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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란 Oct 11. 2017

B 씨의 반복되는 하루

하-----암
큰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별로 놀랍지도 않게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지금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도대체 매일 아침 왜 저렇게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는 건지. 필라테스 강사라도 되는 건지 혹은 무슨 의미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멈춰라, 아무 일도 아니니. 그렇게 호들갑 떨필욘 없다. 그저 매일 아침, 해 왔던 일이기에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것뿐이다.

그나저나 가족들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일은 말 못 하는 짐승 밥 굶기는 거라고 생각하는 나는 지금 며칠 째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물론 나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그리 큰 죄는 아니라 생각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족들을 용서할 예정이다.(1분만 미워한 다음.)

하지만 9시가 넘으면 나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화를. 아니 배고픔을...
아 진짜 배가 너무 고프다. 이런 나를 보며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어제저녁에 그렇게 맛있게 먹더니 아침을 또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매일 비슷한 양의 똑같은 음식을 맛나게 먹어대는 내가 놀라울 때가 있다. 가끔 다른 것 좀 먹자고 달려들 수 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과격하지 않다.(간식 먹을 때 이성 잃는 건 인정^^)
어쨌든 오늘은 간신히 세이프다. 막 8시 59분이 되는 시점에 가족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잠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내 밥을 챙겨주었다는 무슨 거울로 가 자신의 얼굴이 똑바로 잘 붙어있는지를 확인했다. 대체 그걸 왜 확인해?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체중계에 올라가 자신을 나타내는 어떤 숫자를 보고는 기겁하더니 바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왜 저렇게 놀라는 건지. 그리고 방금 체중계 보고 충격받고는 냉장고 문을 바로 여는 건 또 뭔데... 솔직히 그렇게나 먹고 먹어서 살이 안 찌는 게 더 이상한 건데..
그래도 내가 과묵한 편이라 다행이다. 아니면 가족들을 여러 번 울렸을 것이다. 암 그렇고 말고.
하지만 일단 그런 건 둘째 치고, 나는 지금 밥을 먹어야 하기에  예쁜 짓을 하고 있는 중이다. 꽤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해야 내가 원하는 바를 알아들을 것이니..
어쩔 땐 조금 덜 예쁜 짓을 했더니 이 더운 날에 밥만 주고 물을 안 주고 가서 하루 종일 말라죽을뻔했던 적도 있다. 히잉.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다. 혹시 나와 같은 사람(?)을 가족으로 두고 계시다면, 밥과 함께 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꼭 확인해 달라고.

어쨌든 냠냠 쩝쩝 행복한 식사를 마치면 나는 슬슬 불안해진다.
왜냐하면 이때쯤부터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되기 때문이다. 저렇게 늦게까지 늘어자지만 밥벌이는 제대로 하는 모양. 이 시간이 되면 칼같이 출근한다! PO출근 WER!
그렇게 근면 성실한 탓일까, 물을 빼먹거나 나와 놀아준다는 약속을 잊어버릴지언정 내 밥통에 밥이 떨어진 적은 없었다.

아무튼 오늘은 정말이지 혼자 있기 싫은 날이기 때문에 일단 매달려보기로 한다. 자네 나도 좀.. 같이.. 어떻게 안 되겠나? 전에 없던 폭풍 애교로 나는 애교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성공인가? 녀석은 나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린다. 그리고는 복숭아 같은 볼을 비비적대더니 조용히 나를 다시 내려놓았다. 뭐지? 그린라이트 아니었나요....?
근데 나를 보는 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저것은 틀림없이 나를 걱정하는 눈빛. 내가 제일 꼼짝할 수 없게 되는 눈빛이었다. 괜히 걱정되게 말이야...
나는 일단 내 별장(?)으로 가서 조용히 누운 걸 보여주며 최선을 다해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의사를 표현한 후, 녀석을 제대로 출근시켰다.

출근 때마다 나를 저렇게 보고 가는 녀석을 보니 어쩌면 우리 모두 외로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녀석의 퇴근시간, 흥분해서 미쳐 날뛰는 나를 두고 옷부터 벗어던지는 녀석을 보니 도대체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녀석이 저런 심상치 않은 눈빛을 하고 들어올 때는 괜히 더 신경이 쓰인다. 나는 예쁘고, 착한데.
하는 수 없지 이 몸이 나서야 하는 건가. 나는 평소보다 1도 정도 더 크게 꼬리를 들고 녀석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가만히 쳐다본다. 녀석은 신경 안 쓰려고 하는 건지 내 눈을 피하고 시선을 돌린다. 흥, 역시 이렇게 쉽게 넘어오면 너무 재미가 없겠지? 나는 지나가는 척하며 녀석의 몸을 터치한다.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를 거야. 녀석은 귀찮은 듯 내 손길을 피했다! 너무 충격이 커서 그만두고 싶지만, 나는 착하고 예쁘며, 너그럽기까지 한 족속이니까 몇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한다. 그러면 녀석은 못 이기는 척 나를 들어 올리는데(이때가 제일 고비다. 달래는 줘야겠고, 근데 너무 무서워..) 일단은 참아본다.
한마디의 대화도 없었지만 뭔가 전해졌는지 녀석은 나를 내려놓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한다. 아 느낌이 이상하다. 댕청한 강아지가 된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 순간 내 생각을 알아챈 건지, 녀석이 조금 웃는다. 이제 다 되었다. 그렇게 웃는 얼굴의 녀석을 확인하면 나는 이제 내 할 일 끝냈으니 귀찮게 왜 이러냐는 표정을 지으며 도도히 퇴근(?)하기로 했다. 녀석은 아쉬운 듯 나를 바라보지만, 놀아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왜냐면 오늘 너무 덥거든... 지금 이렇게 타이핑하는 순간에도 아무 생각이 안 든다. 너무 덥다는 생각밖에.. 항..

우리는 외롭다.
혼자여서 더욱 외로웠던 우리는 어쩌면 간절한 소망 속에 서로를 만났다. 매일 반복되고 지치는 하루 속에 우리는 몇 번의 헤어짐을 딛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혼자가 아니라서. 내가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오랜 시간을 누워있을 수 있는 것은 언젠가 돌아올 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좀 일찍 좀 들어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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