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고마리 꽃봉오리 앞에서

by 보리

고마리 꽃봉오리 앞에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으면, 나는 사라지는 걸까.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으면, 너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풀벌레 울음소리도 멎은 새벽,

무릎까지 내려온 흐린 구름과 함께 걷다가

고마리 꽃을 만났다.



눅눅한 공기 속에서도 말갛게 피어,

흙묻은 덩굴줄기마저 단정했다.

나는 그 꽃봉오리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목적도 보상도 기대하지 않는 듯한 여린 존재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보아주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의 손에 들려 꽃다발이 되지 않아도,

계절의 끝에서 꽃으로 섰다.

그건 어쩌면 사랑보다 깊은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거친 땅이 너무 아팠던 탓일까,

누구도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가시를 품은 채,

상처 입은 대지의 비밀을 지켜낸다.



더러움을 빨아올려

제 몸을 분홍빛 꽃으로 바꾸어내고,

벌들은 쉼 없이 찾아와 꿀을 길어간다.

작고 분홍빛 달걀 같은 꽃봉오리.

금방이라도 새 생명이 깨어날 듯

바람의 자궁 속에서, 매일 조금씩 부화한다.



풀벌레 소리에도 흔들리고,

이슬 한 방울에도 떨지만,

끝내 부서지지 않는 희망의 알을 품어

꽃봉오리는 분홍빛 기도를 올린다.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이름을 감춘 친절,

조용한 인내,

끝내 말하지 못한 사랑.

고마리꽃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끝까지 피어나는 것들.



그리고 그 안에,

나도 있고

너도 있기를.


고마리7.jpg




지난봄,

애기똥풀이 자라던 바로 그 자리에

고마리 꽃이 피었다.


아니 아직 꽃봉오리만 맺혔다.


금방이라도 새 생명이 깨어날 듯,

작고 귀여운 달걀을 닮은

연분홍빛 꽃무리 앞에 서서

오랫동안 꽃을 바라봤다.


온 들판의 숨결을 씻어내며

고마리 꽃이 피면

땅은 다시 맑아진다.


내가 흘린 발자국마다

연분홍 작은 불꽃들이 타올랐다.


풀벌레 소리에도 흔들리고

이슬에도 떨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한 계절의 끝자락에서

희망의 알을 품고 서있는

작은 기도 같은 꽃.

그 여린 꽃봉오리 안에서


나도 그리고 너도

다시 태어나기를......


고마리8.jpg





꽃말


꿀의 원천

- 고마리는 가을에 개화하는 대표적인 밀원식물로 벌들의 중요한 먹이가 되기 때문에 붙여진 꽃말.



이름


오염된 물과 땅을 정화시켜 준다고 하여 ‘고마운’, ‘고마우리’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과 고랑(고)이나 가장자리에 사는 것(만이)이라는 뜻의 '고랑 + 만이'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고만고만'하게 무더기로 모여 피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존재.


번식력이 매우 강하여 ‘그만 자라도 됐다.’는 뜻에서 ‘그만이’이라고 하다가 ‘고마니’를 거쳐서 ‘고마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음.



다른 이름


고만이, 꼬마리, 극엽료, 조선극엽료, 조선꼬마리, 조선고마리, 고맹이풀, 줄고마리, 고만 잇대, 큰꼬마리, 줄고만이, 물꾸미(경상도), 돼지풀(충청도)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있다.


한약명은 고교맥(苦蕎麥), 한자로 극엽료(極葉蓼)도 있는데 쓴 나물이라는 의미이다.



효능


해열, 어혈, 해독, 설사 멈춤, 지혈 효과가 있으며, 뱀·모기 물림, 뱀에 물린 상처, 칼에 베인 상처에 잎을 짓이겨 바르거나, 줄기·잎을 말려 약으로 쓰기도 하며, 어린순은 나물로 먹기도 함.


눈을 밝게 하고 시력을 증진, 이질에 효험.


고마리10.jpg



고마리 꽃 알아보기


고마리 꽃의 라틴명인 페르지카리아(Persicaria)는 복숭아인 페르지쿰(persicum)에서 비롯되었는데 꽃 색이 동일한 연한 분홍색이다.


학명은 Persicaria thunbergii로 마디풀과의 한국 전역의 습지, 논두렁, 개울가, 습한 들판에 흔히 자라고. 원산지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으로 중국, 일본, 러시아 극동부 등에서도 자생하는 한해살이 풀(잡초)이다.


늦여름인 9월~10월에 걸쳐 흰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을 피우는 야생화로 줄기와 잎자루에 뒤로 난 짧은 역가시가 있고, 민간에서는 잎과 줄기는 나물로, 된장국으로, 생으로 무쳐 먹기도 한다


실제로 축산 농가에서 주변에 고마리를 대량으로 심어 폐수를 정화하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돼지가 이 풀을 잘 먹어 ‘돼지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열매가 세모져서 메밀의 열매를 닮았고, 옛날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열매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던 구황식물이기도 해서 폐수정화를 비롯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유익하고 고마운 존재이다.




고마리6.jpg




고마리 이름에 대한 추기(追記)


고마리는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고마운 이(풀)'란 뜻에서 유래한다는 이야기는

수질정화라는 기능적인 결과를 인식하고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사실상 식물이름의 탄생 유래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수질정화라는 개념은 한 사람이 오랫동안 적어도 수년 동안 똑같은 일을 관찰함으로써 , 즉 고마리에 대한 연구 활동을 통해서만 그 기능을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식물생태보감 김종권 지음 참조-


고마리잎 모양에서 소 얼굴에 가면처럼 덧씌우던 옛날 옷가지 고만이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일본에 있다.

일본명은 미조소바(溝蕎麥) 또는 우시노하타이(牛の額)이다.

미조소바는 도랑(溝)이나 고랑에 사는 메밀이라는 뜻이고,

우시노하타이는 잎 모양이 소의 얼굴(面像)을 닮은 데에서 비롯하는 이름이다.


고마리의 한자명 극협료는 갈라진 창 모양처럼 생긴 잎 모양에서 붙어졌고,

鹿蹄草(녹제초)는 사슴 발굽을 닮았다는 잎 모양에서 비롯한다.


고마리의 명칭 유래에 대한 또 다른 추정은 두 말의 복합어라는 것이다.

고만이는 가장자리 또는 모서리(고샅)를 뜻하는 고와 심마니, 똘마니와 같이 사람을 일컫는 뜻으로 '만이'또는 '만'과의 합성어다.

즉 고마리는 고만이라는 말에서 왔으며 '가(언저리, 가장자리)에 사는 것(놈)들'이라는 뜻이다.


개골, 개골창, 개울, 골, 고랑, 구렁 등은 모두 동원어인데, 물의 뜻을 포함하는 우리말 고에 잇닿아 있다.

논이나 밭에 물을 대거나 빼기 위해 만든 좁은 통로, 즉 고랑과 이어지는 물길을 '물꼬' 또는 '고'라고 한다.


고마리는 바로 이 '고'에서 사는 '만이'들인 것이다.

결국 고마리는 '고랑에 흔하게 사는 생명체'이기에

생겨난 이름으로 추정된다.


(참조자료 : 지리산 야생화를 찾아서)

https://sck1130.tistory.com/1081?utm_source=chatgpt.com)


고마리11.jpg




전설


고려시대 어지러운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선비가 있었다.

무신들의 횡포와 원나라의 침입으로 수도인 개경까지 초토화되었고, 왕은 강화도로 피신했다.


홀로 탄식하던 선비는 후일을 기약하며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 살며 자신의 뜻을 펼칠 날만 기다렸지만 세월은 흘러가고 선비는 늙은 촌부가 되었다.


선비는 자기의 뜻을 이을 아들을 기다렸으나 딸만 아홉을 낳았다. 아홉 번째 딸 이름을 ‘고만이’로 짓고, 다시는 아이를 갖지 않았다.


그동안 여섯 번의 원나라의 침공으로 아내를 잃었고 딸들은 원나라로 잡혀가기도 하고 죽기도 했다.

그중 원나라로 끌려갔던 ‘고만이’가 천신만고 끝에 도망쳐와 늙은 선비를 정성껏 보살폈다.


천둥번개와 장대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밤, 원나라 군대의 말발굽소리가 지나간 다음날 ‘고만이’는 봇도랑에 처박힌 채 죽어있었다.

선비는 딸의 시신을 부여안고 몇 날 며칠을 울고 난 후, 아무도 선비를 본 사람이 없었다.

고려는 원나라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이듬해, ‘고만이’가 죽었던 자리에 이름 모를 풀이 돋아났는데, 그 풀은 아무리 뽑아내도 계속 돋아났고, 여름이 되자 빨갛게 피멍이 든 것처럼 분홍색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고만이’ 넋을 기리기 위해 그 꽃을 ‘고만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흘러 ‘고마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위 전설내용은 역사적 문헌이나 학술 자료에서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아 창작된 것으로 추정됨.)

자료출처 : 고마리 / 고마리 효능 / 고마리 이름이 유래.. : 네이버블로그



고마리2.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