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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onuk song Dec 25. 2020

사장으로서의 삶과 직원으로서의 삶

Employer and Employee

직원으로서의 삶

일 년 전, 마흔이 되었을 때, 내 사업을 하겠다는 막연하지만 오래된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 본 것은 불과 5년 남짓이니, 그리 오래된 생각은 아니다. 이 전에는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회사 안에서 경력을 쌓고, 진급을 하고,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을 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했었지, 사업을 하기 위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삼성전자를 그만둘 이유 보다, 그만두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더 많았다. 힘든 순간들이 많았지만,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위로와 격려를 해 주는 회사 동료 선후배들이 너무도 많았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회사나 학교, 조직은 충성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수많은 방식으로 무의식 속에 심고 있다. 회사나 학교에서 모범생이었던 나는 사표를 내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족을 위해 아내의 나라인 독일로 가자고 결정을 하면서, 내가 앞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과, 앞으로의 경력, '내'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 사업을 구체적으로 선택지에 넣었던 것 같다. 


배우자의 나라이지만 언어부터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작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이직을 하면서 나름의 성취를 경험하고, 나름의 경력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거대한 조직이었던 한국에서의 첫 직장과는 달리, 독일의 작은 회사들에서는 이전에는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큰 조직에서는 보이지 않던 한계와 가능성들을 경험하고 나니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 하는 생각에 자연히 미쳤다. 바로 직전 회사는 꽤 큰 디지털 에이젼시였는데, 별것도 아닌 개념을 거창하게 포장해서 고객을 낚으려는 상술과 화술이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다시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며,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 적응 기간을 거칠 생각을 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젠 나를 끼워 맞출 조직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조직을 만들어도 되잖아!' 그렇게 사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게 되었다. 


사장으로서의 삶

코로나로 관공서들이 셧다운 된 상황에서 회사 설립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거쳐야 하는 여러 단계는, 매 단계 시간이 많이 걸렸고, 독일어로 된 법, 세제 관련 문서들을 꼼꼼히 읽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온라인샵을 오픈하였고, 그래도 기대는 했지만, 물론 당연하게도,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많았다. 회사가 등록되자, 내가 지금껏 받아보지 못한 내용으로 우편물이 배달되기 시작했다. 고용노동청이 관리하는 피고용자가 아닌 고용을 창출하는 주체인 고용자, 즉 고용노동청의 고객이 된 것이다. 국세청에서도 Arbeitsgeber (Employer)라는 타이틀로 우편물이 배달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세금으로 유지가 된다. 세금을 안정적으로 걷으려면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등록되어 일을 하고, 월급을 받으며, 소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는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를 창출하는 집단을 구분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특히 유럽은 더 그렇고 노동자의 권리가 많이 높아지고 있지만, 반대로 이해하면 그동안은 고용자들이 우대를 받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수능을 준비하고 대학을 가고, 나를 뽑아주기를 기대하며 만드는 영어점수와 온갖 스펙들, 학교에서 배는 것은 경영자로서의 준비보다는 질 높고 충성스러운 피고용자로서의 준비였다.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은 자율

물론 피고용자로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 스스로에게 월급을 주기도 턱없는 매출로 '내가 사장이요'하는 것은 우습다. 그동안 피고용자로서 일을 하며 배운 것들은 소중한 자산이며, 개인이 작은 사업을 시작해서 소비를 만들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잘 만들어진 조직 안에서 그 조직이 잘 돌아가도록 받쳐주며 그 응당한 대가를 받으며 생활하는 것 또한 훌륭한 삶이다.

 

판매가 없는 날이 더 많고, 많은 고민으로 시간을 보낼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고의 틀이 바뀐 것은 커다란 소득이다. 내가 일을 할 장소도 일을 할 시간도 내가 정한다. 그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진다. 요즘은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일을 한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긴 아이들 때문에 찾은 조용한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직장인으로서는 금요일 저녁이 제일 좋았고, 일요일 저녁은 뭔가 불안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상관없다. 사업을 하면 주말에도 편하게 쉴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꿈이 있고 목표가 있으면 무슨 요일인가가 밤낮이 중요할까? 주중이라도 며칠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주말이라도 새벽에 일어나 생각을 정리하 계획을 수정하기도 한다. 


위험, Risk? 하하 분명히 작지 않다. 연금도 적게 내야 되고, 저축도 못하는 달이 많고, 코로나 같은 재앙이 왔을 경우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월급과 안정 대신 받고 있는 경험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설령 나중에 다시 누군가의 돈을 받고 일을 하게 되더라도 지금 내가 배운 것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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