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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n 27. 2017

트라잉투레츄노

1학년 아이, 어떻게어른이되는가

수업 전, 짧게나마 글쓰기를 매일 하다 보니 아이들이 아침마다 오늘은 뭣에 대해 쓸 거냐고 묻습니다.

별생각 없이 요즘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면 어떨까,라고 말하니 한 아이가 대뜸, 그럼 트와이스의 나연이 언니에게 편지 쓰면 안 되냐고 묻습니다.

트와이스가 누구냐고 물으니 아이들끼리 잠시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이내 저를 향해 한심하다는 표정을 합니다.


"선생님, 트와이스한테 편지 쓰는 게 아니구 나연이 언니라니깐요."


그러자 옆 아이가 끼어듭니다.


"야, 나연이 언니가 트와이스야."


저도 멍한 얼굴로 끼어듭니다.


"그러니깐 나연이 언니 이름이 트와이스야? 와, 멋지네. 이름이 두 개라서."


두 아이는 저화 대화가 안 된다는 듯 '트와이스는 언니들이 되게 많아요. '시그널'도 부른 언니들이라구요!' 선생님은 그것도 몰라요? 외칩니다.

그 말에 옆 아이가 노래를 시작하고 이내 다른 아이도 따라 합니다.


트라잉 투 레츄노

싸인을 보내 시그널 보내

아이 마스트 레츄노

싸인을 보내 시그널 보내


싸인을 보내 시그널 보내

싸인을 보내 시그널 보내

싸인을 보내 시그널 보내

아이 마스트 레츄노


여기까지는 제법 우렁차게 노래를 합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가사가 잘 기억이 안 나는지 서로 다른 가사로 얼버무리는가 싶더니

특정 구절에 가서는 다시 우렁찬 목소리로 돌아오는군요.


싸인을 보내 시그널 보내...

시그널 보내 시그널 보내 

찌릿 찌릿 찌릿 찌릿

난 너를 원해 난 너를 원해

왜 반응이 없니...


찌릿 찌릿이라... 아, 간절한 사랑 노래군요.

아이들은 이 노래를 다 아나 봅니다. 신이 나서 목젖이 보이도록 열창합니다.

저런 노래는 청소년이 되어 좋아하고 대신 지금은 동요를 저렇게 좋아하면 어떨까 싶지만 TV에 나오는 유행음악의 힘을 동요가 이기기 힘듭니다.





남자아이들이 아직 파워레인저, 킹콩, 피젯스피너 같은 관심사에 머무르는 것에 비해

1학년 여자아이들 중에는 유행가를 좋아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어지간한 걸그룹은 다 꿰고 있습니다. 걸그룹뿐 아니라 드라마에도 관심이 많군요. 저에게 드라마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덕분에 저도 어떤 요일엔 어떤 드라마가 나오는지 대충 알 정도입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드라마가 다른 것도 압니다.


어떤 아이는 더 나아가 유행가 가사나 드라마 내용을 흉내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자아이에게 사귀자는 고백을 하기도 하고 드라마 내용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에 대한 열정을 넘어 자기가 이담에 예쁜 여자가 되면 드라마 주인공 같은 남자와 사귈 거라고 합니다.

아동심리학자들은 이 과정을 동심의 단계에서 청소년 과정으로 이행하는 것으로 봅니다.

아이들의 동심이 적당히 풍성해진 상태에서 청소년 심리로 전환되는 게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입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아직 1학년이라는 거지요. 남녀 간의 애정을 이해하기엔 어린 나이입니다.

1학년은 자연의 아름다움(계절의 변화, 사람들이 계절마다 하는 일), 생명의 소중함(텃밭 가꾸기, 동식물 기르기, 자연 다큐멘터리 감상), 나의 성장을 돕는 사람(가족, 친구, 선생님, 지역사회의 소중함)을 알고 느껴야 하는 시기이지요.

그래서 1학년 교육과정은 이런 것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요즘 1학년은 이런 것들보다 연예인에게 더 열광할까요.

아이들이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놀 시간은 줄어들고 주로 가정에 매스미디어에 몰입하는 환경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지금의 부모 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거지요. 이 아이들이 어떤 어른이 될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제 입장에서도 이 점은 고민입니다.

아이들은 끝없이 유행가를 틀어달라고 조릅니다. 유행가 대신 동요나 동화를 틀어주면 그것 말고 유행가를 요구합니다.

심지어 유튜브에서 뭐라고 검색하면 되는지 저에게 알려주면서 한 번만 틀어달라고, 그러면 선생님 말을 잘 듣겠다고 협상을 해옵니다.

저로선 망설여집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부분 노래들이 걸그룹 노래인데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시청연령이 1학년 아이들보다 대부분 높습니다.

건강한 몸매를 넘어선 마른 몸, 그걸 교묘히 드러내는 의상, 몸의 특정 부위가 부각되는 율동, 보는 사람을 유혹하는 표정... 이걸 1학년 아이들이 봅니다.


선정성은 그걸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눈 요깃거리지요. 그게 인기를 올려주고 돈을 벌어줄 겁니다.

하지만 아직 그걸 이해하기 힘든 아이들에게는 혼란입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가수의 몸동작을 따라 합니다. 그게 좋다고, 예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어른의 섹시 댄스를 흉내 내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러면서 아이들은 은연중에 섹스 어필에 대해 알아가겠지요. 왜곡된 성 의식일까 봐 걱정입니다.

아이들이 이런 영상에 열광하는 한,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의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아이로 머무르게 하려 하고, 아이들은 어서 어른 흉내를 내려고 서로 맞서는 상황입니다.


이런 매체에 대해 아이들에게 시청 제한을 하지 않는 부모님들은

이건 걸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과 없이 보여주거나 또는 함께 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타고 가는 차 안에서 이런 노래를 틀기도 하고 부모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아이가 보는 걸 허용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들이 다 그러면서 크는 거 아니냐고. 틀린 말은 아니지요. 아이들은 어떻게든 자라고 어른이 되니까요.

하지만 아이를 기르는 일에는 먹이고 입히고 공부를 시키는 것 외에 발달 연령에 맞춰 동심을 유지해 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동심을 구성하는 건 친구에 대한 사랑과 신뢰, 옳은 일이 끝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믿음, 현실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보람을 알게 합니다.

비록 예쁜 몸과 섹시한 춤을 배우게 해주지는 않지만, 이렇듯 동심은 아이들로 하여금 치열한 성장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이기는 힘을 줍니다.

아이고, 쓰다보니 또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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