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순수가 불편하다.
오랫동안 그 말을 하지않으려 애썼다. 입밖에 내 버림과 동시에 한없이 초라해질 내 자신을 감당하기 버거울 것 같았다.
그랬다. 나는 언제나 그들의 고민에 귀기울이고, 따뜻하게 포옹하였으며, 진정된 그들의 귓가에 이성적인 조언마저 들려주었으나, 사실 한번도 진심이었던 적 없다.
그대신 가슴을 아프게 할 갖가지 독설들이 뇌 속을 떠돌아 다녔다. 아프지 않았다. 내게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그 말을 참아온 것은 그들의 안위를 걱정함이 아니었다. 한번도 슬픔이었던 적 없던 그들의 사연에 진심으로 아파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순수하지 못했다. 지쳐라 지쳐, 지칠때 만큼 지쳐서 빨리 내 앞에서 사라져주라. 바지런한 이기심들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려 했다.
배려 할 수 있는 인간은 많지만, 진심을 보여줄 용기를 가진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결국 다 가식이라는 말이다.
안됐다. 잘 해결됐음 좋겠어.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 같은 말들은 자기자신에게만 한정적인 진심일 뿐, 타인에게 향했을 때에는 가면놀이 밖에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한 일들이었다. 좋은게 좋은거라는 사고방식, 굳이 적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마인드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격언과 함께 내 삶의 모토였다.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인간만이 머나먼 미래까지도 살아남을 것이며, 능숙하지 못한 가식쟁이들과 무식한 이기장이들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순수장이들과 함께 도태되어 사라질 것 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들의 생존권을 차치해두고서라도 어서 빨리 그러한 날이 다가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 뿐이다.
가식장인으로서의 내 삶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가식의 결정체인 나는 그런 초보들과는 태생부터가 남 달랐고, 우리의 운명도 아마 그 즈음 갈렸을 것이다.
아마도 그 때.
다섯살이 덜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그때 우리 동네는 빨간 벽돌이 길게 늘어진 골목에 중산층 가구 몇 곳이 모여사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벽돌에 낙서하기를 좋아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그저 심심할때면 언제나 벽돌에 낙서를 하고있었던 기억밖에. 그때부터 발현된 그림에 대한 재능이 이미 우수했던 것 같다.
그날도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TV속 동물원에서 보았던 하마의 형태를 막 완성했을 때,
멀찍이서 다가온 동네아주머니가 나를 보고는 말했다.
"어머, 정말 예쁘게도 생겼네"
1.5초 간의 정적,
낯선 사람의 대화신청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모르는 나는 그저 도망을 갔다.
가 아니라
해맑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헤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맑게 웃어보였고
"아주머니도 예쁘세요"
란 내 말에 더욱 밝은 얼굴이 되었다.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어야만 직성이 풀렸던 나는 단순히 받은 말을 돌려주었을 뿐,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처음부터 알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쩌면 본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머~ 고맙구나.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야. 얼굴도 예쁘게 생긴 애가 말도 어쩜 이리 곱게 하누.
이거이거 그냥 있을수가 없지. 하나 줄게~"
그렇게 내 작은 손바닥 위에는 주홍빛 귤 하나가 놓여졌다.
예쁜 말을 하면 뭔가를 받는다.
내 가식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