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일학년담임 Feb 22. 2017

아이가 잘 큰 다는 건 뭘까

방향을 알려 줘



다인.

매화 꽃눈이 도드라지는 걸 보니 겨울이 힘이 빠졌나 봐. 

내 친구 중 한 명이 죽었어. 

어디가 아파 죽은 게 아니라 스스로 죽었대. 

봄을 채 보지도 못하고 언 땅에 묻혔어. 꽃이 피면 노랗고 하얀 민들레가 지천인, 하지만 지금은 아직 무채색인 땅에.

그 친구의 아이가 많이 아픈 채 태어났고 

그동안 치료하고 키우는 게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전에 들었는데. 

그래서 죽은 모양이래. 지금 죽으면 꽃도 없는 땅에 묻히는데. 그만큼 힘들었나.


살다 보면 그냥 죽어버리고 싶을 때가 오나 봐.

죽으면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고 그 뒤에는 그저 깜깜한 색깔만 남을 것 같은 그런 때가.

근데 막상 죽고 나도 그 사람 주변에서 힘든 걸 함께 견뎌내던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잖아.

내가 죽는다고 해서 남아 있는 사람의 고통이 멎거나 줄어드는 게 아니잖아. 오히려 한 겹 고통을 더 얹지.

그래서 죽은 친구가 바보 같네, 난 이렇게 말했어.

그러자 내 말을 들은 다른 친구가 이러는 거야. 야, 넌 니 애들이 잘 컸으니 그렇지.


그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내 아이들은 잘 컸을까?

다인이는 잘 컸을까? 그걸 어떻게 알지?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될라나? 그럼 다인이에게 지금 묻는다면, 넌 잘 컸는지, 아닌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잘 큰 다는 게 어떤 건지 너는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아니 그렇다고 지금 당장 생각하라는 건 아냐. 그런 건 한참 뒤 네가 삶의 골짜기를 홀로 지나게 될 때 순간적으로 알 게 될 테니.)


공부를 잘하거나 효도를 하거나 인류에게 선한 일을 하면 잘 큰다는 가치에 부합할까.

그럼 공부를 못 하면 못 크는 걸까. 범죄자로 크면 잘 못 크는 걸까. 나라를 팔아먹으면, 자식을 버리면 잘 못 크는 걸까.

사는 것도 정신없는데 무슨 죽는 걸 생각하냐고 퉁 놓는 사람들도 있겠지.

죽을 시간도 없이 바쁘니 그딴 거 묻지 말고 저리 가라고 호통치는 사람도 있겠고.

이것저것 신경 쓰기 싫어 그냥 아무렇게나 살다 보니 이렇게 컸다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럼 그렇게 크는 건 잘 크는 걸까. 아니면 못 크는 걸까.

잘 크고 못 크는 건 누가 결정을 할까. 나 대신 결정해 줄 수 있을까.

잘 크면 또한 잘 죽을 수 있을까. 잘 죽는지 아닌지 자기가 죽기 전에 알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은 뒤 남은 사람만 알 수 있는 걸까. 혹은 죽음이란 그런 것조차 필요 없는 걸까.

죽은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내내 난 이런 생각을 했어.

왜 그렇게 산만하냐고, 상갓집에 왔으면 말을 좀 하든지 울든지 술이라도 먹든지 하라고 욕을 먹으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에게 물어봤어. 니 애는 잘 컸니, 아니면 못 컸니.

잘 못 키웠대. 아빠인 자기가 바빠서. 대화를 못 했더니 지금은 자기를 쳐다보지도 않는대.

자기가 밥 먹으러 나오면 아이는 방으로 들어가고 자기가 일을 나가야 그제야 나와서 밥을 먹는대.

대화 좀 하자고 하면 할 말 없다고 한대.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대. 답답해서 뭐라 그러면 운대. 고딩 딸아이가.

또 생각해 봤어. 아빠와 말을 안 하면 잘 못 큰 걸까 하고. 잘 못 큰다면 그건 아빠가 정한 걸까 딸이 정할 걸까.

잘 크기 위해 말하기 싫어도 자기 마음을 속이고 가면을 쓰고라도 아빠를 좋아하는 척, 아빠와 정다운 척해야 할까. 그럼 그건 잘 크는 걸까.

그래, 사실은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썼어. 넌 나와 말을 잘 해 줘서. 나를 피하지도 않고 할 말 없다고 떠밀지 않아 줘서. 그게 고마워서.




from 다인 : 좋은데? 굳이 한 가지 비판할 곳을 꼽자면 난 어떤 죽음도 바보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오로지 그 사람만 가지고 있는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 

겉만 보고 사람들은 자식이 잘 못 자라서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속에는 아버지로서의 또는 가장으로서의 죄책감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남들은 백번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상처로 곪아있었겠지

하지만 나에게 고마워해 주는 건 고마워 나도 항상 아빠에게 고마움을 느껴 나한테 사랑을 많이 주어서❣

작가의 이전글 가만히 안 있을 걸 그랬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