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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Oct 08. 2021

공부를 처음 해보는 아이들의 반응

첫 경험의 강렬함

공부를 처음 해보는 아이들의 반응

요즘 학교는 예전에 비해 더 다양한 교육을 한다. 무용이나 국악처럼 전문 예술 영역을 따로 지도하거나 생태교육이나 체육 전문가가 직접 수업하기도 한다. 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생겨났고, 학교에서 그분들을 초빙할 여력이 생긴 것이다. 선생이면 모든 능력을 고루 갖추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난 그렇지 못하다. 특히 예체능은 겨우 아이들 수준에 머물고 있어서 가르칠 때마다 민망할 때가 많았다. 하필이면 나를 담임으로 만났던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는데, 그런 점에서 다행이다.


드디어 오늘, 첫 국악 수업이 있었다. 선생님은 빨갛고 날렵하게 생긴 장구를 옆구리에 척 메고 나타나 아이들 앞에서 몇 개의 장단을 쳐 보이셨다. 교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아이들은 금세 빠져들었다.


"와, 대박! 그거 뭐예요?" 하며 다짜고짜 달려들어 장구를 만져보려는 아이도 있고, "아우, 시끄러워. 뭔 소리가 이렇게 커요." 하면서 귀를 틀어막는 아이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능숙한 수업에 금세 빠져들었다.


*

70년대 말,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한 명의 담임 교사가 모든 과목을 책임졌다. 그렇다 보니 담임 교사가 싫어하거나 잘 못하는 과목은 제대로 배우기 어려웠다.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서예를 좋아하신 여자 선생님이셨다. 미술 시간은 항상 서예 시간이었다. 반면 체육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음악도 노래는 하지 않고 4분음표, 8분음표 같은 이론이나 악보 따라 그리기를 주로 배웠다. 체육은 땡볕 운동장에 나가야 해서, 음악은 오르간 반주를 해야해서 안 하셨을 것 같다.


서예 시간엔 붓, 벼루, 먹, 신문지를 준비해야 했다. 붓과 먹, 벼루는 누나가 쓰던 게 하나 있었는데 문제는 신문지였다. 우리 집에 신문이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 뿐 아니라 책은 물론이고 종이도 거의 없었다. 신문을 거의 안 보는 시골에서, 더구나 초등학교만 나오신 부모님이 책을 읽으시는 것도 아니니까.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으면 손등을 맞았다. 손바닥이라면 참고 맞아보겠는데 손등을 한 번 맞아 본 후, 너무 아파서 난 온통 신문지 준비에 신경을 집중했다. 오가다 신문을 발견하면 가방에 주워모았다. 변소에서 휴지 대용으로 쓰던 신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형이 다 쓴 공책을 내 주었다. 우리 선생님은 신문을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다 쓴 공책을 대신 가져갔다가 손등을 맞으면 어떡하냐며 울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학교 선생님께 가서 이렇게 말하란 말이여. 선생님유, 우리 집에는유,  신문지가 없거등유, 그래서 그러는데 다 쓴 공책 가지구 왔어유. 이렇게."


하지만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하지? 손등을 맞을 생각을 하니 무서워 아예 그날 수업을 빠지고 말았다. 아침에 학교에 가자마자 우는 척을 하면서 배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조퇴를 맡은 뒤 나와 버린 것이다. 


막상 학교에서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이산 저산 다니면서 도시락도 먹고 원추리를 가방 가득 뜯어 집에 가져갔다. 엄마가 뭔 원추리를 이렇게 많이 뜯었냐며 저녁에 국 끓여 주시던 생각이 난다. 결국 그다음 미술시간에도 난 신문지 대신 공책을 가져가도 되는지 여쭤보지 못했다. 그냥 친구들에게 물으니 될 것 같다는 유권해석을 해 주었고, 불안해하던 나에게 선생님도 별 말씀 없이 넘어가셨다.


서예 시간에 붓 잡는 걸 배우던 일이 생각난다. 다른 일 보다 그 일이 더 생각나는 건 선생님의 지도 방법 덕분이다. 준비물 안 가져온 아이들은 손등을 맞고 뒤에 나가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손을 들고 벌을 서고 있고, 무서운 분위기에서 붓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는데 잠시라도 한 눈을 팔다간 손등을 맞으니 집중을 안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한 번 가르쳐 주신 뒤 책상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면서 검사를 하시곤 했다. 가르쳐 주신 대로 못하면 손등에든 팔에든 회초리가 날아왔다. 얼마나 아프던지, 한 번 맞고 나면 그 시간 내내 쓰리고 매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 반이 60명이 넘었으니, 그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시자니 어찌 엄하게 안 하셨을까. 하지만 겁 많던 나는 매를 안 맞으려고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모든 학교생활을 그렇게 해서 그런지 그 시기의 일기는 주로 피곤하다는 내용이 많다.


그 무렵, 난 다른 선생님도 알게 되었다. 우리 선생님과 다른 학년 선생님이 서로 과목을 하나씩 바꿔서 가르치신 것이다. 그 선생님은 음악을 가르치셨다.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때리지 않는 선생님이라고 했다. 때리지 않는다 생각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그분이 가르치는 음악은 그전에 배운 것과도 좀 달랐다. 전엔 노래만 크게 부르거나 악기라야 리코더로 계이름을 부는 게 전부였는데,

그분은 2부 합창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한 음으로 노래하다 중간에 두 음으로 갈라지는 2부 합창. 갈라진 두 음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또 묘하게 아름다웠다. 두 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투는 듯도 하고 또 화음을 낼 땐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 경험 때문이었을까, 난 그 뒤로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인기 팝송 순위도 외워 친구들과 대화하곤 했다. 유명한 팝송은 기타 코드와 가사를 외워 기타를 치면서 혼자 불러보곤 했다. 시카고, 브라이언 아담스, 라크웰, 사이몬앤가펑클, 레너드 코헨, 레드제플린, 딥퍼플. 그때 외우던 노래가 아직도 무심코 나오는 걸 보면 깊이 빠져 살았었나 보다. 대학에 가면서 팝에 대한 관심이 프로그레시브와 재즈로 옮겨갔고 나중엔 클래식으로 이어져 지금 나의 여가에서 큰 부분이 되었다.


지금 난 서예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걸 너머 어느정도 한다는 소리도 듣는다. 다만 음악을 들을 땐 편하게 즐기며 듣는데 서예는 그렇지 못하다. 붓글씨를 쓸 때마다 손등 맞던 생각이 아직도 나서다. 난 왜 서예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릴 적, 사소했던 경험이 이렇게 내 삶 전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걸 보면, 지금 저 아이들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악 공부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땠느냐고. 아이들 대부분의 반응은 이러했다.


"근데요. 장구가 디따 크다요. 소리도 짱 커요. 따당따당! 귀 터지는 줄 알았네."


"그랬어? 장구 소리가 크긴 크지."


"진짜예요. (치는 흉내를 내며) 따당따당 소리가 난다니깐요. 근데 들어보면 엄청 가벼워서 깜짝 놀랐잖아요."


"네, 엄청 가볍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대신 장구를 번쩍 들어다 드렸죠. 그랬더니 선생님이 담번엔 1학년도 장구 치게 해준다 그러잖아요."


"아유, 참 잘 했네."


"그니깐요. 근데 소리가 따당따당 하고 소리가 너무 클까 봐 쫌 걱정이죠."


"무서웠어?"


"아니, 무서운 게 아니라요. 따당따당 할 때마다 심장이 막 뛰니깐요."


얼마나 그 소리가 강렬하게 느껴졌으면. 아이는 '따당따당' 이라고 말할 때 자기 손을 최대한 양 옆으로 벌려 장구 치는 흉내를 냈다. 쉬는 시간이 끝나도록 아이들은 장구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나는 장구 동영상을 몇 개 검색해서 보여줬다. 아이가 외쳤다.


"선생님, 그게 아니라니깐요. 테레비 소리가 너무 짝잖아요. 아까 장구 선생님이 친 장구는 따당따당 소리가 엄청 컸다구요!"








나는 TV 볼륨을 꽤 높이 올려주었다. 그러자 아이들도 영상을 따라 책상이며 필통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보기에 따라 꽤나 시끄러울 수 있는 소리였지만 아이들이 너무 신나보여 말리지 않았다. 하긴, 나도 음악을 처음 들었을때 시끄럽다고 생각했으니. 영상을 보는 내내 저마다 중구난방 아는 척이 난무했다. 어쩌면 이 아이들 중 누구는 이 다음에 장구를 연주하는 음악가가 될 수도 있겠고, 장구를 만드는 장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장구 음악을 배척하는 아이는 되지 않겠지. 그 아이들에게 오늘의 첫 수업이 좋은 수업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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