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새벽 뒷산을 산책하는 시골 사는 웰피츠 일기
산길 입구에서 꿩이 갑자기 푸다닥 날았다.
캄캄한 숲 속에서 잠자던 꿩이 내 발걸음 소리에 놀랐나 보다.
갑자기 날아오르다 나뭇가지에 부딪혔나.
‘끼익~ 끽~’ 이상한 소리까지 내며 허둥지둥 날아가는데 빠르게 쫓아갔다.
여지없이 뒤통수를 때리는 말
‘가을아! 안 돼. 돌아와! 돌아와.’
이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았다.
개춘기 때는 반항심이 생겨서 돌아오라고 하면 더 멀리 가서 한참 있다가 왔다.
속으로는 나만 두고 가버리면 어쩌나 살짝 쫄리기도 하지만, 자고로 인간이나 개나 초반 버릇을 잘 들여놔야 한다.
집사는 콩엄마와 나를 길들인다지만 사실 우리가 더 고수인 걸 모르나 보다.
우리가 쓰는 방법은 바로 '간헐적 삐침'이다.
적절한 시간차로 삐쳐주는 거, 입안에서는 침이 흘러넘치지만 맛있는 간식을 거부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오늘 아침, 일주일 만에 콩엄마가 삐쳤다.
생고구마 조각은 이로 물었다 퉤 뱉어버리고
정말 힘든 것이 숯불 냄새 가득한 마른 쇠고기 간식이 눈앞에서 흔들릴 때, 고개를 돌려야 하는 일이다.
‘나 삐쳤어. 안 먹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데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얼른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여차하면 그 맛있는 냄새 때문에 간식의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콩엄마가 삐친 거 연기할 때는 무조건 풀을 뜯는 것이다.
풀을 뜯으면, 풀 냄새에 맛있는 간식 냄새가 희석되어 유혹을 견디기가 좀 쉬워진다.
소처럼 한자리에 서서 우적우적 풀을 뜯는 방법은 내 성격에 맞지 않다.
나의 삐침 방법은 치고 빠지기이다.
얼른 고개를 돌려서 간식의 유혹을 뿌리친 다음, 앞으로 달려 나가는 방법을 쓴다.
간식에서 빨리 멀어지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삐침도 효과가 있으려면 간헐적이어야 한다.
Skinner라는 아저씨가 말했다.
연속적 강화와 간헐적 강화로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처음에는 좋은 행동 후 바로 강화물을 제공하면 좋은 행동을 하게 되지만, 자꾸 이러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때는 간헐적, 선택적인 강화를 하라는 것이다.
처음 내가 삐쳤을 때, 집사들은 당황해서 뭐든지 다 해줄 것 같이 굴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왜 그러냐고 다정하게 물어주었고, 그래도 삐쳐있자 산 입구까지 안고 가주었다.
집사가 안아 올리는 순간 내 마음은 구름을 탄 것 같이 행복했다.
그래서 저절로 입이 헤 벌어졌는데
아차~ 그 표정을 들켜버렸다.
그걸 보더니 콩엄마가 매일 삐치기 시작했다.
나도 질세라 그때부터 둘이서 거의 매일 삐쳤다.
집사들이 우리 보고 데칼코마니라고 하던데 그게 뭐야?
집사들이 낑낑 안고 가주고 왜 그랬냐고 물어보더니, 한 달쯤 되어가자 ‘그래 니들 맘대로 해봐라!’하고 앞서 가버려서 당황했다.
고집 센 콩엄마는 ‘그래? 내 맘대로 한다.’면서 집으로 가버렸다.
어느 날은 삐친 콩엄마가 한자리에서 풀만 뜯고 꿈쩍 않으니 다시 목줄에 묶여 끌려갔다.
그래서 우리도 나름 열심히 전략을 세웠고, 그 해답이 간헐적 삐침이란 걸 알게 되었다.
또 웬만하면 둘이 동시에 삐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집사의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우리가 바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간헐적 삐침이다.
그런데 우리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삼촌집사가 나의 이 수법을 딱 꿰고 있어서 앞날이 걱정이다.
집사들을 조종할 수 있는 좀 진화된 기술을 연구 중이다.
땅콩이와 가을이가 삐치면 산책을 안 가겠다고 버티며 길옆 풀을 뜯고 있다.
정말 가기 싫으면 뒤돌아서 집 쪽으로 내리뛰는데, 풀을 뜯는다는 것은 삐쳤으니 봐달라는 신호이다.
삐쳐서 샐쭉한 표정으로 간식도 안 먹겠다고 고개를 외로 돌리는 모습은 어린아이가 삐쳐서 밥 안 먹겠다고 소리치는 모습과 꼭 닮았는데 그 모습이 왜 또 그리 귀여울까?
처음에는 휘둘려서 달래고 안아주었더니 점점 더 자주 삐치기 시작했다.
땅콩이는 정말 한 달 내내 삐친 것 같다.
똑똑해서 집사를 조종한다는 웰시코기 핏줄이라 우리도 전략이 필요하다.
함께 산책하는 큰집사는 가을이가 삐치면 너무 귀엽다고 한다.
함께 사는 가족도 밀당이 필요하다.
수시로 삐쳐서 풀을 뜯고, 간식을 외면하고 또 집을 향해 냅다 달아나는 콩이와 가을이를 쫒아서 오늘도 달린다.
내가 여기서 이걸 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