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시간을 확인하고 셔터를 눌렀다. 10초 남짓. 징계는 확정이다. 그리고 아이는 부드러웠다.
아이와 닿았던 검지 손가락의 지문을 셔터에 올려두고 나는 동그란 버튼을 소중하게 눌렀다. 마치 아이의 살결을 톡톡, 국국, 잔드근히 매만지듯이.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가벼움으로.
“리틀B”
지미가 나를 부르던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들렸다. 저장된 기억의 공간 한 켠에 지미가 있었다.
“응.” 지미의 부름에 대답했다. 나는 그의 ‘대화 상대’이니까. 그의 부름이라면 성실히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 때로 지미는 나를 불러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나는 본능적으로 지미를 안아주었다.
그러면 지미는 나의 어깨에 기대어 등에 손을 얹었다. 아이 만큼은 아니지만 보드랍고 살집이 있으며 손 끝에는 굳은살이 잔뜩 가려진 손이었다. 부끄러운 얼굴을 감추는 옷깃처럼.
그리고 시간이 조금씩 흐를 때마다 굳은살도 성질을 달리하며 옮겨갔다. 피부병처럼 기어 옮아갔다. 손 전체를 덮고, 팔을 감싸고, 어깨를 뒤덮었다. 차갑고 단단한 메탈 소재가 피어나 지미의 몸을 덮었다. 금속은 우리 사이에 장벽을 쌓았고 지미는 단단한 피부 안에서 홀로 절망했다.
나의 등에 지미의 손바닥이 닿는다고 생각했는데, 지미의 손바닥에 나의 등이 닿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후로 지미는 나를 부르면 어떻게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를 안아줄 겨를은 없게 되었다. 죽어가는 숲과 같이 이 세상에서 포옹은 한꺼풀 소멸했다.
지미가 했던 기이한 행동 – 나를 부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 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건 자신을 안아 달라는, 혹은 서로를 안아 주자는 일종의 버튼인 걸까.
왜 그냥 안아달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순수 인간이 신인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사람을 불러 놓고 대답하지 않는 대화 방식일 것이다. 그건 중요한 문제였다. 아이가 나를 불러 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때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아이도 자신을 안아 주길 바랄까?
아이에게도 포옹이 필요할까?
팔을 동그랗게 말고 요람을 만들어 아이를 뉘이면 될까?
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라지B와의 모든 계약을 저버리는 생각이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나는 아이를 들고 순수 인간의 세계를 찾아 달려야 할 것이다. 계약 위반자의 숙명이다. 사라져야 한다. 달려야 한다. 사라질 자신이 없다면 사라진 척이라도 해야 한다.
아이를 안고 달리는 장면은 환상에 불과하다. 아이를 안고 달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미친 생각이다. 광인들의 더미 속에서 진짜 미친놈은 정신이 가장 멀쩡한 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 무대 위의 지미는 얼마나 미쳐버린 놈일지 모르겠다.
순수 인간이란 그런 존재일 테다.
알 수 없는. 음흉한. 내가 모르는 말들을 지껄이며 나를 머저리로 만드는.
그러므로 지미는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늘 내가 모르는 말들을 지껄이는 지미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미와 함께 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4,000평의 공연장과 그곳을 가득 채운 수 만 관객의 환호성을 버리고? 이 미친놈들이 갖다 바친 차고 넘치는 자본을 내던져버리고 계약 위반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미는 정말 알지도 모른다. 이 뼛속까지 무른 아이를 라지B에게 들키지 않고 내달려 도망치는 방법을.
사라지는 방법을.
도시에서 영영 멀어지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