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꽃이 피었다.
팥꽃이 피었다.
가마솥 가득
동짓달 긴 밤이
오래 품었던 뜨거움을
부글부글 토해냈다.
쟁반 위에서
엄마의 머릿수건같이
새하얀 새알심들이
반짝이며 구르다
붉게 복작대던 팥죽 위에서
눈송이처럼 춤추었다.
해마다 동짓날이면
엄마는 큰 가마솥 가득 팥죽을 끓이셨다.
커다란 쟁반 위,
눈처럼 고운 새알을 빚을 때면
나는 그 옆에 누워 뒹굴며
하얗게 반짝이던 새알을 들여다보았다.
가마솥 안에서 보글거리던 것은
팥죽만이 아니었다.
칠 남매 맏며느리로 살아온
엄마의 고단한 세월이
함께 끓고 있었으리라.
가끔 이마를 짚던
엄마의 손등엔
쌀가루가 묻어있어
굵은 손마디와 핏줄이
꽃처럼 돋아 있었다.
팥꽃이 피면,
문득
팥죽 냄새처럼 묵직하게 눌러두었던
그리움이 함께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