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지랄'이라는 말을 대하는 애벌레의 태도
사람들은 모이면 험담을 하지? 인간의 언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영역에 대해 서술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도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험담을 위해서였다고 할 만큼. 때밀이 형과 누나도 그랬어. 술의 힘을 빌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험담을 했지. 자는 척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어. 그들이 가장 많은 험담을 한 건 사장이었어. 사장은 지하 다방 마담과 그렇고 그런 사이래. 마담은 가끔 월세를 돈 대신 몸으로 낸다지. 그래서 사장 마누라가 마담을 싫어한대. 그녀 역시 마담을 하다가 사장 아이를 임신해서 결혼했기 때문이래. 땅딸보에 두꺼비 상인 사장이 늘씬한 미녀 마누라를 얻은 것도 순전히 돈 때문이래. 사장 마누라는 마담이 혹시 자기처럼 임신이라도 해서 한 자리 내놓으라고 할까 봐 늘 신경을 쓴대. 전에 땡삐가 지하 다방을 때려 부술 때 마담이 경찰보다 사장에게 먼저 알린 것도, 사장이 출근하자마자 목욕탕 대신 다방으로 내려가는 것도 다 그런 이유래. 또 대학생인 사장 아들은 망나니 중에 상망나니래. 돌대가리였는데 사장이 돈을 써서 대학에 겨우 들어간 거래. 만나는 여자 마다 임신시켜서 사장이 돈으로 막느라 죽을 지경이래. 카운터를 지키는 아줌마는 사장 마누라의 먼 친척인데 사실은 사장을 감시하려고 앉힌 거래. 그들의 대화에 오르는 사람 대부분은 내가 직접 상대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화자들의 태도였어. 모든 사람들을 나쁘거나 모자란 사람으로 폄하하는 거. 사장은 오입쟁이로, 사장의 아내는 다방 마담 주제에 미인계로 얻은 사모님 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으로, 그의 아들은 머리 나쁜 난봉꾼으로. 그들의 험담은 얼마나 사실일까. 내가 아는 것과 다른 것도 있었어. 사장 아들에 관한 이야기.
내가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사상전집 때문이야. 사장은 아들의 대학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책을 샀지만 아들은 그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대. 심지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잦았어.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데 친구들과 놀러만 다니고 공부를 멀리하는 걸 보고 사장은 절망했겠지. 이북에서 내려와 의지할 사람 없이 몸뚱이 하나로 일군 목욕탕으로 아들 하나 잘 키워보려고 했는데 하는 짓을 보니 영 가망 없어 보이잖아.
가끔 사장은 아들을 데리고 목욕을 오곤 했어. 목욕을 오면 나와 때밀이 형에게 아들 자랑을 했어. 얘가 어릴 때부터 책을 그렇게 좋아해서 뭐가 되려나 했는데 대학교에 척 붙었다. 마음 같아선 졸업하자마자 목욕탕을 물려주고 싶지만 이런 아들에게 팔아야 몇 푼 나가지도 않는 목욕탕이 가당키나 하겠느냐. 사법고시나 외무고시를 보든지 정 안되면 행정고시라도 해서 나랏일을 시켜야지. 지금이야 번듯한 대학생이 되었지만 저 아이 어릴 때만 해도 일 년에 대여섯 번 산동네 이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도 우리 아들은 책만 읽더라. 그때부터 뒷바라지를 했으면 지금쯤 미국에 너끈히 가서 박사 공부를 했을 텐데 부모가 못나 이 고생을 시키고 있다며. 사장 아들은 민망한 표정이었어. 그러면 때밀이 형은 동갑내기 특유의 부러운 표정을 하고 분위기를 띄우듯 말했어.
"아유, 그러셔얍죠. 나중에 큰 자리 하나 떡 하니 맡으시면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그러고 나서 멍청히 서 있는 내 어깨를 탁 쳐. 그럼 나도 같이 꾸뻑하면서 형을 따라 했어.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사장의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어. 아들을 위해 새벽 기도를 할 정도로. 그녀는 성경책이 들어 있는 작은 가방에 전도지를 넣어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주곤 했어. 나와 때밀이 형에게도. 그러면서 교회 꼭 나가래. 내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일요일에 목욕탕 문을 열어서 이번 주에는 못 가겠습니다, 그러면 잠깐 당황하는 것 같아. 그 사이에 형이 내 볼을 꼬집으며 대신 말씀드렸어.
"얌마, 그러니까 지금 말고 나중에 나가면 되잖아. 염려 마십쇼, 사모님. 제가 꼭 보내겠습니다. 헤헤."
그러면 그녀는 이내 예쁜 얼굴을 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그럼 나중에라도 가래. 그럼 난 네, 사모님, 나중에 꼭 가겠습니다, 헤헤. 그러지. 근데 그녀가 만나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지, 아니면 나눠 줄 전도지가 너무 많은지 날 만날 때마다 주는 거야. 사모님이 주신 걸 그냥 버리면 혼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딱히 모아놓을 것도 아니고 해서 임시로 음료수 냉장고 위에 차곡차곡 올려놨어. 그걸 본 형이 한 마디 했어.
"교회 가면 그 년이 한 번 대 준대냐? 새꺄, 이런 걸 왜 여따 놔, 재수 없게. 빨리 안 치워? 너 이 시발놈 오늘 때밀이 공치면 책임져, 새꺄."
그렇다고 전도지를 버리면 안 돼. 형 말이 다음에 사장이나 사모님이 오면 찾을지 모른다는 거야. 맞는 말이었어. 어느 날 청소를 마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에 전도지도 같이 버리려고 한 움큼 들고나가다 사모님과 맞닥뜨린 거야. 사모님은 반가워하셨어. 늘 하시던 당부도 잊지 않으셨지.
"뽀이야. 너도 꼭 교회 나가라. 교회 가야 복을 받는다. 우리 남편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지만 오직 예수님만 붙잡고 목숨 걸고 기도해서 이렇게 물질 축복을 받았잖니. 우리 아들도 학교와 교회 밖에 모르던 아인데 대학을 가더니 지금은... 내가 기도를 더 해야겠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가 죄 없이 죽으신 예수님은..."
이럴 때 때밀이 형이 있었다면 사모님이 기분 나쁘시지 않게 화제를 전화하면서 나를 구해줄 텐데. 어느 시점에서 빠져나와야 할 줄 모르고 네, 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하품이 나도록 꼼짝없이 사모님 설교를 들어야 했어. 사모님이 계시니 전도지를 버릴 수가 있나. 빈 쓰레기 통과 함께 다시 들고 올라왔지. 전도지 내용은 하나같이 자비로우신 하나님, 나의 죄를 대신 해 죽은 예수님 이야기였어.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양 손을 적당히 벌려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그림까지. 사실 난 이미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어.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하실 무렵부터 우린 기독교인이었거든. 아버지는 땅을 교회 부지로 내놓으실 만큼 신앙이 좋으셨어. 어머니 또한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새벽 기도를 빼놓지 않으실 만큼 독실했지. 나 또한 교회에서 한글을 뗐을 정도로 교회는 늘 내 삶 안에 있었어. 주일학교에 갈 때 마다 성경 요절을 외우고 여름 성경학교를 기다리는 아이였지.
하지만 목욕탕에서의 난 전지전능하시며 어디에나 계시다는 하나님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러 오실 거라는 예수님도 만날 겨를이 없었어. 나에게 교회는 그냥 어릴 때 멋모르고 다니던 추억에 불과한 곳이어야 했는지 몰라. 그렇게 자비로운 하나님이 이층 집까지 있는 사장에게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물질의 축복을 계속 퍼주면서 나나 장깨에게는 백 원짜리 하나 공짜로 주지 않는지 몰랐어. 자비의 수혜자를 고른다면 나와 장깨가 더 시급하잖아. 아하, 알겠다. 내가 교회에 안 가서 그런 모양이야. 교회에 가야 축복을 받는다며. 하지만 일요일은 목욕탕이 가장 바쁜 날인데 교회를 어떻게 가지? 일요일에 교회에 가려면 난 목욕탕을 때려치워야 하는데. 그럼 돈을 아예 못 벌잖아. 아니지, 나 대신 사장 마누라가 가잖아. 맞네, 그래서 그분은 물질 축복을 계속 받아서 더 부자가 되고 난 일요일마다 일해야 되니까 그분의 돈을 더 벌어주고. 그분 말씀이 딱 맞네, 맞아. 에라, 씨팔. 니미 뽕이다. 난 씩씩거리며 전도지 다발을 테이블에 패대기쳤어. 그들의 축복을 위해 내 축복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야? 울적했어. 그래도 시골에 살 땐 일하다가도 일요일 11시면 교회에 가느라 쉴 수 있었는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어. 크리스마스이브에 눈길을 밟아가며 집집마다 새벽송을 도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말없이 십자가를 보면 나도 모르게 경건한 기도가 나오곤 했는데. 그나마도 고등학교를 못 가고 목욕탕에 일하러 온 뒤로는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는 기회가 된 거야. 난 일부러 전도지를 쳐다보지 않았어. 힘든 자, 병든 자들을 모두 자기 품으로 오라고 하는 예수님도 눈에 안 들어왔어. 갈 시간이 있어야 품으로 가든 말든 할 거 아냐. 그런 건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하라고 해. 난 예수님이 금기로 정했다는 술 담배나 하다가 지옥이나 갈란다, 젠장.
우울에 떠밀리듯 며칠이 지난 뒤 한산한 어느 날이었어. 때밀이 형은 지하 보일러실에 놀러 가고 나 혼자 탈의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지. 사장 아들이 혼자 목욕을 왔어. 때밀이 형의 험담과 달리 그는 나름 점잖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어. 목욕을 하면 항상 베지밀을 마시고 내게도 권했어. 그날도 베지밀 하나 얻어먹겠네,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데 냉장고에서 베지밀을 꺼내던 그가 전도지 뭉치를 본 거야.
"송 군도 교회 나가세요?"
그것들은 사모님이 주신 거라고, 그런데 때밀이 형이 버리지 말라고 해서 그곳에 두었다고 했지. 나더러 교회에 가 본 적이 있냐 물었어. 형이 있었다면 이럴 때 아주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대했겠지만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어. 교회요? 어릴 때는 엄마가 시켜서 나갔지만, 지금은 일 해야 해서 갈 수도 없고 앞으로도 생각 없다고 말했어. 어차피 시간도 안 나고 돈도 없다고. 그랬더니 그냥 나갈 것 같던 형이 자리에 눌러앉아 담배를 꺼내 무는 거야.
"러셀이란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그랬어요. 인간이 종교를 갖는 건 두려워서라고."
대학생이라 저렇게 멋있는 말을 줄줄 읊어대나. 목소리까지 부드러우니 말이 착 붙는 느낌이었어. 두려워서 종교를 갖는다고? 그가 한 수많은 말들 중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건 그 문장 하나야. 그날 일기에 그 구절을 썼어.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 엄마가 피로를 무릅쓰고 새벽 기도를 다니는 건 무엇이 두려워서일까. 이미 돈이 많은 사장 내외는 또 뭐가 두려울까. 도둑이 와서 돈을 훔쳐 갈까 봐? 돈이야 그렇다 쳐도 목욕탕 건물은 못 훔쳐 가잖아. 그럼 왜 교회에 가는 거지? 더 많은 돈을 축복받기 위해서겠지, 아니면 더 많은 축복을 못 받을까 봐 두렵거나. 아무리 생각해 봐야 내 생각은 거기가 끝이었어. 며칠 뒤 사장 아들이 다시 왔어. 그의 손에는 버트란트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이 들려 있었어. 그의 아버지가 목욕탕에 옮겨 놓은 사상전집에서 빠진 책이었어. 아하, 그는 아버지가 사 준 책을 읽지 않았던 게 아니야. 필요한 것만 읽었구나.
러셀의 책은 내가 궁금해하던 것들을 꽤 설명해 주었어.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없는 현실과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죽고 나면 또 있다는 영생이라는 것도 러셀은 동의하지 않았어. 그 이유도 내 맘에 들었어. 목욕탕 뽀이로 사는 것도 지겨워서 콱 죽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은데 영생? 그럼 그때에도 난 목욕탕 뽀이겠네? 시팔. 팔자 한 번 좆같네. 러셀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대신 속 시원하게 그러나 나처럼 천박한 욕설이 아닌 우아하고 품위 있는 언어로 조근조근 설명하고 있었어.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열 받는 걸 참고 끝까지 의연하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책을 읽었을까. 고등학교는 물론 나왔겠지? 그의 책을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사장 아들에게 물어보려고 적어가며 읽었어. 며칠 뒤 사장 아들은 다시 왔고 나는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해 말했어. 그는 묵묵히 내 말을 듣더니 또 어떤 걸 읽었는지 물었어. 내가 책장 속 책들을 다음에는 다른 책들을 가져다주겠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받은 책들은 사상전집과는 다른 것들이었어. 군사정권 시대에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던 책들. 표지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책 같아 보이지 않는 책들로 타자기로 쳤거나 심지어 손으로 쓰기까지 한 공산당 선언과 남미의 해방신학, 러시아 작가에 대한 것들이었어. 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처럼 이 사회의 가난한 하층민의 삶을 사실대로 묘사한 책들과 김지하로 상징되는 저항시인의 시집과 노래책까지 보따리 몇 개가 있었어.
그는 책들을 책장이 아닌 탈의실 사물함에 넣어 두라고 부탁했어.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였어. 그렇게 허름한 책이 책장에 꽂힌 걸 사장이 보면 난리 날 테니. 난 당시 읽던 김원일, 전상국, 오정희 대신 그 책들을 읽기 시작했어. 사상전집 보다 잘 읽혔어. 특히 누군가가 밑줄을 긋고 빨간 글씨로 주석을 달아놓은 걸 읽는 재미가 가장 좋았어. 대학생들은 이런 책을 읽는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도 뛰고 으쓱해지는 마음도 있었어. 시간이 갈수록 읽은 책들이 늘어났어. 난 읽은 책과 앞으로 읽을 책 목록을 일기장에 쭉 쓴 다음 각각 다른 사물함에 넣고 잠갔어. 나중에 사장 아들에게 돌려줘야 하니까. 하지만 끝내 그 책들을 돌려주지 못했단다. 그가 돌아오지 못했거든. 사장 말이 맞았어. 그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아주 잘해서 대학생이 되었다는 게. 공부도 안 하고 친구들 만나러 술만 먹으려 다녔다는 것도.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만 거야. 사장은 여기저기 돈을 싸 들고 다니며 수소문을 했지만 찾을 수 없었어. 그가 운동권이었고 사복경찰에게 잡혀갔었다는 걸 안 건 한 달쯤 지난가을이 되어서였어. 고문을 당해 몸이 으스러진 그를 끌어안고 사장 부부는 어떤 축복을 빌었을까.
그의 소식을 들은 때밀이 형의 험담은 일부가 바뀌었어. 망나니 중에 상 망나니. 돌대가리였는데 돈을 써서 대학에 겨우 들어갔다는 내용까지는 그대로였지만 부모 등골 빼쳐먹을라고 대학 끼가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좃도 모르는 주제에 데모나 하러 돌아댕기다 짭새 새끼들을 만났는데 병신 같은 게 제대로 토끼지도 못하고 잡혀 존나 얻어터지고 개박살난 등신 새끼로. 고문을 받아 다리 하나가 안쪽으로 반 바퀴나 돌아갔다는 그.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기는 선배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하면 그렇게까지 고문은 안 당했을 텐데 독하게 버텼다며 사장은 혀를 찼어. 그나마 불온서적들이 안 나와서 감옥에 안 간 것만 해도 천행이라고. 그 말을 듣고 내 심장이 내려앉았어. 그날 밤, 난 장깨의 도움을 받아 그 책들을 모두 중랑천 뚝방에 내다 버렸어. 내 일기장에 있던 목록들도 뜯어내버렸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씩 궁금했어. 다리가 꺾이도록 고문을 받으면서도 사람이 변절하지 않게 하는 그 힘은 어디에서 왔을지. 보따리 안의 그 허름하던 책 몇 권이 사람을 바꿀 수도 있을까. 사지가 찢기면서도 소신을 바꾸지 않은 사육신이나 유관순처럼 사장 아들을 독하게 만든 그 신념들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사장 아들이 잡혀 갔었다는 소식은 목욕탕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어. 사장 아들의 죄는 우리가 저지르는 것들과 다른 것 같았어. 음료수 값을 속이거나 남이 쓰고 버린 칫솔을 새 것인 양 팔아먹는 일과는 다른... 그런 일로 걷지도 못하게 때리지는 않잖아. 이런 일에 비하면 내가 형에게 따귀 맞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었어. 세게 맞아도 걸을 수는 있잖아. 새삼 형이 고맙게 느껴졌어.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폭력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일까, 우린 잠시나마 몸가짐을 바르게 하려 애썼어. 영문도 모른 채. 때밀이 형은 손님에게 더 깍듯했고 나도 목소리를 더 크게 냈지. 안 그러면 잡혀갈까 봐. 한편 이해가 안 갔어. 노동자가 단결하여 세상의 주인이 되자는 책이 왜 불온문서가 될까. 나 같은 목욕탕 뽀이들이 단결해서 때밀이 형들에게 때리지 말고 말로 해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으면 좋은 거잖아? 또 나 같은 사람은 자본가가 되면 안 되나?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무슨 잘못이라고 잡아다 죽도록 패는지 몰랐어. 깡패들이 몰려와 지하 다방을 때려 부숴도 잡혀가지 않는데 대학생이 잘못을 하면 얼마나 하겠어? 모를 일이었어. 사장처럼 돈 많은 사람도 어찌할 수 없는 죄가 있다니. 불온한 책을 읽고 불온한 생각을 하는 것이 내가 음료수 값을 삥땅 치거나 땡삐가 주먹을 휘두르는 것보다 더 큰 죄라는 게 무서웠어. 세상에는 내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계율이 있나 보다, 언제든 걸리기만 하면 나도 무릎이 돌아가는 병신이 될 일이 있나 본데, 이유를 모르겠는 거야. 살인을 하면 사형을 시키는 건 알겠는데 읽지 말라는 책을 봤다고 잡아가서 무릎을 뭉개는 법이 어디 있어? 그렇다고 어디 물어볼 곳이 있나? 때밀이 형 말대로 이게 다 빽이 없어서라고 생각할 수밖에. 형이 그랬어. 돈 없고 빽 없는 놈들은 납작 엎드려서 빠꼼이로 사는 게 수라고. 지금 내 위치가 이미 바닥에 납작 엎드린 삶인데 어떻게 더 엎드리나. 그런데 그럴 일이 생겼어. 그래서 목욕탕을 뛰쳐나갔던 일.
아들의 다리를 치료하러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느라 사장은 목욕탕에 한동안 오지 않았어. 우린 좋았지. 사장이 오면 비위를 맞추는 게 늘 고역이었거든. 손님이 없으면 때밀이 형은 지하 보일러실에 놀러 가고 난 책을 읽었어. 사장 아들을 생각하면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형 말대로 다리가 계속 아파서 사장이 아주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 탈의실에 도난 사고가 생겼어. 휴일이어서 목욕 손님이 제법 있던 날 오후였는데 한 손님이 옷장 속에 넣어 놓은 지갑이 없어졌대. 그 지갑 혹시 두고 오신 거 아니냐고 물어도 아니래. 내가 일한 뒤로 목욕탕에서 돈이 없어진 적은 없었어. 탈의실 구조상 누가 뭔가를 훔치기가 쉽지 않거든. 때밀이 형이 적극으로 나서지 않자 손님은 자기가 누군지 아냐고 욕을 하더니 경찰에 신고를 했어. 잠시 뒤 두 명의 사복경찰이 와서 손님과 아는 척을 하더라. 그러고는 형에게 빨리 돈 내 드리고 해결하라며 반말을 하는 거야. 근데 돈이라면 십 원도 아까워하는 형이잖아. 그 말을 들을 리가 있나? 귀중품은 카운터에 보관하라고 쓰여 있는 거 못 봤냐고, 그리고 잃어버렸다는 증거 있냐고, 혹시 아저씨들 지금 짜웅해서 삥 뜯는 거 아니냐고 대들었지. 그러자 경찰이 갑자기 형의 뺨을 후려쳤어. 얼떨결에 형은 피하지도 못하고 쓰러졌지. 그러자 다른 형사가 달려들어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우는 거야. 그리고 수갑 하나를 더 꺼내 형의 손목과 테이블 다리에 채웠어. 형은 손이 뒤로 꺾여 묶인 채 버둥거리면서 자기는 탕 안에서 때밖에 안 밀었다고, 지금 손님들이 저렇게 보고 계시는데 이거 너무 하시는 거 아니냐고 울부짖었어. 그러자 경찰은 이 새끼 악질이구만. 가만 안 있으면 끌고 간다! 소리 지르더니 파랗게 질린 채 떨고 있는 내 앞으로 왔어.
"야, 저 손님 지갑 니가 짱박아놨어, 안 박아놨어?"
"저, 저는 모, 모릅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썩! 나도 뒤로 넘어지면서 옷장에 부딪혔어. 아까 형이 쓰러질 때보다 더 큰 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웅성거렸어. 하지만 금세 다들 못 본 척 돌아섰어. 잠시 코가 맵게 느껴지더니 코피가 흘러 옷 앞섶이 붉게 번졌어. 눈물도 콱 쏟아지더라. 진짜 아니라니까요. 씨발, 당신들은 왜 따져보지도 않고 때리기부터 하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못했어. 무서워서. 끅끅 흐느낌만 날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형사가 한 발 더 가까이 오면서 손을 치켜들었어. 난 또 맞을까 봐 몸을 바싹 움츠렸어. 애벌레처럼.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외쳤어. 살려 달라고. 잘못했다고. 내 눈물을 보면서도 그는 한 대 더 칠 것처럼 손을 들더니 뭔가 생각난 듯 그만두고 갑자기 내 턱을 위로 올리며 물었어.
"어쭈? 이 새끼 봐라? 너 몇 살이야?"
"여, 열일곱입니다."
그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어.
"열일곱? 야, 바지 내려 봐."
무슨 뜻인지 몰라 멀뚱하고 있으니 갑자기 내 바지 앞섶을 확 잡아내렸어. 그 바람에 허리가 뒤로 휘면서 바지와 팬티가 내려가고 아랫도리가 고스란히 드러났어. 바지를 올릴 생각도 못하고 서 있었어.
"아직 털도 안 난 새끼가. 야, 니네 사장 오라 그래."
사장은 오자마자 도대체 탈의실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도난 사고가 발생하냐고 형에게 호통을 치는 한편 손님에게는 지갑에 들어있었다는 돈과 지갑 값까지 더해 내어 주며 굽실거렸어. 손님은 기다렸다는 듯 돈을 받더니 나와 형을 흘깃 보고는 오늘 재수가 없으려니 그지 같은 꼴을 당한다고 말하고 나갔어. 사장도 경찰 팔짱을 끼면서 요 근처 보신탕 잘하는 집이 있다며 데리고 나갔어. 형은 벌겋게 달아오른 볼을 만지며 담배 몇 대를 연거푸 피더니 탕 안으로 들어가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했어.
“씨발, 좆됐네. 야, 징징대지 마, 병신 새꺄. 재수 없게.”
그제야 나도 화장실에 가서 코피를 닦았어.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나와 음료를 팔고 손님들이 흘린 스킨을 닦고 들어오는 손님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신발을 모셨어.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난 감정이 없는 사람인 양. 비참했지만, 그게 편했어. 손님들도 마찬가지였어. 자기들은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누구는 아까 흥얼거리던 노래를 다시 흥얼거리고 농담을 하며 킬킬댔어. 뜨악했어. 대낮에 손님 앞에서 형과 내가 맞는데도 말리기는커녕 마치 그런 장면이 없었다는 듯 그냥 넘어가다니. 때린 사람이 경찰이어서 그랬을까. 그래서 내가 따귀를 맞고 아랫도리가 드러나도 편들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경찰들만큼이나 구경하는 손님들이 미웠어. 그런데도 형은 나만큼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라는 듯 오히려 울고 있는 나를 타박했지. 이런 일에 익숙한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누군가가 말려줄 거라는 기대 같은 걸 안 했을까.
두어 시간쯤 지나서 불콰한 얼굴로 돌아온 사장은 형에게 대뜸 20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어. 이번 일 무마하려고 경찰에 술 사주고 돈을 줬다는 거야. 내 월급이 6만 원인데 20만 원은 큰돈이야. 사장 말이 도난사고 보다 미성년자인 나를 취업시킨 게 더 문제래. 나를 고용한 건 형이니까 형이 책임지랬어. 형의 표정이 안 좋게 변하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어. 하지만 별 수 있나. 형이 돈을 줬는지 사장은 더 이상 말이 없었어. 문제는 그 뒤 나를 대하는 형의 태도였어. 안 그래도 거친 형이었는데 욕이 늘었어. 둘이 밥을 먹을 때에도 말이 없으니 불편했어. 숨 막히는 기분이었지만 어떻게 할지 몰랐어. 그러다 일이 터졌어. 매일 일이 끝날 때면 형이 때 민 사람 수와 내가 받은 돈을 비교하며 정산하는데 한 사람 돈이 비는 거야. 형이 내게 돈 받으라는 말을 안 했거나 손님이 돈을 안 주고 가버린 거지. 테이블에 앉아 있던 형이 갑자기 욕을 하면서 걷어찼어. 나는 휘청거리며 냉장고 쪽으로 넘어졌어. 냉장고 위에 진열되어 있던 일회용 칫솔이며 이태리타올, 면도기들이 와르르 쏟아져내렸어. 나는 재빨리 일어나 손바닥으로 그걸 쓸어 모았어. 형은 그런 나를 향해 욕을 했어.
“이 깝깝한 병신 새꺄. 월급 받아 처먹으려고 왔으면 도둑을 잘 지키든지! 아님 때 민 돈이라도 제대로 받든 지, 이 재수 없는 그지 새꺄. 나가 뒤져, 시발놈아.”
형이 나간 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어기적거리며 빈 탈의실을 쓸고 닦은 다음 지하 보일러실 세탁기에 가서 수건을 꺼내다 바닥에 펴 널었어. 그리고 탕 안에 들어가 바닥과 거울에 비눗물을 뿌려 막대 솔로 박박 문지른 다음 헹궈냈어. 근데 그 날따라 아무리 물을 뿌려도 잘 헹궈지지 않고 거품이 나는 거야. 순간 울컥 화가 났어. 아니, 그 보다 눈물이 먼저 솟구쳤어.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막대 솔을 확 집어던졌어. 목욕탕의 플라스틱 바가지와 의자들도. 텅 빈 목욕탕 안에서 바가지 구르는 소리가 우당탕 울려 퍼졌어. 잠시 뒤 그것들을 다시 모아 제대로 정리해놓고 탈의실로 나와 테이블에 앉았어. 고개를 푹 숙였다가 번쩍 들었어. 그리고 눈물을 닦았어. 됐다. 이제는 그만두자. 목욕탕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집에 가자. 잠도 푹 자고 좀 쉬자.
일기장 한 장을 뜯어 형에게 편지를 썼어. <당신에게 맞으면서 일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오늘의 모욕은 저 바이칼 정령에게 고하겠다. 훗날 당신을 저승에서 만났을 때 삼천 년 동안 내 노예로 삼겠다. 내 비록 돈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삶이지만 내 존엄을 짐승의 처우와 바꾸지는 않겠다...>라고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문장을 흉내 내고 싶었지만 형의 표정을 떠올리자니 무서워졌어. 남은 월급 받으러 한 번은 더 와야 하거든. 형이 화나서 안 주면 어떡해. 그냥 죄송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그만두겠다고. 안녕히 계시라고 썼어. 그리고 옷장에서 짐을 챙겼어. 일기장과 잠바, 바지와 셔츠 몇 개.
목욕탕을 나와 중랑천 뚝방길을 따라 한 시간쯤 걸어서 집에 도착하니 엄마와 동생들은 자고 있었어.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엄마는 일 나가시고 3학년, 6학년인 동생들이 아침을 먹고 있었어. 녀석들이 학교에 간 뒤 다시 내쳐 자다가 6학년짜리 동생이 올 때쯤 일어났어. 근데 막내 동생이 안 보이는 거야. 어디 갔냐고 물으니 말도 말래, 녀석이 요즘 말도 안 듣고 맨날 오락실에 가 있다는 거야. 동생에게 오락실 위치를 물어 찾아갔어. 동생은 오락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다른 아이들이 하는 걸 구경하다가 나를 보자 얼음처럼 서있었어. 녀석의 손을 잡아끌고 집에 와서 등짝을 마구 때렸어. 내가 때밀이 형에게 맞은 것처럼. 동생은 울면서 내 다리를 잡고 안 그러겠다고 늘어졌어. 엄마가 어떻게 너를 키우는데 네가 그럴 수 있냐, 엄마 없다고 그런데 가면 엄마가 어떻게 일을 하겠냐. 나도 눈물이 났어. 눈물 나는 걸 안 들키려고 더 화난 척했는지도 몰라. 정작 내가 슬픈 건 오락실 때문이 아니었어. 몇 년 뒤면 녀석도 나처럼 목욕탕이나 구두 공장 뽀이로 살까 봐, 사람들이 욕을 하고 함부로 대해도 말 못 하고 돈 몇 푼 벌려고 존엄을 포기하며 살아야 할까 봐. 애잔했어. 울고 있는 동생을 보니 마음이 아팠어. 엄마가 일 가고 없는 집을 종일 봐야 하는 열 살짜리 아이가 오락실에 안 가면 뭐 하겠어. 공부? 누가 봐줘야 하든 말든 하지. 녀석은 자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뿐인데 내가 혼내고 있잖아.
대충 눈물을 닦고 동생과 다시는 오락실 안 가기로 약속하고 같이 슈퍼에 갔어. 늘 그렇듯 돼지고기를 사고 동생이 좋아하는 산도와 비비빅을 먹으며 돌아왔어. 밥을 하고 곤로에 돼지고기를 볶아 엄마가 궈 놓고 간 김에 싸 먹었어. 그리고 오랜만에 기타도 뚱땅거렸던가. 집에 오니 모든 게 좋았어. 누가 한 달에 6만 원만 주면 난 계속 집에서 이렇게 살 수 있겠구나. 고등학교 그까짓 거 안 보내줘도 좋으니 제발 일만 안 하고 살았으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 동생들 데리고 엄마 마중을 나갔어. 큰 동생 말에 따르면 내가 목욕탕에 간 사이에 엄마는 옷 공장에서 을지로에 있는 식당으로 옮겼대.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아침 6시 반에 집에서 나가 밤 9시 반쯤 오는데 동생 둘이 집에 있기가 무서워 저녁 먹고 어둑해지면 버스정류장에 나가 쪼그려 앉아 엄마를 기다리다가 같이 들어온대.
결국 난 그날 하루를 집에서 더 자지 못하고 목욕탕으로 돌아왔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 엄마의 식당일 이야기를 들으니 안 갈 수가 없었어. 9만 원 받던 옷 공장 월급으로는 살 수 없어서 15만 원 준다는 식당으로 갔는데 일하는 아줌마가 엄마까지 세 명인데 먼저 있던 아줌마가 엄마를 그렇게 부려먹는대. 식당이 남산 근처에 있는데 힘든 배달은 다 엄마한테 가라고 하고 자긴 설거지만 하는 척한대. 그래도 그 식당을 다녀야 하는 이유는 주인이 월급 말고 하루에 500원씩 차비를 주는 데다가 가끔씩 반찬이 남으면 집에 가서 애들 주라고 싸주기 때문이래. 6만 원을 버는 나의 노동에 비해 이제 갓 마흔이 넘은 엄마의 15만 원짜리 노동이 너무 아득해서 감이 오지 않았어.
"배달을 갈 땐 오봉에 반찬 놓고 밥 놓고 김치찌개 얹지. 그걸 남산 꼭대기까지 머리에 여다 줘야 돼. 근데 꼭 노가다 하는 놈들은 얼음 물을 갖다 달라고 지랄이여. 그럼 한 손으로 오봉을 잡고 한 손엔 얼음 물을 들아야 돼. 똬리가 쏠려도 붙잡을 손이 있나. 머리로 그냥 받치고 가는 거여. 남의 돈 먹는 게 쉬운 줄 아냐."
엄마가 '지랄'이라는 말을 하셨어. 서울로 이사 오기 전에는 한 번도 쓰지 않던 말이야. 지랄이라는 말을 새롭게 쓰기 시작한 엄마의 노동은 얼마나 치욕일까. 엄마가 ‘지랄’이라는 말을 하는 거나 내가 ‘씨발’이라고 욕을 하는 건 치욕을 견디기 위해서였는지도 몰라. 날카로운 욕을 방패 삼아 마음을 보호하려고. 엄마가 갑자기 가엽게 느껴졌어. 그때 나는 다시 목욕탕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때밀이 형에게 맞아 죽더라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엄마의 치욕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할 것 같았어. 다음 날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욕탕에 물을 받는데 형이 왔어. 내가 없으니 문 열러 일찍 나온 거야.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두 손을 모으고 꾸벅 인사를 했어. 형은 아무 말도 없이 내가 다시 올 줄 알았다는 듯 똑바로 해 이 새꺄, 하고는 다시 나갔어.
16. 톨스토이도 그저 인연의 하나일 뿐이었어
도난 사고가 있던 그날, 경찰에게는 말 안 했지만 사실 형도 돈을 잃어버렸어. 때 밀고 받은 돈 중 일부를 비상금으로 옷장에 넣고 잠갔는데 없어진 거야. 그 뒤로 형은 내게 돈을 맡겼어. 옷장에는 더 이상 못 넣겠고, 별 수 있나? 내 바지 주머니에 넣었지. 그런데 오후가 되면 주머니가 불룩해져서 일하기가 불편한 거야. 그렇다고 옷장에 넣자니 지난번 그 도둑이 언제 와서 또 털어갈지 알 수가 없잖아. 고민하다가 은행에 예금하면 어떻겠냐고 형에게 물어봤어. 형도 좋대. 난 형 도장을 받아 목욕탕에서 제일 가까운 은행에 가 통장을 개설했어. 그리고 매일 마감 직전에 은행으로 달려갔어. 그 시간은 하루 중 손님이 가장 많을 때야. 일수 찍듯 매일 오는 상인들이 많았거든. 어떤 날은 삼십 분 이상 기다려야 해. 그래서 책을 갖고 다녔어. 일부러 맨 뒷줄에 서서 읽었지. 다른 손님 순서가 다 지나갈 때까지. 에어컨이 있어서 시원한 데다 형 심부름이라 늦어도 뭐라고 안 했거든. 그때 내가 한참 읽던 책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였는데 마침 통장을 책갈피로 쓰고 있었어. 그런데 이 책 때문에 은행원 아가씨를 사귀게 되었단다. 지하다방의 그녀를 짝사랑하다 제대로 말도 못 나눠보고 땡삐에게 뺏긴 뒤 알게 된 두 번째 여자. 비참과 탄식이 만연하던 내 삶을 오렌지 빛 싱그러움으로 채워 준 그녀.
예금할 때마다 책에서 통장을 꺼내 돈이랑 접수용 접시에 올려놓으면 은행원이 돈을 센 뒤 통장에 얼마가 들어왔다고 쓰고 콩알만 한 도장을 찍어 주었어. 그러면 난 통장에 적힌 금액을 확인한 다음 인사를 꾸벅하고 바로 목욕탕으로 뛰어 가지. 때를 미는 일은 손님의 수에 따라 수입이 들쭉날쭉 이어서 수입이 얼마 안 되는 날은 은행에 갈 필요가 없었지만 대략 이틀 건너 하루 꼴은 은행에 갔어. 형은 꽤 실력 있는 때밀이였기 때문에 수입이 좋은 편이었거든.
은행에는 창구가 여럿 있는데 그중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앳된 아가씨가 앉아 있었어. 급한 손님들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창구로 가게 마련이잖아. 그래서 그런지 갈 때마다 그 줄엔 사람이 많았어. 앳된 걸 보면 경력도 적겠지. 그래서 힘든 자리에 앉혔나? 은행이나 목욕탕이나 신참들에게 힘든 걸 시키는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야. 신참에겐 일을 더 시킬 게 아니라 부담을 줄여주면서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나? 도대체 이 놈의 사회는 왜 약자들에게 가혹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가 가여워 보이기 시작했어. 나라도 그녀의 일을 덜어줘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지. 그래서 일부러 그 줄에는 서지 않았어.
마감시간이 되고 셔터가 내려가면 다른 창구 직원들은 은행 뒷마당으로 나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폈어. 하지만 줄이 긴 그 창구의 신참 행원은 여전히 앉아서 남은 손님을 응대하는 거야. 목욕탕 일이 바빠 마감시간 직전에야 겨우 달려간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녀 줄에 서야 했지. 그런 식으로 몇 번 마주쳤나? 하루는 그 아가씨가 불쑥 묻는 거야.
"아저씨, 그 책 재밌어요?"
은행을 왔어도 예금 관련 질문 외에 들어 본 적이 없던 나는 방금 이 분이 뭐라고 했는지 몰라 그냥 멍하게 쳐다봤지. 늘 고개 숙이고 주판을 놓거나 뭔가를 쓰던 모습만 건성으로 보다가 모처럼 가까이에서 보니 아주 깔끔한 인상이야.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빈틈없이 빗어 넘긴 매무새 하며 한 듯 안 한 듯 화사한 화장까지. 뭔가 세련되었으면서도 자신감이 느껴지는 글씨체나 톤이 살짝 높은 목소리도.
"재밌음 빌려 줘요."
아하, 책 빌려달라는 얘기구나. 뭐, 못 할 거 뭐 있나, 빌려드렸지. 그렇게 일단 빌려주고 나니 다음에 은행 갈 때는 그 아가씨 줄에 서게 되는 거야. 그래야 책을 돌려받으니까. 근데 이 아가씨가 며칠이 지나도 책 돌려줄 생각을 안 해. 그렇다고 다 읽었냐고 물어보자니 또 보채는 것 같잖아.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며 처분만 바라는 수밖에. 근데 예금 처리만 해주고 더 말을 안 해. 빨리 받아야 마저 읽을 텐데 말이지. 두껍지도 않은 그 책 읽는데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도 않을 텐데 이상했어. 책을 못 돌려받으면 큰일이야. 때밀이 형이야 책장에 관심이 없으니 있으나 없으나 상관 안 하지만 사장님이 알면 큰일이거든. 그는 가끔 책장 앞에서 빼돌린 책이 없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거든. 중고 서적으로라도 팔면 돈이 되니까. 결국 일주일쯤 지나 조급해진 내가 먼저 물었지. 그녀는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이 서랍에서 책을 꺼내더니 내게 툭 던졌어.
"궁물 까요?"
"네?"
"궁물...까냐고요."
"무슨 궁물..말씀하십니까?"
"궁물 까요 궁물 까. 나도 1학년인데. 야간대 다녀요."
"아, 국문과 말씀이십니까?
"네, 몇 학번이세요? 1학년 같은데?"
"아, 저는... 아닙니다."
"그럼 무슨 과에요?"
내가 대학생인 줄 아나 보네. 고등학교도 못 간 사람한테 대학생이라니. 은행의 소음 때문이었을까, 내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데 책 표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손가락으로 탁탁 짚으며 나무라듯 말했어.
"아저씨, 이런 책 읽지 마요. 칙칙해."
"...네?"
"뭐 이런 걸 읽어요. 국문과도 아니라면서. 수용소 이야기인 줄 모르고 읽다가 토하는 줄 알았네."
"네... 뭐 다른 거 읽을 게 없어서..."
“읽을 게 없어도 그렇지, 이런 걸...? 취향 독특하시네.”
하지만 내게 그 책은 나름 정신승리의 도구였어. 소설 속 수용소에 갇힌 인물들의 비참한 생활을 읽으면서 적잖은 위로를 받았거든. 그들에 비하면 지금 난 돈이라도 벌잖아. 사람들이 수용소에 갇히게 된 이유나 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이는 행태들은 그야말로 부조리의 극치야. 인간이 할 수 있는 권모술수의 다양한 예들이 모여 있지. 수용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선입견을 주잖아. 그런데 책을 보다 보면 그 안 누구도 죄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그게 묘하게 나를 위로했어. 고등학교 못 가고 목욕탕 뽀이로 사는 나도 남들에겐 죄인과 다름없는 인간 취급이거든. 사회 하층민에게 함부로 덧씌워지는 부정적인 선입견에 대해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지. 반말을 하거나 심지어 욕을 해도 덜 불쌍해 보이는 존재가 나였어. 경찰도 아무 근거 없이 도둑이라고 생각했잖아. 설사 내가 도둑이 아니라 해도 뺨 몇 대 후려친 걸 굳이 미안해하지도 않아. 난 그래도 되는 만만한 대상인 거야. 수용소에 갇힌 사람처럼 타인의 기준에 따라 존재 가치가 규정되고 함부로 해석되는 건 기분 나쁜 일이지만, 절망하지 말고 나도 귀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받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솔제니친은 말하고 있었어. 투쟁. 그렇다면 난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할까. 투쟁이라는 단어를 쓴 걸 보면 아주 강하게 맞서야 한다는 건데. 때밀이 형에게 발길질당하는 삶이 나아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사장의 비아냥거림에는 또 어떻게 맞서? 그들에게 똑같이 욕을 하고 발길질이라도 해? 차라리 이놈의 더러운 목욕탕을 때려치우고 다른 일터로 가는 게 투쟁은 아닐까? 아니면 언젠가 형과 사장이 스스로 반성하고 나에게 대한 폭력을 멈출 때까지 지금처럼 납작 엎드려 참는 게 투쟁일까. 솔제니친이라면 그에 대한 답도 책에 써놓았겠지 싶어서 더 악착같이 읽고 싶었는지 몰라. 근데 그녀는 내가 그 책을 들고 가기만 하면 아직도 칙칙한 책 읽는다고 핀잔을 줬어. 간섭 같기도 하고 훈수 같기도 한 말투였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어. 네까짓 게 이런 걸 읽어?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이런 것도 읽느냐는 칭찬같이 들렸거든. 난 그녀의 타박을 들을 때마다 시익 웃었어.
솔제니친 다음 책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였어. 그 책에도 입에 잘 붙지 않는 러시아 이름이 엄청 나와. 난 지난번 안나 카레니나 읽을 때처럼 일기장을 찢어 인물 관계도를 그려 책 사이에 끼웠지. 내가 그렇게까지 하며 읽는 게 그녀에게 인상적이었을까, 그녀는 그 책도 빌려가 읽고 돌려주면서 책 사이에 작은 쪽지를 남겼어. 이름 외우는 게 지겨워 러시아 소설은 안 읽었는데 내가 만든 관계도를 보며 읽으니 편하더라는 내용. '만든'이라는 말엔 빨간색으로 밑줄까지 그어져 있었어.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기분이었지. 아, 어떤 여자가 이렇게 매혹적인 칭찬을 할 수 있겠니. 그녀의 편지를 받고 보니 관계도를 더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그래서 인물의 이름을 다시 쓰고 그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간단히 요약해 적었어. 그리고 그 사건과 관련된 인물을 옆에 덧붙이고 줄로 이었지. 그냥 찌익 긋는 게 아니라 자를 대고 그었어. 사건이 길어지면 별도로 종이를 덧붙였어. 책 읽는 시간보다 더 오랜 작업이었지만 그녀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니 또 그것도 좋은 거야. 빨강, 파랑, 녹색 펜으로 글씨도 반듯하게 쓰려고 애썼어. 어떤 책이든 마음에 드는 인물이 있었어.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 같은 사람. 마찬가지로 전쟁과 평화에서 내가 특별히 좋아한 인물은 피에르였어. 그가 프랑스혁명을 통해 느낀 자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도 멋있고 포로가 되었을 때 만난 늙은 농부로부터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는 장면은 레빈이 농노로부터 배우는 모습과 겹쳐 보여 여러 번 읽도록 좋았어. 그가 나타샤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야. 사랑이 어떻게 성숙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 지금의 나는 피에로만큼 멋진 신분은 아니지만, 언젠가 나도 사랑을 하게 된다면 저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의 대화를 읽다 보면 비참한 현실을 만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그 삶 자체를 이어가는 게 결국은 위대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뭐랄까, 인간이 삶의 고비들을 지나다 보면 점점 망가지기가 쉽잖아. 쉬워서라기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피에로는 달라. 피폐해질 만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식을 고양된 상태로 유지하려고 애써.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난 잘 알아. 목욕탕에서 늘 경험하고 있으니까. 형에게 욕을 먹거나 맞으면 우선 화가 나. 그런데 화를 표현할 수 없잖아? 속으로 참고 눌러야 해. 그러다 보면 나의 무력함이 슬퍼져. 바로 긴 우울이 찾아오지. 시간이 지나 다시 일을 좀 하려고 하면 또 욕먹을 일이 생겨. 또 슬퍼지지. 그게 내 감정의 패턴이었어.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안 됐어. 근데 피에로는 자기가 왜 절망하는지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거야. 어떤 부분이 화가 나고 어떤 부분이 슬픈지. 일단 무작정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와 다르지. 그렇게 끝없이 성찰해가며 하며 성숙한 인간으로 익어가는 과정이 멋져 보였어. 그래서였을까, 읽는 속도는 느렸지만 그만큼 재미있었어.
그때 그녀는 당시 한창 인기 있던 <사랑과 진실>이라는 드라마에 빠져 있었어. 그 드라마가 나오는 날의 편지 내용은 주연 배우인 원미경, 정애리 이야기였어. 그리고 자기도 김수현 같은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어. 나도 답장을 썼어. 꼭 드라마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작가가 되면 내 이야기도 써 달라고. 그녀의 편지는 읽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어. 희망과 좋은 기대가 가득했거든. 나에겐 일상이었던 우울과 좌절, 불길함 같은 것들이 그녀의 글에서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어. 단란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한 점의 그늘도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화사한 문장들이 그녀의 편지에는 있었어.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더 이상 추위 걱정 없이 마음껏 잎을 틔우는 봄 새싹처럼 들뜬 향기가 났어. 그런 편지에 답장을 못 쓰겠는 거야. 뭔가 밝고 즐거운 걸 써야겠는데 내 현실에 그럴만한 게 있어야 말이지. 있는 그대로 쓰면 그녀가 놀랄 것 같은데 그렇다고 거짓으로 꾸며 쓰자니 왠지 그녀에게만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어. 결국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어. 자연히 내 이야기보다는 책 이야기가 많아지지. 그녀는 이게 서운한 것 같았어. 근데 별 수 있나. 거짓으로 쓸 수는 없고 감추면 안 될 것 같으니 화제라도 바꿀 수밖에. 내가 편지를 통장 사이에 끼워 창구의 접시에 올려놓으면 그녀는 보조개가 패이도록 웃으며 주변을 슬쩍 본 뒤 서랍에 쏙 넣었어. 그리고 통장 정리가 끝나면 서랍에서 자기가 쓴 편지를 꺼내 살짝 통장에 끼워 주었지. 어떤 날은 몇 장, 어떤 날은 작은 메모지에. 편지를 받으면 목욕탕에 돌아오는 길에 읽었어. 그리고 일이 끝난 뒤에도. 다 읽으면 봉투에 잘 넣어 옷장에 깊숙이 넣었어.
오가는 편지가 늘수록 그녀에 대해 알게 됐어. 아버지가 은행에 다니신 걸 봐서 여유 있는 집 같았어. 서울에서도 꽤 알려진 상고를 졸업했대. 은행에 취직한 걸 보면 공부도 잘했겠지. 신입사원 연수에서 1등이었대. 하긴, 주산 놓는 손을 보면 과연 저게 사람의 손인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란해 보이긴 했어. 게다가 은행원은 월급이 또박또박 나오는 직업이잖아. 그것만 해도 내가 극복할 수 없는 수준 차이가 나는데 대학까지 다닌다는 그녀...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