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우리 안에 가둔 우리...
독일 정착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독일에서의 첫 직장을 떠나 이직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동안 말도 좀 늘었고, 낯설던 사회에 적응도 했다. 새로 일 하기로 한 회사에 출근 하기까지 시간이 잠시 나서 큰 아이를 데리고 급하게 계획 없던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삼일절 100주년 기념비적인 그 날 한국에 도착했다.
3.1 운동 100주년 야구 한일전 명승부
도쿄돔 잠재우고 미국 애너하임에 태극기 꽂다.
너무 극단적인 신문기사 제목을 고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느 TV 먹방 프로그램에서는 그 날 일본음식을 방송으로 내보냈다가 국민감정을 고려해 사과문을 내기도 했다. 뭔지 모를 이 씁쓸한 느낌은 어찌 설명을 해야 될까?
주변국과 분쟁이 있는 경우는 많다. 비단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영국이 그렇고, 미국과 멕시코, 중국과 그 주변국들, 그리고 발칸 국가들 등등. 일본의 국제적으로 비윤리적이고 뻔뻔한 태도는 분명 한국인으로서 기분 나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랜만에 모국에 돌아온 한국인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생산적으로 재해석하기보다는 굳이 감정적 적대감을 부추기는 듯한 언론의 논리이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 우연히 독도이다. 아이들에게도 독도는 고양이 이름이다. 그래서 독도는 고양이 이름 이전에 한국의 아름다운 섬의 이름이란 걸 알려주고 싶어 어느 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틀어주었다. 그런데 그 경쾌한 리듬에 꽂혔는지, 노래가 주는 민족적 감정을 느꼈는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다. 틈만 나면 틀어달라고 하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뜻도 잘 모르고 따라 부르며 춤추는 걸 보면서 이 걸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문다.
이 걸 노래로 만들어 불러야 할 정도로 적법하게 대응을 못 하나?
유아 동요로까지 만들어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나?
하와이는 미국 땅,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 땅... 맞는 말이긴 한데, 독도만 우리 땅인가?
우리의 정의가 무엇인가?
이 넓은 세상에 안 그래도 좁은 대한민국 땅만을 우리로 정의해야 할까?
왜 '우리'라는 우리 안에 우리를 가두고 있는가?
오랜만의 모국 방문인데 마침 최악의 미세먼지가 며칠째 기승이다. 독도와 미세먼지를 연결하는 것은 비약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이 겹쳤다. 미세먼지의 원인을 전하는 신문기사의 논리나 댓글들을 보면 '우리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중국이란 몹쓸 이웃을 만나 우리가 고통받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만들어 필리핀으로 밀수출하는 우리 쓰레기는? 우리라는 정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집단을 정의하는 말인데 우리 땅이라고 하면 대한민국 땅이라고만 인식한다. 사실 일본도 중국도 한국도 모두 우리 별에 있는 우리 땅인데, 지구의 환경 문제는 지구의 문제이고, 중국 공장에서 나오는 최악의 대기 오염물질은 중국만의 책임이 아닌데 말이다.
최악의 미세먼지로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활동은 못 하겠고, 키즈카페에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플라스틱 컵에 플라스틱 뚜껑을 덮고 빨대를 꽂아 준다. 집에는 행주도 없어졌다. 전에는 키친타월이 있던 자리에 물에 적셔 쓰는 일회용 행주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식탁을 한 번 닦고 거리낌 없이 버린다. 편하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한 번 쓰고 버리는 저 쓰레기들을 생산하기 위해서 중국이 공장을 돌린다는 생각도 지나친 비약인가? 친환경 문구가 커다란 딸기가 스티로폼 박스에 비닐 포장지를 두르고 냉장고에 있다. 친환경의 기준이 무엇인지 설명은 쓰여있지 않았으나, 겨울에 딸기를 먹으려면 하우스에는 난방을 틀어야 한다. 포장은 차치하고라도, 친환경 딸기의 난방은 부디 태양열 난방이리라... 영세 농가를 지원한다고 화석연료로 만든 그 전기를 부디 싼값으로 공급하지는 않았으리라 믿으련다. 우리 땅을 노래로 만들어 부를 정도로 사랑하는 우리니까. 그래야 내 아이에게 노랫말을 설명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 별을 뒤덮고 있는 미세먼지는 다량 중국에서 온 것이 맞다. 그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우리가 한 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들도 우리 별을 뒤덮고 있는 것이 맞다. 그래서 우리 별 빙하가 녹고, 최악 한파와 최악의 더위가 오는 것도 맞다. 다만 대한민국을 떠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내가 만든 쓰레기가 필리핀으로 가든, 어디 바다로 흘러가 거북의 목을 조이든, 고래의 위를 틀어막던지는 일단 나 편하고 보고... 꽉 막혀 움직일 수도 없는 도로에 꾸역꾸역 차를 끌고 나오고, 언론은 대형 SUV가 대세라며 매일 신모델에 대한 기사를 써대면서 미세먼지는 중국 탓이라고 한다.
우리가 정의하는 우리의 크기가 대한민국을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삼일절 100주년을 맞아 우리는 피해자라는 인식을 공고히 하며, 우리의 정의를 내적으로 다시 한번 정의하고, 침략자에 대한 감정적 적대감을 다시 한번 심어주기보다는, 뜻깊은 삼일절 100주년을 맞아 불의에 저항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용기에 초점을 맞추었어도 되지 않았을까?
세계 흐름을 보지 못하고 '우리'라는 작은 우리에 갇혀 있다가 제국주의의 피해자가 되어야 했던, 그 당시 '우리'의 크기가 지금 우리가 정의하는 '우리'의 크기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 그 마저도 이제는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삼일절 100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지도 모른다.
독일 엄마와 한국 아빠를 둔 아이들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얘들은 독일 사람이에요? 한국사람이에요? 우리 부부는 이렇게 가르친다. 너희는 독일 사람이면서 한국 사람이고, 그리고 국적에 상관없이 지구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