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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가을비

by 보리

가을비



앞산은 비안개에 반쯤 가려,

누가 문을 닫아놓은 듯,

길이 보이지 않는다.



물까치 한 마리

회색 하늘을 천천히 가르며

검은 선 하나 남기고,



덜커덩

떨어지는 쓸쓸함이

빈 지게처럼 어깨에 걸린다.



비에 젖은 꽃들은

계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개 숙인 모습이

지난날의 후회와 닮았다.



어떤 발자국은 비에 씻겨 사라지고,

어떤 발자국은 더 선명하게 젖어

끝내 사라지지 않으니,



시린 어깨로 돌아서던 너,

그 뒷모습도,

애써 감추던 눈물도

아직, 이 빗속을 걸어가고 있는지,


가을비2.jpg




가을비는 조금 쓸쓸하다.


흐린 창가에 매달린 물방울,

너머로

젖은 나무도 꽃도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계절을 바라보고 있다.


계절을 다한 꽃은

꽃잎을 접었고,

가을꽃은 꽃망울을 품었다.


물까치가 젖은 하늘에

검은선하나 긋고 날아가면

그위로

어제와 오늘이 겹쳐 흐른다.


시린 어깨로 돌아서던 너,

그 발자국 끝에서

아직

안갯속 그림자로 서 있는지.


가을비 내리는 이 길을

이제

너와 함께 걷는다.


가을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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