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고수 꽃이 피었다.

by 보리

고수 꽃이 피었다.


끝내 품을 수 없어

너를 두고 돌아선 날,

우두커니 남은 흐린 웃음이

낯선 노래처럼 흩어진다.


손등에 묻어

끝내 잊히지 않는 너의 향기는

사소한 날들을 베고 누운 채

내 입술을 맴돈다.


향수처럼 번지는 눈빛

나는 늘 한 걸음쯤

뒤에서 맴돌다

덜 익은 이별로 출렁이고



한꺼번에 피어난 기억들

마음의 들판을 하얗게 덮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슬픔을 지나

불쑥불쑥 올라오던 목소리

코끝을 찌르는 그리움이었다.


함박눈처럼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너의 기다림이

그 안에 너의 계절이

내내 젖어 있었다는 것을

멀리 와서야 알았다.


고수.jpg



고수를 심었다.

아니 고수 꽃을 심었다.

쌀국수 위에 얹혀 진한 향으로 다가온 너,

지금은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


하우스 한편,

겨울에도 생명을 거두지 않던 풀,

너는 내 키만큼 여린 줄기를 올려 함박눈이 쏟아지듯

꽃을 피워냈다.


고수1.jpg 함박눈을 닮은 고수 꽃


다가가면 진한 향기로 인사하고

한번 스치면

그 향기는

잊지 못한 어떤 기억처럼 오랫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너무 진해서

미움 받은 긴 시간도 있었겠지만

너는 ‘지혜’라는 꽃말처럼

변치 않는 진한향으로 자신을 피워냈다.


이집트에서 왔다고도,

지중해에서 왔다고도 하지만

한나라, 혹은 고려 때

이미 김치와 나물로 우리와 함께였다고 하니

참 오랜 세월을 함께였다.

꽃대를 올린 너의 잎은

아카시아처럼 가늘어지고

존재 그 자체가 꽃이 되는 지금 이 시간

고수3.jpg

진한 향 때문에

낯설고 슬픈 생을 살기도 했을 네가

비로소 하얀 순백의 사랑을 이루었다.


너의 향기를 묻혀

낯익은 듯 낯선 너의 생을, 내 하루에 데려온다.

지중해 건너온 바람 한 줄기가 가슴을 지나간다.


고수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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