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고추꽃

by 보리

고추꽃



에헤야 데헤야

눈물 먹고 고추 맵다.



시어미 말 천둥 같고

시누이 말 번개 같아,

매운 연기 눈물 나서

하얀 가슴 불길이네.



아이고 내 팔자야

칼날 같은 시집살이

한숨 늘어 가지 휘고

눈물 먹고 뿌리 깊다.



평생토록 기죽어서

고개 한번 못 들어도

시집살이 맵다 해도

배 곪는 게 서러워라.



서리 내린 가슴 밭에

붉은 고추 맵고 맵다.



세상 사람 입 태우며

매운 사랑 꽃이 피네.



둥글둥글 달빛 아래

매운 사랑 꽃이 피네.





종 모양으로 고개 숙여 피어 있는

하얀 고추꽃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고추 먹을 생각에 바빠

정작 이 작은 꽃은 잘 보지 않는구나.


땅을 향해 핀 고추꽃을 보니

예전에 읽었던 구전 민요,

〈시집살이 타령〉이 떠올랐다.


고개 한번 들지 못하고

이 땅을 살았던 여자들의 매운 시집살이.

이 하얀 고추꽃 같다.


엄마와 할머니는 고부간에 사이가 좋으셨다.


할머니는 새어머니 밑에서 구박을 받다

가난한 훈장집으로 시집오셨는데,

인자한 시어머니 덕분에

한글과 한문을 배우며 까막눈을 벗으셨다.


하지만 그 좋던 시어머니 일찍 세상을 떠나자

정지(부엌)에 홀로 앉아

가슴이 무너지는데도 배가 고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때,

“슬픈 거보다 배고픔이 더 서럽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 한다.


3대 독자 집안에 시집가 7남매를 두셨으니,

시어머니 사랑이 더 각별했으리라.


엄마가 장티푸스에 걸려 다 죽게 되었을 때,

며느리 똥오줌을 몇 달이고 받아내셨던 분.

그 너그럽고 인자한 마음은 시어머니께 받았던가?


엄마는 시집와보니 막내 시누이가 뽈뽈 기어 다니더란다.

언니랑 두 살 차이 나는 막내고모.

젖 모자란 엄마대신 할머니 젖 먹고 자란 언니.


할머니가 인자하셔 며느리 구박이야 없었지만

군대 간 남편대신 어린 딸 끌어안고 잠들었던 3년의 세월.


시누이 시동생 기르고 가르쳐 시집장가보내며

식구 많은 집안일에

평생 손마디 굵어진 엄마도 말하지 못할 서러움이 왜 없었으랴.


그래도 고모 삼촌들이 찾아오면

언제나 반갑게 맞이하고

넉넉히 품어내셨다.


팔자 내림이었을까.


나 역시 팔 남매 맏며느리로

자상하고 착한 시어머니 사랑은 받았지만

직장생활에, 집안일에

허리가 휘고, 손가락마디가 굵어졌고

지독한 남편 시집살이 서러워 바닷물만큼이나 눈물을 쏟고 나서야

엄마와 할머니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땅을 살았던 여자의 삶은

고추처럼 매웠으리라.





고추꽃의 꽃말


세련(洗練)

친절




고추 이름 유래


고추는 처음에는 남만초, 번초, 왜초, 왜개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가 먹으면 맵다고 '괴로울 고(苦)' 자를 쓰는 '苦椒(고초)'였으며, 이것이 '고추'로 변했다고 함





시집살이 타령


- 『한국구비문학대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90년대 간행)에 전국 구전 민요가 수록

- 경북 경산 지역의 부녀자들(婦女謠) 사이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음.



형님 온다 형님 온다 분고개로 형님 온다.

형님 마중 누가 갈까, 형님 동생 내가 가지.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살이 어떱댑니까?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밭에는 당추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둥글둥글 수박 식기, 밥 담기도 어렵더라.

도리도리 도리 소반, 수저 놓기도 더 어렵더라.


오 리 물을 길어다가, 십 리 방아 찧어다가,

아홉 솥에 불을 때고, 열두 방에 자리 걷고,

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니 같이 어렵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보다 더 푸르랴?

시아버니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동서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뾰족새요,

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자식 하나는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


귀먹어서 삼 년이요, 눈 어두워 삼 년이요,

말 못 해서 삼 년이요, 석 삼 년을 살고 나니,


배꽃 같던 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

삼단 같던 내 머리, 비사리춤이 다 되었네,

백옥 같던 내 손길, 오리발이 다 되었네.


열세 무명 반물 치마, 눈물 씻기 다 젖었네,

두 폭 붙이 행주치마, 콧물 받기 다 젖었네,


울었던가 말았던가, 베갯머리 소(沼) 이뤘네,

그것도 소라고, 거위 한 쌍 오리 한 쌍,

쌍쌍이 들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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