빨리 도망쳐라…”


누군가의 행복과 사랑이

누군가의 희생과 죽음 위에 세워지는

그런 착취적인 사랑이 인간사에서도 드물지 않다.


사랑의 끝이

누군가에겐 죽음이고

자신에겐 구원일 때

그 죽음이

조금이라도 덜 허무하려면

사랑이라 믿는 게 편할지 모르겠다.


그 순간만은

사랑이었다고 억지라도 써야

그래야 덜 슬프지 않을까?


사마귀.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