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글리와 들러리 동물들. <정글북>

호불호 강한 리뷰어

by 아무도모르게

굳이 싫어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 어린이 영화 '정글북'

영화 기술의 놀라움으로 이미 평점 8점을 가볍게 뛰어넘은 이 영화.

뜬금없지만 사실 난 이 영화가 싫었다.




어린 시절에는 분명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정글북을 보았을 테지만 어느새 비관적인 시선으로 자라 버린 나에게 이 영화는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모글리'가 주인공일까. 내가 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가장 큰 불편함은 들러리가 되어버린 동물들에 있었다.


솔직히 수많은 동물들과 단 한 명의 인간이라 하니, 인간과 동물 간의 '사랑'이나 '우정' 같은 걸 기대할 법 하지만 영화 '정글북'에서만큼은 스쳐 지나가는 감정에 불과했다. 모글리는 키워준 늑대들에게선 부모의 사랑을, 중간에 만난 곰 발루에겐 우정을 느끼지만 영화를 이끄는 가장 큰 장치는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모글리라는 '인간'의 위치. 인간인 모글리만이 가능했던 행동들, 재능과 용기, 정글의 맹수마저 이기는 놀라운 지혜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보였다


늑대 열댓 마리가 달려들어도, 무려 곰 한 마리와 표범까지 달려들어도 무찌르지 못했던 무적의 사자 쉬어칸을 어린아이인 모글리가 이겼다. 고작 그 어린아이가 쉬어 칸을 이길 수 있던 비결은 모든 걸 불태워 버리는 Red Flower(불꽃)를 사용한 것. 사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던 모글리는 불꽃을 들고 숲 속을 뛰어다녀 결국 정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민폐 중의 민폐다.


그러나 모글리가 망쳐버린 정글은 그가 사태를 수습하기도 전에 코끼리님들이 대신 해결해준다. 다른 동물들은 감히 말도 못 거는 신성한 존재로 묘사되는 그 코끼리들에게조차 인정받은 유일한 존재 모글리, 공공의 적 쉬어 칸을 무찌른 유일한 존재 모글리. 그야말로 '완벽한' 정글의 영웅이다.


한 편, 영웅 모글리가 불을 가져와 사자를 물리치고 있을 때 동물들은 그저 호숫가로 피신해 먼발치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무슨 코미디인가. 이 영화에선 갖가지 도구들을 활용해 꿀을 따고, 사자까지 물리치는 모글리의 지혜와는 대비되게 '동물'들은 어쩐지 인간 모글리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비쳤다.

"결국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 이 전제가 이 영화에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만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이다. '모글리'라는 아이가 자아를 찾고 성장해 나가는.

내가 아이였으면 이 영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바라건대 '무서운 사자는 불로 무찔러야지'라던가 '똑똑한 모글리 멋지다'라는 것만 아이들의 기억에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어린 시절을 더듬어보니 여러 동화에서 '사자는 나쁘고 곰은 착해'와 같은 이야기를 쉽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정글북'도 결국 그런 이야기 중 하나인 것일까. 게으른 토끼와 부지런한 거북이. 나쁜 사자와 용감한 인간. 그 정도?


아직도 사자랑 곰 중 누가 더 착하고 나쁜지 알 길도 없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동물들은 우리처럼 도구를 못쓰니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인지를, 감히 우리에겐 숲 속의 사자를 해칠 권리가 없다는 것쯤은 분명히 알고 있다. 부디 아이들이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보게 될 수많은 편견들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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