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비 그친 숲에서

by 보리

비 그친 숲에서



밤새

비가 다녀간 뒤

젖은 숨을 쉬던 숲이

나를 따라 걷는다.


억새는 빳빳이 고개를 들었고

반짝이며 웃던 망개잎은


무엇이 아쉬웠을까

아직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빗방울을 맞아 떨고 있다.


꺽꺽한 고라니 울음

빠르게 나무를 옮겨가는 청설모

먼 산에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


당귀의 진한 향에

이슬과 빗방울이 섞이고

바람과 솔잎의 숨결이 맞닿는다



젖은 이마를 털며

바람길을 날아온 새들은

젖은 목으로 노래하고


물 마신 바람이 지나간 후

솔잎 끝에 맺힌 호수가 흐리다.


비 그친 숲길을 걷다 보면

숲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내 안에도

나무 하나 자란다.


너도 나였고

나도 너였다.







비 그친 뒤,

숲은

싱싱한 생명의 오케스트라를 펼친다.


한순간도 멈춘 적 없는

푸른 생명의 음악으로 가득 찬 숲

숨죽이던 이끼도 제 색을 찾았고

억새도

고사리도

망개잎도

꽃이 져버린 진달래도

키 큰 나무 아래에서 생의 합창을 부르고 있다.



비에 젖은 솔잎향은

발끝을 타고 올라와

천천히 가슴을 적신다.


솔잎끝에 맺힌 빗방울 뒤로

흐려진 호수

비 온 뒤 새소리는

깨끗이 닦은 거울같이 맑고 가깝다.

먼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꺽꺽 대는 고라니소리에

놀란 청설모가

나무를 옮겨가고


비가 그친

물기 가득한 숲이

축축한 등을 쓸어준다.

멀리서

지금

나처럼 숲을 걷는 이가 있을까

내 마음에 걸어 들어온 나무가

싱싱한 뿌리를 내리고

내 발자국도 흙을 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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