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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풀협죽도

by 보리

풀협죽도



꽃송이가

뜨겁게 터지던 여름,

그대 안부를 묻는다.



사랑은 언제나

한여름 소나기처럼 짧고,



지나간 기억은

가을 들녘에 누운 풀잎 위 서리처럼

바람 속으로 흩어질 줄 알았지.



뒤척이는 시간의 물결에

발 담그고 서서,

잠시 스쳐간 나비의 흔적을

쫓아 뜨겁게 흔들리고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남긴 따뜻한 온기,

나는 오래된 그리움을 본다.



꽃잎이 다 지고 나면,

이 그리움도 가벼워질까.



너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작고 무수한 용서를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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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대한 사색 1


‘현대 유럽 정원 디자인의 아버지’, ‘숙근초의 시인’이라 불리는 독일의 정원가 칼 푀르스터(Karl Foerster, 1874–1970)는 이렇게 말했다.


“풀협죽도를 모르고 산 인생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여름에 대한 죄를 짓는 것이다.”


그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다소 과장된 찬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원을 가꾸며, 그 말이 점점 이해되기 시작했다.


여름의 한가운데, 다른 봄꽃이 다 지고 초록만 짙어갈 때,

정원의 중심에서 불꽃처럼 피어나 몇 번을 지고 나서도 다시 피는 꽃, 플록스(Phlox)를 보고 나서였다.


칼 푀르스터는 평생 수백 종의 숙근초(宿根草, perennial plant)를 교배하고 키워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정원을 만들었고,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며 '칼 푀르스터'의 정원으로 유명하다.


독일 대표 정원사 칼 푀르스터의 보르님 정원 여행_독일정원여행

https://www.youtube.com/watch?v=ijmR_NMdJUg

숙근초(宿根草, perennial plant)는 한 번 심으면 뿌리가 땅속에 남아, 해마다 새순이 올라와 꽃을 피우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나도 사계절 내내 꽃피는 정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여름에는 의외로 꽃이 드물다.

플록스는 여름의 정점을 상징하는 꽃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피어있다.


꽃씨 하나로 키운 플록스가 늦봄부터 피기 시작해서 이제 마지막 꽃 한 송이 남기고 서있다.

한 번 심으면 뿌리가 땅속에 남아, 겨울을 견디고 이듬해 다시 피어나는 꽃.


올해 내 정원에도 플록스가 피었다.

처음 꽃이 피었다 졌을 때, 꽃대를 자를까 망설이다 그대로 두었더니,

그 자리에 다시 두 번째, 세 번째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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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플록스의 향은 은은한 장미향 비슷한데 아주 매혹적이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플록스 향기가 여름 해 질 녘이나 새벽이슬 맺힐 때 가장 진하다.


예전에는 우리 꽃 야생화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있었다.

그러나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플록스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자연이 꼭 ‘야생’이어야만 순수한 것은 아니다.

야생화는 야생화대로 아름답고, 외래종으로 귀화한 꽃이나 원예종이나 모두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칼 푀르스터는 일 년을 단순히 사계절로 나누지 않고 일곱 계절이 있다고 했다.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그의 정원에서는 이 모든 계절이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듯

꽃으로 이어지고, 색이 변하며, 생명이 멈추지 않았다.


자연 가까이 살아 보니,

우리 조상들이 일 년을 24 절기로 나누었던 지혜가 몸으로 느껴진다.

절기는 단순히 달력의 구분이 아니라

씨를 뿌리고, 돌보고, 거두고, 다시 준비하는 삶의 순환법이었다.


정원 일도 그렇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엔 물을 주고, 가을엔 수확하며, 겨울엔 다음 생을 준비한다.

정원도 결국 삶의 축약이자 시간의 무늬가 다양하게 그려지는 시(詩)이다.


또, 칼 푀르스터를 통해 ‘겨울 정원’의 개념을 알게 되었고, 깊이 감동하였다.

모든 것이 멈추고, 비워진 풍경 속에서도 정원은 여전히 존재한다.


겨울의 정원은 다음 봄을 위해 호흡하는 시간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 피는 것은 꽃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것을,


눈 덮인 화단, 마른 줄기, 겨울 내내 붉게 물든 잎을 흔들고 있는 남천, 누렇게 변한 잔디밭이 보여주는 고요한 여백,

그 침묵이야말로 정원의 본모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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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협죽도의 꽃말


온화, 열정, 합의, 주의 / 방심은 금물


색깔별 꽃말

흰색: 순수한 사랑, 새로운 시작

분홍색: 로맨틱한 사랑, 애정, 다정함

빨간색: 열정적인 사랑과 욕망

자주색/보라색: 매혹, 감탄, 신비로움, 지혜



이름


그리스어로 '불꽃'을 뜻하는 'phlox'에서 왔으며, 불꽃처럼 피어나는 꽃의 모습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

잎이 좁고 줄기가 대나무 같으며 꽃이 복숭아꽃과 비슷한 '협죽도'와 비슷해 풀협죽도로 부름.

하지만 독성이 강한 협죽도와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풀협죽도_독성 협죽도.jpg 협죽도의 독성은 청산가리의 6000배라 한다_출처 : 제주의소리(https://www.jejusori.net)


다른 이름

플록스(Phlox), 협죽초, 하늘호록수 등




플록스(Phlox, 풀협죽도)에 대하여


학명은 Phlox paniculata L.이고 영어명은 가든 플록스(Garden Phlox), 서머 플록스(Summer Phlox), 페레니얼 플록스(Perennial Phlox), 톨 플록스(Tall Phlox) 등으로 불린다.

북아메리카 원산의 진달래목, 꽂고비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 유래한 시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관상용 원예종으로 도입되어 주로 정원이나 화단에 심어 기르는 귀화식물이다.


6월에서 9월 사이에 흰색, 분홍색, 자주색 등의 꽃이 줄기 끝에 모여 큰 원추꽃차례로 피며, 햇빛이 잘 드는 양지나 반양지를 좋아하고, 배수가 잘되고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추위에 강해 노지월동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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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옛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영웅 오르페우스(Orpheus)가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그는 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으로 신들의 허락을 얻어 횃불을 들고 어둠의 강을 건넜다.


오르페우스와 함께 저승으로 향하던 이들이 발아래를 비추기 위해 횃불을 비추니, 횃불의 붉은 불꽃이 사랑의 희망처럼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그때, 오르페우스는 금기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자, 에우리디케는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횃불의 불꽃도 모두 꺼져버렸다.


그 후 저승의 땅 위에 불빛이 닿은 자리마다 꽃이 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플록스(Phlox)였다고 전해진다. 그 래서 이 꽃은 불꽃의 잔재처럼, 또 영혼을 위한 작은 등불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구조로 보아, 후대의 시적·전설적 재창작이거나 민담 형태로 퍼진 이야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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