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는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머리에 구멍이 나서 뇌가 보였다.
병원에서 꼬맸다
77살이다
오래 살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니라고 했다.
아침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
한 아이가 제게 오더니 제 나이를 묻습니다.
몇 살이라고 말하면 적당할까 고민하다가 너네 아빠랑 나이가 비슷하다고 했더니, 선생님도 사십 네 살이에요? 묻습니다.
얼결에 응, 그랬더니, 우리 할아버지는 칠십 칠 살인데. 오래 살았어요. 근데 할머니는 아니래요, 그럽니다
이거다 싶어 종이를 한 장 내밀며 이걸 글로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준 종이가 너무 컸을까요?
아이는 제가 준 종이를 가위로 싹둑 자르더니 할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아까 말한 내용만 쓸 줄 알았는데 그 앞 부분 살을 붙여 쓰는군요.
우리 할아버지는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머리에 구멍이 나서...
구멍이 나서... 여기까지 쓰더니 갑자기 멈추고는, 머릿속에 있는 거... 생각하는 거 그게 뭐예요? 묻습니다.
뇌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이왕이면 그냥 아이의 말 그대로 생각하는 거라고 쓰면 어떨까 하고 대답을 하는데, 바로 옆 아이가 '뇌'라고 말을 해버립니다.
아이는 그 말을 듣자 바로 '뇌'라는 말을 씁니다. 아이고, 아까워라.
그래서 머리에 구멍이 나서 뇌가 보였다.
여기까지 쓰고 더는 쓰기 싫은 지 저에게 종이를 내밀길래, 그래서 어떻게 됐어? 물으니 병원에 가서 꼬맸죠, 그럽니다.
근데 종이가 없어서 못써요, 그러길래 아까 아이가 잘라낸 종이를 재빨리 내밉니다.
그만 쓰고 싶은데 선생님이 자꾸 더 쓰라고 하니 아이 기분이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계속 이어서 씁니다.
병원에서 꼬맸다
조금만 더 이야기하면 더 글이 나올 것 같아 더 말을 붙여 보았습니다.
나 : 할아버지 병원에서 꿰매셨어? 아, 아프셨겠다.
아이 : 우리 할아버지 칠십 칠 살이에요.
나 : 와, 선생님 엄마도 칠십 칠 살인데?
아이 : 오래 살았죠.
나 : 그렇지. 오래 사셨네.
아이 : 근데 우리 할머니는 아니래요.
나 : 할머니는 왜 아니라고 하셨는데?
아이 : 몰라요.
77살이다 / 오래 살았다 / 그런데 할머니는 아니라고 했다.
이 문장에서 아이는 담담하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의 막역한 관계를 느낍니다.
할머니의 말뜻을 아이는 정말 모르고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모른다면 할머니가 할아버지 연세를 두고 오래 사신 게 아니라고 한 말을 기억할 리 없습니다.
아이의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할아버지를 대하는 할머니의 염려를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입을 통해 아이 또한 할아버지가 아직 오래 사신 게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할머니도, 아이도 멋집니다. 그러고보니 이 글의 힘은 할머니로부터 왔겠군요. 아이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 할아버지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