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질경이

by 보리

질경이


애초에 쭈그려 태어나

한 번도

똑바로 서본 적 없다.



가난한 집 막내딸처럼

제대로 울어본 적 없는

질긴 사랑을 품고



깊게 덮인 상처마다

푸르게 기어가는 마음을 모아

뿌리는 끝내

길을 삼킨다.



짓밟히는 일로

말을 배웠고

쓴맛으로도

사랑은 자랄 수 있으니



비켜서지 못해 눌린 자리마다

내 사랑은 더욱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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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입구까지 가는 넓은 길을 질경이가 뒤덮었다.


차바퀴가 지나간 자리를 제외하고 양탄자처럼 덮인 질경이를 보면 그 생명력에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산입구에서 한 움큼 자라던 질경이가 산길을 덮기까지 3년이 걸렸다.


질경이.

이름부터 누군가의 입에서 멸시를 품고 흘러나오는 듯한 이 식물은, 정작 단단한 뿌리를 가진 생명체이다.

늘 땅에 붙어 있지만, 밟힐수록 더 짙은 초록을 품고 살아남아

마치 구박받고 자란 가난한 집의 막내딸 같다.


양탄자처럼 깔린 질경이를 밟으며 걷다 보면

세상살이도 이와같지 않을까 싶었다.

밟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더 간절하게 살아남은 마음이 더 오래, 더 깊게 기억된다.

오랜 인내와 긴 침묵의 언어로 더 질긴 세상에 대한 사랑을 뿌리내린다.


그 인내와 침묵을 흉내 내고 싶었다.

이 시는 그 긴 시간과 침묵에 대한 번역이다.


내가 누군가의 발밑에 있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 무게를 원망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뿌리를 넓혀가고

마음자리를 더 단단히 다져온 내 모든 “질경이 같은 시간”들에 조용한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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