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북간도에서 - 윤동주 시인의 고향을 지나며

by 보리

북간도에서


- 윤동주 시인의 고향을 지나며



하늘이 너무 맑아

차마 울 수 없던 날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북간도의 들판,

한 줄의 기도 끝에서

바람이 불고

여전히 별이 뜨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차마

나는

그 시를

다 읽지 못했다.


누구를 미워했고,

무엇을 침묵했으며,

어디에 무릎 꿇었는가.


그게

희망이었는지

속죄였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멀리서도

별 하나 떨리는 것처럼

한 사람의 맑음이

세상을 흔들 수 있다는 걸



그는

알지 못했다.



윤동주와 그의 영원한 동지 고종사촌 송몽규




높고 파란 하늘을

한 조각씩 도려내듯

맑은 시를 쓰던

젊은 시인

"부끄러움은 시의 뿌리다."라고

말하던 시인의 말의 무게를 새기며

시인의 고향인 용정을 지나며

별 하나,

시 한 줄 따라

해란강변을 달리고

일송정을 지나고


용정의 거리를 달리는 동안

마음은 물먹은 솜처럼 젖어갔다.

소리치지 않아도

부서진 마음들이

귀에 들릴 만큼

통곡이 복받쳐 올랐다.

그의 이름, 윤동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4살까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그리고 배움을 위해 오래 떠나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리워했을 고향

일제의 어두운 그늘 아래서도

가장 맑고 슬픈 별빛을

한국문학의 밤하늘에 새긴 사람.

시인의 생애는 같은 집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고종사촌 송몽규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함께 자라

함께 배우고

함께 조국을 생각했고,

함께 일본에서 공부하던 중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정체 모를 생체실험용 주사를 맞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음조차 함께하며

27살의 짧은 생을 마쳤다.


올해는 윤동주 서거 80주년이다.

서거 80주년 윤동주 재조명... “불의의 시대에 맞선 고결함” / YTN

https://www.youtube.com/watch?v=u1IjrTp4a8A


어린 시절

윤동주의 시를 처음 접하고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지금생각하면

그의 시에 담긴 투명한 맑음이

이유 없이 서러웠던 듯하다.


시인의 고향을 지나는 동안

가슴속에 흘러넘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돌아와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영화 [[ 동주 ]]를 다시 보며 울었다.


윤동주의 시를 알아갈수록 그 맑음에 담긴 저항정신과

처절한 성찰에 눈물 난다.

한 줄의 시가

한 시대의 고결함이 되고,

그의 맑음이

세상을 흔들 것이라는 걸.

그는 끝내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그의 시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움을 돌아본다.


북간도 용정을 지나며




윤동주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현실 속에서도 순결한 시정신과 민족의식으로 시를 남긴 청년 시인이며,

27세 짧은 생애를 통해 한국 문학사에 가장 맑고도 슬픈 별빛을 새긴 인물이다.


고향집

- 윤동주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 윤동주와 송몽규 ]]


� 1. 고종사촌 형제

윤동주와 송몽규는 북간도 명동촌 같은집에서 1917년 같은 해에 태어난 고종사촌 간이다.

� 2.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람

두 사람은 중국 북간도 용정 명동촌에서 함께 성장

명동학교, 은진중학교, 연희전문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님


� 3. 정신적 동지

일제강점기 민족의 고통을 함께 인식하며,

시와 교육, 사상 등에서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음

윤동주는 시로, 송몽규는 교육운동과 항일 사상으로 함께 조선의 미래를 고민함


� 4. 일본 유학과 함께 체포

1942년 이후 둘 다 일본 유학

교토 도시샤대학 재학 중 독립운동 관련 혐의로 함께 체포

1943년 7월 함께 구속, 1944년 징역형 선고

이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함께 수감,

1945년 윤동주와 3주 간격으로 송몽규도 사망

[[ 윤동주 생애 ]]


● 이름: 윤동주 (尹東柱)

출생: 1917년 12월 30일, 중국 북간도 명동촌

사망: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 (향년 27세)


● 성장과 교육

1919년~1930년대:

북간도의 명동학교, 용정 은진중학교 등 민족교육기관에서 성장

일제강점기 속 민족의식과 신앙심, 문학적 감수성을 키움

1938년~1941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 재학 중

민족의 현실과 자기 성찰을 주제로 하는 시 다수 창작

대표 시: 〈서시〉, 〈참회록〉,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등


● 일본 유학과 체포

1942년: 일본 도쿄 릿쿄대학, 이어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과 진학

1943년 7월:

일본 경찰에 의해 조선 독립운동 혐의(치안유지법 위반)로 송몽규 등과 함께 체포

1944년 3월: 징역 2년형 선고

이후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


● 죽음과 의혹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6달 앞두고 옥중에서 사망

공식 사인은 ‘뇌일혈’

그러나 생체실험 및 독극물 주사설 존재

시신은 화장 후 고향으로 옮겨져 묘소에 안장

중국 용정시에 있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묘

[출처] 중국 용정시에 있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묘|작성자 루비콘

https://blog.naver.com/rubi0101/221043257182


●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사후, 연희전문학교 은사였던 정병욱 교수가 보관하던 육필 시고를 정리하여

1948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간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