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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May 24. 2016

아이의 자전거

아이를 홀로 세우는 힘, 자존감

퇴근을 하려고 신을 갈아 신고 학교 현관을 나서는데 돌봄교실에 있다가 집에 가는 아이가 일부러 내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스윽 다가온다.
그리고 나 들으라는 듯 소리 나게 브레이크를 끼익 잡는다. 소리에 놀란 나를 보며 자랑하듯 말한다.

선생님, 나 드디어 보조바퀴 띠었다요. 그거 없어도 안 자빠져요.

난 약간 놀라는 척하며 와, 좋겠네, 하며 카메라를 꺼낸다.
아이는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자전거 방향을 적당한 각도로 튼다.

갓 핀 오이꽃처럼 야무진 아이의 표정에 자부심이 살아있다.



사진을 찍자마자 이번에는 자기 헬멧을 벗어 쭉 내밀어 보인다. 헬멧도 샀다요. 이거 엄청 좋은 쌔거예요.
얻어 온 자전거여서일까, 유난히 새것임을 강조하는 그 헬멧을 나는 일부러 이리저리 꼼꼼히 살피는 척하며 한 마디 해 준다.

오, 이거 고급 헬멧이네. 충격 방지 장치, 통풍 기능도 있는걸.

난 일부러 아이가 잘 못 알아들을 어려운 단어를 나열해 가며 헬멧을 칭찬한다.

아이는 나의 반응이 흡족한지 으쓱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이왕 칭찬하는 김에 좀 더 나가보기로 마음먹는다. 좋은 헬멧은 가볍다는데... 너 혹시 이 헬멧 쓰면 머리가 가벼워, 무거워?

그러자 아이는 헬멧을 바로 뺏더니 바로 머리에 쓰고는 머리를 유난히 빨리 흔들어 보이면서 대꾸한다. 하나도 안 무거워요. 엄청 가벼워요. 진짜요.

그러면서 이번에는 나에게만 알려준다는 듯 조용히, 그러나 힘주어 말한다.

나 앞으로 맨날 자전거 타고 와요. 아빠가 그래도 된데요. 바퀴에 바람도 빵빵하게 넣어줬다요. 한 번 만져 봐요.

난 일부러 바퀴를 세게 누르는 척하며 꾹꾹 눌러본다.

그러다 바로 힘이 빠진 척 엄살을 부린다. 야, 니네 아빠가 엄청 딴딴하게 넣어 주셨다야. 절대 빵꾸 안 나겠네.

이 말이 끝나자 아이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자전거를 휙 돌려 내 차보다 앞서 학교를 빠져나간다.  


자동차가 당당히 달리는 길이 있고 그 옆에 자전거 도로 또한 당당히 확보된 도시와 달리,

이 동네의 모든 길은 차가 더 우선인듯하다. 그 길을 저 아이는 신선처럼 유유히 자전거로 달린다.

아이가 처음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던 날, 부모는 아이가 무사히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뒤에서 차로 따라오다가

아이가 교문을 들어서는 걸 확인하고 돌아갔다. 귀갓길도 마찬가지였다.

차가 많지 않은 동네지만, 그래도 마을을 통하는 유일한 길이다 보니 농사를 위해 오가는 차들 때문이다.

어차피 퇴근 길이 아이 집 방향인 내가 뒤에서 따라갈 때도 있었다.

그러면 다음 날, 아이는 내게 퉁을 주곤 했다.

으이구, 내가 잘 간 단 말이에요. 왜 선생님은 우리 아빠처럼 자꾸 나를 따라올라 그래요.

대신에 아이는 내가 걱정할 만한 것들을 앞서 읊어준다.


- 차 다니는 길 가운데루 가는 게 아니구 길가 쪽으로 가야 돼요. 차가 쌩 지나갈 수도 있으니깐요.

- 꼬부라진 길은 아주 츤츤히 가든지 내려서 끌고 가는 게 좋아요. 뭐가 앞에서 텨 나올지 모르니깐요.

- 차가 오면 부레끼를 잡어요. 그러믄서 엉덩이를 들어 앞으로 하면서 발끝으로 땅을 딱 짚으면 멈춰요.

- 뻐스가 올 땐 무조건 서서 비켜야 돼요. 뻐스 아저씨는 내가 안 보여서 몰르구 까 봐요.


이것들을 아이의 아빠는 백 번도 넘게 가르쳤을 것이다.

그래도 불안해서 아이의 뒤를 차로 따라갔을 것이다.

아이가 그만 따라오라고 했을 때에도 멀리서 아이를 지켜봤을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 마음 같아선 차로 안전하게 모시고 싶었을 것이지만, 홀로서기를 위해 참았을 것이다.

이십 년 넘게 교육학을 붙잡고 살아온 나도 정작 내 아이는 이렇게 키우지 못 했다.


1학년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는 건 학교 모든 교사들의 관심을 끄는 일이어서

선생님들은 아이를 볼 때마다 헬멧 꼭 쓰라고, 차 조심하라고, 자전거 살살 타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중 나는 특히 담임이라는 이유로 잔소리를 더 했다.

그래서일까, 집에 가는 길에 나와 마주치면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이거 봐요, 나 헬멧 썼죠?



*

학교 돌봄교실은 대부분 교사들이 퇴근할 무렵 끝난다.
돌봄교실에 있던 아이들과 나는 비슷한 시각에 학교를 나서 집으로 간다.

먹고살기 위해 학교라는 일터에 머물러야 하는 나와 성장하기 위해 배우기 위해 머물러야 하는 아이의 시간이 거의 같다.

선생으로 늙어가는 나와 학생으로 갓 온 1학년 아이 사이에 학교라는 상징으로 해석되는 삶이 얼마나 의미가 있으랴마는,

매일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오고 또 집으로 떠나서일까, 아이들과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학교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차를 타고 등하교 한다. 특히 저학년은 더하다.

어릴 적, 나는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살았다. 학교에 오갈 때 걷는 방법 외 다른 방법은 몰랐다.

엄마가 아침을 주면 먹고 바로 가방을 메고 학교로 걸어갔다. 그리고 끝나면 다시 그 길을 걸어 집에 왔다.

뜨거운 햇살은 고스란히 몸으로 받았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썼지만, 워낙 걷는 시간이 길어 별 효과 없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배운 공부나 친구들과 놀던 일 보다 오가는 길을 더 좋아했다.

그 길가엔 항상 뭔가가 있었다. 그건 항상 같은 게 아니었다.

미나리아재비, 찔레, 진달래, 고광나무 같은 꽃들과 잔대, 고사리, 산미나리, 고비 같은 나물들. 그리고 가끔 날 놀래키던 뱀과 파란 새알.

그렇고 그런 공부가 매일매일 이어지던 교실에 비해 그 산길은 얼마나 변화무쌍하던지.


어떤 봄날엔 진달래로 붉던 산이 또 며칠 지나면 어디에 숨었다 그렇게 일제히들 피는지 산벚나무꽃으로 온 산이 뭉게뭉게 하얗다가

또 며칠이 지나면 아까시가 숨 막히게 피는데, 그 달고 요염한 꽃을 따 먹다 보면 며칠이 지나 뻐꾸기가 울기 시작했고 감자꽃이 핀다.

감자꽃이 질 무렵엔 뽕나무 오디가 검게 익는다. 내 옷섶에 오디 물이 검게 물들어 몇 번 빨아 입을 때면 가시 사이로 산딸기가 빨갛게 익는다.

빈 도시락에 산딸기를 가득 따 마구 흔든 다음 숟갈로 퍼먹는다. 먹고 나면 이 사이로 딸기씨가 낀다.

그렇게 며칠을 먹다 보면 어느새 자두가 익는다. 이어 살구가 익고, 또 이어서 매실. 열흘쯤 지나 복숭아를 따먹고 나면

어느새 첫 옥수수가 여문다. 그걸 엄마가 한 솥 가득 쪄두면 마당을 오가면서 하나씩 꺼내 먹다 보면 여름이 간다.


더운 바깥에서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종일 놀다가 해질 무렵이면 개울가에 발을 씻으러 나간다.

개울가에서 꼬래(곤충의 유충을 부르는 고향말)를 잡아 미끼를 삼아 낚시를 하면 쉬리, 동자개, 버들치, 피라미가 늘 물었다.

무릎 깊이의 개울에 서서 흘러가는 물을 내려다보면 물이 흐르는지, 내가 위로 올라가는지 모를 착각이 들어 어지럼증이 나는데

난 이걸 너무 좋아해서 으레 놀이를 하곤 했다. 어떤 날엔 어지러워 넘어지기도 하는데 그 순간의 아득함은 중독성이었다.

보름날 밤이면 하얀 달 아래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하얀 옷을 입고 이히히히, 귀신 놀이하던 그 재미를 어찌 잊을까.


어른들은 또 그렇게 산에 피는 꽃들과 들려오는 새소리를 듣고 언제 뭘 심어야 할지를 알았다.

아이들도 아까시 향기가 나면 뭘 심어야 하고 깨꽃이 피면 뭘 해야 하는지 알았다.

오뉴월 땡 볕을 참으며 감자를 다 캐고 나면 동네 사람들은 개울가에 솥을 걸어 고기를 잡아 천렵을 했다.

어른의 삶 주변엔 항상 어린아이들의 놀이거리도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이렇게 풍요로운 낙원의 시간이었다.

자연이 변하는 모습은 시골 아이들에게 가장 정확한 달력이었고 놀이의 교과서였다.

그 점에서 그걸 모르고 사는 요즘 아이들이 가엽다.

하지만, 지금 자전거를 타고 쌩 달아난 저 녀석은 나의 어릴 적 재미를 능가할 것 같다.



*

난 아이가 어떻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안다.
아이가 자전거에 대한 그림일기를 매일 그렸기 때문이다.
한 달쯤 전이었나, 아빠가 어디서 어린이용 자전거를 얻어왔다.
아이가 그걸 타고 싶어 하자 아빠가 말한다. 넌 아직 작아서 못 타. 2학년 때 타면 되잖아.
또래보다 작은 편인 아이는 자전거를 타는 대신 끌고 동네를 다니며 논다.
그걸 본 아빠가 보다 못해 보조바퀴를 사다가 달아준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왔다 갔다 한다.
그걸 본 아빠가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며칠이 더 지나 아이는 보조바퀴 없이도 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학교에까지 타고 오게 된다.


퇴근길에 나는 이 아이가 사는 동네를 지나간다.
아이는 마을회관 공터에서 종종 자전거를 타다가 내 차를 보면 재빨리 내려 손을 흔들곤 했다.
하지만 이제 아이는 나에게 손을 흔들기 위해 자전거를 세우지 않는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자전거 타게 하는 힘은 자신감이다.

자전거를 타고 혼자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나만의 확신.

그 자신감은 스스로 뭔가에 도전해 성취해 본 경험이 만들어 낸다.

한 번 자신감을 경험해 본 아이는 다른 도전에도 과감해진다. 그리고 더 쉽게, 잘 해낸다. 그렇게 자신감은 가속도를 지닌다.

자신감은 타인에게 인정 받는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나는 한다고 했고, 또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타인이 못했다는 평가를 내리는게 반복되면 아이는 자신감을 잃는데,

이 아이의 자신감은 아이가 자전거 타기의 한 계단을 해 낼 때 마다 폭풍처럼 쏟아졌을 부모의 인정에서 왔을 것이다.

아이가 자신감에 대해 스스로 의심하지 않고 비로소 인정하게 될 때, 자존감은 기다렸다는듯 생겨난다.

아이는 자기가 뭔가를 할 수 있고(자신감) 이런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난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었다(자존감)고 생각한다.

아이의 부모님은 자전거로 이 과정을 키워냈다.


아이가 자존감을 얻는 계기는 아이의 일상에서 수만가지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가 그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끄는게 어려운데, 이 아이는 그런 기회를 많이 가진셈이다.

온전히 자전거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환경 때문이다.

만약 아이의 부모님이 '자전거가 위험하니까' 못 만지게 했다면 아이는 이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오로지 '장난감'에 대한 자유만 준다.

아이는 장난감이라는 범주에 갇혀 그 너머의 현실 세계로 가는 길을 막히기도 한다.

결국 자존감으로 길로 통하는 문은 부모가 지키고 있는지 모른다.


친구들보다 작은, 여자 아이가, 1학년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제법 되는 거리를 통학한다는 게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그 현실을 핑계로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홀로 설 기회를 포기해도 덜 아까워하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저 아이는 운이 좋은지 모른다.

그래서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손목으로도 학교 앞 벚나무를 거뜬히 기어 올라가고놀다 무릎이 깨져 피가 나도 슥슥 털고 벌떡 일어나 다시 뛰어 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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