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 수십번 되뇌인 문구이다. 나에게 시간이 있었다면. 몇 시간이고 사유할 여유가 있었다면.
물론 그럴 때마다 역시나 시간이 있었다면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이나 했을꺼야-라고 넘겨짚곤 했다.
그리고 드디어. 방학을 했다.
취한 것 처럼 잤다. 방학식 당일은 으레 조퇴를 한다. 집에 오니 오후 한 시도 안 되었다.
점심을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바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알람 시계가 울리는 것을 듣고 소스라치게 깼다. 시간은 6시 즈음. 와 벌써 출근할 시간이구나.
가만 보자, 아니 오늘은 금요일인데. 왜지?
그러고보니 매주 필라테스를 가는 시간이다. 이정도로 정신없이 잤다.
운동을 가서도 마치 몸은 산 송장 같다. 다리가 몸에 붙어있다-라는게 이런 기분이다.
그리고 지난 3일 간. 마치 죽은 듯이 잤다. 침대에서 내내 유투브와 숏츠만 봤다.
자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하루에 20시간 가까이는 잔 듯 하다.
그리고 나니, 일상이 조금씩 달라진다.
로봇 청소기를 돌린다. 집 안에 있는 물건을 다 치우고 청소기가 돌아갈 공간을 마련한다.
내친 김에 로봇 청소기 클린 스테이션 봉투 리필을 주문한다. 이미 빵빵하게 먼지가 차 있다.
쓰레기를 비운다. 그리고, 자리에 앉는다.
지난 3주간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끄적거린 메모를 담는다.
다행히, 옵시디언에 조금씩 적어둔 글이 있다. 이를 원고에 옮긴다.
꼭 해보고 싶었던 시각화가 있다. sankey diagram. 이걸 어떻게 그릴지 챗지피티와 대화를 나눈다.
맘에 들지 않아 클로드로 간다. 어? 클로드의 그림 실력이 끝장난다.
한 학기 동안 미루어던 그림 세개가 오늘 하루에 뚝딱 만들어진다.
종일 앉고 누워 글을 읽고 쓴다. 다듬는 건 내일의 챗지피티가 할 테니 마음이 가볍다.
나에게 온전한 삼일이 주어진 이후에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학기중이었다면, 삼일 아니 이틀도 오롯이 나에게 주어지기 힘들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구나, 를 깨닫는다.
다시 한 번 되뇐다. 나에게 시간이 있었다면.
이 공부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도대체 왜 이 공부를 하고 있을까, 아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공부가 맞나.
이러한 번뇌와 고민의 늪에 빠질 때마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재미있는 만큼만 하자.
매일 매일 파도에서 떠다니는 뗏목 조각에 의지하는 기분이다. 오늘 딱 떠있을 만큼.
과연, 이 뗏목 조각들이 모여 배가 되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