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onuk song Jun 01. 2018

리더처럼 행동하면 리더가 된다

내 위치는 내가 만든다 - 독일에서 일하기

독일 기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게 있을까?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으로 이미지에 조금 흠집이 갔지만, 독일 기업이 대체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질서 정연하며, 프로세스를 세우고 느리더라도 정해진 프로세스와 원칙대로 움직이는 독일 병정 같은 이미지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외국에서 한국 기업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첨단 기술 지향적이고, 절대적 상명하복의 수직적 조직 구조 등의 이미지(삼성, LG의 이미지에 더해 일본 기업 이미지와 구분을 못 하는 이유로)가 크고 작은 수많은 한국 기업들을 대변할 수 없듯이 독일 기업의 그런 반듯한 이미지도 스테레오 타입이 분명하다. 독일에서 기껏 2년 여 일 한 사람으로서 독일 기업 이미지가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말하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 하는 이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장의 한 마디. 싸워라!!

이 조직에서 나는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기도 하거니와,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많이 나서지는 않았고, 굳이 기존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과 갈등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 관할 영역 이외에는 굳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내 부서가 커지고 다른 부서들과 협업이 많아질수록 회사 전체 프로세스에 참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일 하는 곳은 의료기기 및 의료 보조 기구를 판매 유통하는 회사인데, 보험회사와 연계하여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크게 성장한 기업이다. 그러다 보니 재고 관리, 물류 관리, 주문 관리, 고객 관리, 인력 관리 심지어 비용 관리조차도 제대로 된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았고, 사업 초기의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규모는 커지는데 프로세스가 따라주지 못하니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창업 초기 멤버였던 그 프로세스를 담당해야 할 포지션에 있는 사람도 이미 그의 능력 밖의 일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사장과 마주 앉아 내 계획과 필요한 것을 말할 기회가 생겼고, 내가 느끼는 프로세스적인 문제점들을 얘기했다. 문제점은 알고 있지만 솔루션이 없던 사장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한 마디 했다.

이 회사에서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고 일 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네가 만들어 놓은 것들을 망가트리게 놔두지 말고 싸워라.

 

내가 하기 나름이다

회사 사람들은 어디서 굴러들어 온 독일말도 잘 못하는 한 동양인이 온라인샵을 만들고 아마존에 물건을 등록하고 판매를 하더니 어느새 한 팀을 만들고 팀장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꼬왔을 것이다. 아니 처음에는 정말 그랬다. 그래서 사실 그들에게 더 친절하려고 노력했고, 그들의 성질을 굳이 긁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팀원들이 생기고 그들을 추슬러야 하게 되니, 마냥 사람 좋을 수만은 없었다. 사장 말 대로 이제 싸워서 내 것을 지키야 할 상황에 이른 것이다.


목소리를 키웠고, 얼굴을 붉히더라도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 고치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산적해 있는 문제에 제각기 불만만 많고 솔루션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없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작더라도 솔루션을 제시하고 앞장서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가면, 내가 독일어를 잘 하든 못하든 그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존중해준다.


내 일은 온라인으로 물건을 파는 일인데, 배송할 물건이 없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판매하는 물건이 수천 가지가 되는데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를 하니, 필요한 물건이 제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요 제품의 재고와 판매 자료를 분석했다. 그리고는 사장의 결재를 받아서 구매 책임자에게 들고 갔다.

"이건 잘 안 팔리는 물건이잖아. 주문할 수 없어." 구매책임자는 사장 결재를 보고도 주문을 안 넣겠다고 오히려 큰 소리였다.

"전에는 잘 안 팔렸지만, 이것 보라고! 이게 지난 석 달간 우리가 판매한 물량이야. 게다가 이 제조사는 재고 관리가 안 되고 배송 기간이 길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주문을 해야 해."

한 번에 쉽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몇 번을 부딪히고 나자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었다. 구매 책임자에게 내가 지시를 하고 그는 내가 요청하는 제품과 수량에 맞추어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구매 목록을 들고 나에게 확인을 받으러 오고, 물건이 도착하면 나에게 먼저 보고를 한다. 그러면서 농담을 던지고 내 눈치를 보며, 내가 장난을 받아주면 좋아한다.


내가 하기 나름이다. 기존에 해오던 프로세스나 관행을 이유도 모르고 따를 필요가 없었다. 합당한 이유와 적합한 프로세스를 만들고, 강하게 밀어붙이면 그들은 듣는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불편한 점을 개선하면, 나는 자연히 그들 위에 서게 되고, 그들은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속상해하지 마. 그 일은 네가 주인이야

같은 회사에 웹디자이너로 뽑은 한 한국사람이 있다. 기존 독일 직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적극적이고 일을 잘 했다. 그래서 많은 기회를 주었고, 일 년 여 후에는 회사 전체 마케팅 전반을 혼자 관리 담당하게 되었다. 온라인 콘텐츠뿐 아니라 오프라인 회사 제품 카탈로그를 시작으로 온오프라인을 망라해 홍보, 프로모션, 전시회, 마케팅 비용 등 연간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에 이르렀다. 사장의 총애는 말할 것도 없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회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어느 날 그녀가 지역 방송국과 광고 촬영을 주도해서 회사 소개 영상 및 전시회 광고 영상을 함께 촬영하기로 하기로 했다. 꽤 큰 비용이 들어가는 건이었고, 작은 지역이지만 공중파를 타게 되는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누군가 책임지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촬영 시나리오, 인터뷰할 사람, 인터뷰 스크립트, 촬영 시나리오에 따른 장소 제품 배치 및 배경 준비, 청소 등등 그녀가 혼자 준비를 하였다. 제대로 된 회사 소개 영상도 카탈로그도 없었는데, 이런 영상은 한 번 만들어 놓으면 계속해서 쓸 수 있다. 비용으로 따질 수 없는 꽤 큰 일을 지역 방송국을 이끌고 혼자 해 낸 것이다.


촬영 당일 날, 아침 일찍 시작한 촬영이 길어져 점심시간까지 계속되었고, 사내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촬영을 하고 있어 일부 직원들이 10여분 기다리게 되었다.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나 지금 밥 먹어야 돼."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게 불만이었다. "그거 지역 방송 보는 사람들도 없는데, 이거 왜 하는 거야." 라며 구시렁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직원들의 행동과 말에 기운이 꺾인 그녀는, 촬영이 끝나고 힘이 빠져 내게 찾아와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 "그 사람들 수준은 거기까지인 거예요. 그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살 거예요. 내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옳은 방향으로 추진하고 밀어붙이면, 생각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따라올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그들의 리더가 되는 거예요."  


리더처럼 행동하면 리더가 된다.

내가 오면 장난치다가도 일을 하고, 내 눈치를 본다. 나를 관리자로 느끼는 것이다. 외국인이 아니라 상사로 느끼는 것이다. 내가 객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영원히 객이다. 하지만 이건 국적의 문제도 언어의 문제도 아니다. 내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주인처럼 행동하면 내가 주인이 된다. 주인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직원 마인드로 일을 하고 항상 일반 직원으로 머무를 뿐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 독일 맞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