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강 건너 마을 - 압록강에서

by 보리

강 건너 마을


- 압록강에서



한 번쯤 강둑에 서서

바람을 귀에 대고 들어보라.



한 발자국, 거리건만

닿을 수 없는 고향

눈앞의 풍경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흐느끼며 흘러가는 소리, 들리는지



다시

바람을 귀에 대고 들어보라.



빈 그릇 하나

가슴에 차려두고

흘린 눈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들리는지



강 저편

느릿느릿 지나가는

소달구지 위에

둥근 나무 짐이 수북하다.



북쪽 아궁이를 데울

포개진 장작 위를 지나

강 위를 날아가는 새 한 마리



바람을 귀에 대고 물어보라.



소가 끌고 가는 길 끝에

두고 온 어머니

아직 살아는 계신지.




단둥(丹東) 압록강에서


압록강 위에서

보트가 강을 가르자

손 닿을 듯 가까운 북한 땅,

몇 초면 닿으리라 싶은

강 건너 마을이 스쳐 간다.


비포장 흙길을 비틀거리며

자전거 한 대 지나가고,

졸고 있는 사람을 태운

소달구지가 느릿느릿 뒤따른다.


나는 소를 보았다.

그 등을 보았다.

그 길 끝을 보았다.


그리고 문득

소달구지 위를 지나온

새 한 마리

강을 가로질러 사라진다.


하늘이 멍석처럼 펼쳐져도

저 길은 절대 밟을 수 없고,

물에 씻긴 조국의 절반,

전쟁의 화약 냄새와

피 묻은 군화를 씻어 냈을

세찬 물결,


강물은 여전히 말이 없다.


소가 끄는 수레가

천천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멀어질수록

그 풍경은

더 선명해졌다


20190608_124223.jpg 압록강 물살은 거세다.




단둥(丹東)과 6.25


1950년 10월 19일 중국인민지원군이 단둥(당시 안둥)에 은밀히 집결한 뒤 밤길로 압록강을 건너며 한국전쟁에 전격 참전했다.


같은 해 8월 배치된 소련제 MiG-15 전투기가 안둥 공군기지에서 11월 1일 첫 교전을 치르며 ‘미그 앨리’의 공중전을 열었다.


유엔군은 지원군로를 차단하려 11월 8 · 14일 대규모 폭격으로 단둥-신의주 간 압록강 철교를 파괴했는데, 잔해가 오늘의 ‘부러진 다리’로 남았다.

그러나 겨울 강이 얼자 병력과 물자가 계속 야간 도하해 단둥은 전쟁 내내 중국 측 최대 후방기지·보급선으로 쓰였다.


전후에는 ‘항미원조기념관’과 부러진 다리가 보존돼, 단둥이 중국의 6·25 참전과 희생을 기념하는 상징 도시가 되었다.





단둥(丹東)의 지리적 역사


고대에는 고구려·발해의 압록강 방어 거점이었고, 요·금·원 시대에는 요동 관문으로 기능했다.


19세기말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 때 일본군이 이곳을 거쳐 강을 도하하며 만주·한반도 패권이 뒤바뀌었다.


1930 ~ 40년대엔 만주국·일본군의 전략 기지로, 철도·항만이 확충되면서 ‘안둥(安東)’이라 불렸다.


6.25 전쟁당시 중국군이 1950년 10월 압록강 철교를 통해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단둥은 “항미원조”의 상징 도시가 되었다.


1965년 ‘평안을 기원한다’는 안둥(安東)에서 ‘붉은(丹) 동쪽(東)’ 단둥(丹東)으로 이름을 바꾼 뒤, 오늘날엔 북한 신의주와 마주한 최대 접경 무역·관광 도시로 성장했다.




단둥(丹東) 압록강의 현재 모습- 매일경제 기사(2025-06-24)


https://www.mk.co.kr/news/world/11350958

압록강에 北주민 빽빽이 태운 유람선… 갑자기 ‘중국 관광’ 삼매경 빠진 이유는?

신윤재 기자 shishis111@mk.co.kr


압록강 건너, 흙길위로 소달구지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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