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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n 22. 2023

힘든 날에는 상추 비빔밥과 된장찌개를

[100일 100 글]14일, 열네 번째 썰 

아주 오래 만에 회사에서 멘털이 터졌다. 넘어오는 일들은 많은데 해결되는 것들은 없고, 그 와중에 치고 들어오는 일들은 급하다고 하고. 뭔가 꽉 막힌 벽 사이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다. 그래도 한 동안 잘 버텼는데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급습을 맞아버려 빵 터져버렸다. 업무 중이라 나가서 뛸 수도 없고, 갑작스럽게 와버린 그로기 상태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어쨌든 맡은 일이 있으니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서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다행히 업무는 문제없이 해결되었는데 내 멘털은 그렇지 못했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너무 지쳐버린 몸에 집에 갈까 고민을 했지만 이대로 집에 가면 안 될 것 같아 헬스장을 찾았다. 열심히 뛰며 낮에 있었던 일을 털어버리려고 했지만 쉽게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고민했다. 밥을 시키기에는 늦은 시간이지만 특별한 저녁으로 이 기분을 지워야 할 것만 같았다. 치킨에 맥주는 어떨까. 하지만 동시에 귀찮았다. 배달을 시키면 뒤따라오는 번잡한 정리 과정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래, 집밥을 먹자. 


아빠가 밭에서 따온 싱싱한 상추를 한 움큼 집어 누군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는 기분으로 잘게 뜯었다. 오늘은 기분전환이 필요하니까 특별히 계란 프라이는 2개. 뜨끈한 밥 위에 올라가는 고명으로는 이 두 개로 충분하다. 고추장을 한 숟가락 크게 뜨고 그 위에 참기름을 쪼르륵 두르면 그것으로 진짜 끝. 열심히 싹싹 비비면 어깨가 부르르 떨리는 맛이 완성된다. 왕성하게 움직이는 턱관절에 목이 막힐 때쯤 엄마표 된장찌개 한 숟가락으로 화룡점정. 


식사가 끝날 때쯤엔 어깨를 내리누르던 통증이 사라지고 단전에서부터 힘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제법 전투적인 자세로 늦은 저녁을 해결하며 배달 안 시키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힘든 하루에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면 순간 행복할 수는 있겠으나 오히려 속은 더부룩했을 것 같다. 안 그래도 날이 더워 속이 잘 얹히는데 사서 고생을 할 필요는 없지. 


그렇게 가만히 식사를 하며 기다리니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완벽하게 괜찮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버틴 내가 기특해졌다. 힘들고 고달픈 날에는 뭘 특별하게 하지 말고 차분하게 보내는 것이 더 좋을 수 있겠구나.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버거운 하루에는 계란 프라이 2개가 올라간 상추 비빔밥에 된장찌개를 곁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제법 위로가 되는 한 끼다. 모든 문제가 완벽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오늘 밤은 편하게 잠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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