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세상

따끔따끔 마이 패밀리

by 아무도모르게


오늘 아빠의 정년퇴임식을 다녀왔다. 그곳엔 내가 모르던 아빠의 세상이 있었고, 33년간의 아빠의 청춘과 젊음 그리고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 따뜻했던 가을 날,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단정한 옷을 꺼내입고, 예쁜 꽃다발을 한아름 안아 아버지 회사로 찾아갔다. 정말 애기때 한 번 가보고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 가보는 아버지 회사인데 너무 긴장이 되었다. 회사입장에선 우리 가족이 반갑지 않을까봐, 어차피 이제 오늘이면 회사를 떠날 사람. 가족들까지 오면 부담스럽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딸인 내가 너무 감사할만큼 그곳엔 우리 아빠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계셨고

그동안 우리 아버지가 잘하셨든 못하셨든 다 잘해주었다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우리 아버지의 삶은 참 파란만장 하셨다.

내가 어렸을때 아버지는 항상 술을 드셨고 담배 냄새가 자욱했다. (나는 모든 아빠들이 다 똑같은 줄 알았다.) 아버지는 매일 술마시느라 늦게들어오시는 날이 잦았고 속상해하는 어머니가 계셨다. 술 좀 그만 먹어!라며 어머니가 다그치시면 아버지는 웃으시며 거참 밥 먹다가 한잔 좀 마셨어 그래, 라며 우리 속도 모르고 웃으셨다. 그런 아버지가 미울때도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술을 드시고. 공부로 예민한 나와 언니에게 밀다 만 까끌한 턱수염을 들이대시며 뽀뽀를 하셨다. 그 까끌까끌한 수염과 담배냄새, 술냄새가 싫어 어린 나는 맨날 방으로 도망갔다.


그래서 나와 언니의 지난 20년간의 유일한 소원은 아버지가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이었다. 아버지 생일과 어버이날 편지에 매일매일 빠짐없이 써내려갔다. "아빠 올해는 제발 술도 그만드시고 담배도 끊으세요~"

아버지는 물론 끊지 않으셨고 똑같이 나쁜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기침이 잦아지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술을 왜 그렇게 마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건 아니다. 나도 회사생활을 하다보니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못참겠구나 싶은 순간들이 참 많다는 것을 배웠다. 아버지는 그런 하루하루를 술로 버티셨던 거겠지. 지금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드시고, 담배를 너무 많이 태우셨다.


그렇게 몇년 후, 대학생이 된 나는 해외로 교환학생을 떠나게 되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매일 놀러다니며 부모님께 연락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가끔 영상통화를 하면 내 얘기만 하기 바빴다. '오늘은 어디를 갔다 왔어~ 오늘은 이거를 먹었어~ '그러고는 끊어버렸다. 건강히 잘 계신지 나는 왜 6개월동안 한번도 여쭤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6개월 후, 공항에서 나는 가족들과 만났다. 모자를 푹 눌러쓴 아버지, 야위신 어머니 그리고 언니를 만났는데 반가움에 웬지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무거운 캐리어를 보고 어머니가 같이 끌어주셨다. 원래 이렇게 힘쓰는 건 항상 아빠가 도와주셨는데 왜 오늘 아버지는 가만히 계시지? 약간 의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도 조잘조잘 한국 너무 춥다~ 김치찌개 먹고싶다~ 연신 내 얘기만 조잘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가족들은 나에게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해주셨다. 아빠가 폐암 말기라고 하셨다. 그동안 태운 담배연기가 아빠를 아프게했다.


억장이 무너졌다. 많이 마르시고, 머리가 빠지신 이유가 이거였다. 그 무서운 항암치료를 하실 동안 철없는 나는 친구들과 매일 놀러다니고 빈둥빈둥되었다. 아버지가 아프신 6개월동안 단 한번도 옆을 지켜주지 못했다. 전이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고 이제 매달 검사를 받아야하신다고 하셨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담배와 술을 달고 사셨으니 몸이 상할만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우리 가족에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그날부터 매일매일 폐에 좋은 음식과 습관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아빠한테 매일 잔소리했다. 아빠 이거먹어 아빠 운동조금만 하자. 절대로 아빠를 잃을 순 없었다. 우리 가족은 사력을 다했다. 아버지도 다행히 항암치료 중에도 놀랄만큼 밥을 정말 잘 드셨고 기력을 많이 회복하셨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 직원분들이 아버지를 정말 많이 챙겨주셨다. 내가 외국에 있는 동안에도 자주 병문안 와주시고 우리 가족들을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고 하셨다. 나도 못한 일을 해주신것이다. 너무 감사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이번엔 우리 아버지 퇴임식까지 열어주셨다. 아버지가 거의 1년을 회사 출근도 못하셨는데 다시 출근하시기를 기다려주셨다. 정말 고마운 회사이고 고마운 분들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퇴임식 날. 직원분들 앞에서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고개숙여 우셨다. 아버지가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직원분들도 다 같이 우셨다. 매일 힘들어 보이셨던 직장에서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사람들 덕분에 다닐 수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퇴임식이 끝난 후,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였다. 직원분들 한 분씩 우리 가족들에게 아버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한 분은 퇴사하고 싶을 정도로 힘드셨는데 우리 아버지가 다시 생각해보자라는 말에 이렇게 다닐 수 있으셨다고 우리 아버지를 정말 존경하고 따르신다고 해주셨다.

그리고 또 한 분은 우리 아버지가 부하 직원들편에서 싸워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며 정말 감사한 분이라고 전해주셨다. 밥 먹는 동안 목이 메어 몇번을 참았는지 모른다.


파란만장한 우리 아버지의 삶에 이토록 따스한 사람들이 계셨다니. 내가 모르던 아버지의 삶이 이토록 단단히 쌓아가고 있었다니. 나는 아직도 아빠를 정말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임식 덕분에 아버지가 얼마나 회사 생활에 열심히셨고, 남 부끄럽지 삶을 사셨는지 알게 되었다. 병마도 멋지게 이겨내시고, 33년간의 회사생활도 멋지게 해내신 우리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나도 아버지처럼 잘 해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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