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뽀이, 사상전집을 만나다

어느 목욕탕 뽀이 이야기

by 나는일학년담임




너희들도 한 때, 일기 숱하게 썼지? 아이가 솔직하게 쓴 사생활을 교사가 검열하는 게 인권을 침해한다고 해서 지금은 일기검사를 하지 않지만 예전에야 어디 그랬나? 쓰지 않은 날은 손바닥을 맞았잖아. 매일 아침, 선생님 책상 위에는 일기장이 뒤집힌 채 쌓이곤 했지. 맞는 게 무서워서 기를 쓰고 일기를 썼어. 빠지지 않고 쓰면 학기말에 상을 받던 기억도 나. 안 쓰면 매를 맞고 잘 쓰면 상을 받던 그때, 어린 나에게 일기 쓰는 일은 꽤 중요한 일이었어. 도대체 선생님은 그 많은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왜 궁금해하시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기 내용을 숨길 생각을 감히 못했어. 없는 일을 꾸며 쓸 배짱도. 그럼 손바닥을 또 때리실지 모르니까. 날짜와 날씨를 적고 나면 그 날 있었던 일을 쓰는 칸이 나오고 끄트머리에는 오늘의 반성과 내일의 할 일을 쓰는 칸이 있었잖아. 반성할 일은 늘 차고 넘쳤지만 내일 할 일은 늘 한 가지였어. 꼴 베기, 소 풀 뜯기기. 도시에서 오신 선생님이 시골 아이인 내 하루 일과를 재미있어하실까 궁금했어. 매일의 삶이 똑같아서 늘 같은 일로만 기술되는 단조로운 일기를 보여드리는 게 부끄럽던 생각이 나. 어린 나의 삶은 표리부동의 연속이었거든. 그렇다고 거짓을 쓸 수도 없으니 고역이었지. 그래도 내가 지금 이렇게나마 옛날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건 어릴 때 맞지 않으려고 지겹게 쓴 일기 덕분인지도 몰라. 그리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읽었던 몇 권의 책 때문이었는지도. 맞아, 몇 권의 책이 있었단다.


중학교를 끝으로 일을 시작했으니 내 삶에서 공부라는 건 더 할 일이 없을 것 같았어. 공부를 안 하게 되면 책 볼 일도 없어지잖아. 그런데 사람 일이 참 묘하하지? 내가 책을 읽게 되더라니까? 내가 일하던 목욕탕 주인은 꽤 잘 사는 사람이었어. 여름은 목욕탕이 비수기잖아. 그래서 수리도 할 겸 며칠간 목욕탕을 쉬게 되었어. 덕분에 나도 휴가를 얻겠구나, 좋아하고 있었지. 근데 형은 내가 쉬면 하루에 2천 원씩 월급에서 뺄 거라는 거야. 대신 목욕탕 사장이 집수리를 하는데 거기 가서 심부름이라도 하면 안 빼겠대. 마음 같아선 며칠 쉬고 싶은데 엄마를 떠올리니 마음이 약해졌어. 내가 일당을 포기하고 휴가를 왔다고 하면 엄마는 또 내 물러 터진 정신상태를 걱정하실 거야. 내키지 않았지만 목욕탕 주인집에 가서 일하겠다고 했어. 때밀이 형은 나를 노예로 부리는 주인이라도 되는 듯 사장에게 나를 빌려주며 말했어. 자기가 일당 다 줬으니까 사장님이 마음껏 일 시키시라고. 나도 꾸벅 인사를 드리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외쳤어. 주인은 나의 왜소한 체격을 마음에 안 들어했지만 공짜라는 말에 끌렸는지 데려갔어. 인부들이 쓸 시멘트를 옮기고 벽돌을 날라주고 쓰레기나 건축자재를 정리했어.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였지만 목욕탕일 보다 좋았어. 일단 나를 욕하고 때리는 형이 없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끼니마다 근처 백반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었거든. 목욕탕에서는 형과 함께 먹는 라면 아니면 짜장면이 전부였는데 백반 집에서는 고등어조림이 이 한 사람당 두 도막이나 나왔거든. 얼마나 이게 인상적이었으면 일기에 '두 도막'이라고 썼을까. 이게 전부가 아니었어. 점심과 저녁 사이엔 빵과 우유를 새참으로 주고 더우면 콩국수도 해줘. 심지어 수박화채까지! 노가다를 하면 이렇게 잘 먹을 수 있겠구나. 나도 좀 더 자라면 목욕탕을 나와 이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어.


잠은 목욕탕에 와서 자고 아침이면 다시 사장 집까지 걸어가서 일하는 동안 집수리가 예상보다 길어져 목욕탕 수리가 끝났는데도 목욕탕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형은 사장에게 나를 빨리 보내달라고는 차마 말 못 하고 대신 짜증을 냈어. 결국 며칠이 더 지나 공사가 끝나 사장이 이사하는 날이 다가왔어. 사장 집은 꽤 넓은 잔디 마당이 있는 2층 집이었는데 부잣집답게 구석구석 좋은 가구들이 많았어. 왜 있잖아. 다리 하나, 서랍 손잡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생긴 가구들. 거실엔 큰 전축과 술병이 가득 든 장식장이며 가죽 소파도 있었지. 그리고 한쪽엔 피아노와 책장이 있었는데 겉표지가 같은 종류의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어. 그런데 사장은 그 책들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더러 목욕탕 탈의실에 갖다 놓으래. 척 봐도 꽤 두껍고 비싸 보이더라. 겉장이 두꺼운 표지에 제목이 금박 글자였어. 다 해서 한 60권 정도 됐나? 나는 그 책들을 리어카에 싣고 목욕탕으로 와서 몇 번이나 계단을 오르내린 끝에 다 옮겼어. 나르면서 보니 사상전집 시리즈였어. 철학, 종교, 신화, 고전을 망라한 시리즈물.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까뮈, 사르트르, 니체, 프로이트, 라깡처럼 우리가 흔히 고전 명작이라 부르는 책들. 책 두께와 생긴 걸로 볼 때 뭔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읽는 것 같았어. 그 책을 읽는 사람은 왠지 안락의자에 앉아 있을 것 같은 기분? 원목 책상엔 커피도 한 잔 있을 것 같아. 비싼 시가를 피우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거지. 품격이랄까, 돈이랄까. 그런 게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울리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목욕탕에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아 보였어. 그런데 뭐 내가 힘이 있나? 사장이 시킨 대로 일단 하나하나 먼지를 털었어. 다들 두껍고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하더라. 문제는 그걸 어디에 꽂을까였어. 사장, 특히 형의 마음에 드는 위치 라야 하는데 도저히 모르겠는 거야. 당시 탈의실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은 대형 거울과 욕탕 출입문 사이 음료수 냉장고 위쪽 공간이었어. 그런데 그곳엔 이미 요금표가 붙어 있는 거야. 때 밀면 얼마, 구두 닦으면 얼마, 음료수, 칫솔, 샴푸는 얼마에 '요금은 선불', '외상 사절'이라는 붉은 글씨가 특별히 강조되어 있는 요금표. 그 요금표는 형이 간판집에서 돈 주고 만들어 온 거야. 그러니 그 자리에는 꽂으면 안 되지. 근데 거기 아니면 적당한 곳을 찾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탈의실이라는 곳이 원래 책 꽂을만한 곳이 아니잖아. 난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음 날 형한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한쪽에 쌓아두었어. 짐작대로 형은 마뜩잖은 눈치였어.


"아, 사장, 이 개 또라이 같은 새끼... 진짜. 책들을 여기다 버리면 어쩌라고. 여기가 때 미는 데지 책 보는 덴 줄 아나. 재수 없게."


하지만 어쩌겠어. 형은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요금표를 조금 왼쪽으로 옮기고 나더러 음료수 냉장고 위 먼지를 닦게 시킨 다음 한 줄로 꽂으라고 시켰어. 근데 책이 많아서 한 줄로 꽂아도 반이나 남는 거야. 형은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남은 책은 빈 옷장에 넣어놓았다가 사장이 잊어버릴 만큼 시간이 지나면 지하 보일러 실에 땔감으로 갖다 주랬어. 책 꽂는 건 일단 그렇게 넘어가는 줄 알았어. 하지만 며칠 뒤 사달이 났어. 사장이 온 거지. 그는 책들 옆에 요금표가 있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그 책들이 자기 집에선 거실 가운데 책장에 떡하니 꽂혀 있었잖아. 여기선 홀대당한다고 생각했겠지. 나한테 막 화를 내는 거야. 이거 누가 이따위로 꽂았냐, 이 책들이 얼마짜린 줄 아느냐, 이러면서.


"생각 좀 해라, 인마. 칫솔 백 원, 이태리타올 백 원 저딴 요금표 옆에 저런 책을 꽂는 게 니 눈엔 어울려 보이나 시애꺄. 니 저게 뭔 책인지는 아냐구, 인마!"


아닙니다. 모릅니다. 헤헤. 내가 비굴한 표정으로 멍청한 웃음을 흘리며 잘못했다고 하자 때 밀던 형이 후다닥 나오더니 내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말했어.


“그러게, 새꺄. 형이 잘 꽂으라 그랬잖어. 다시 꽂아, 인마.”


그러더니 얼른 요금표를 떼서 사장 보라는 듯 일부러 구석 쪽으로 옮겨 걸더니 책들을 손으로 조심스레 쓸어내리면서 아부하듯 말했어.


"사장님, 근데 이 책들 보통 책이 아닌갑습니다. 꽤 주셨겠네요."


마침 형이 물어주기를 기다렸는지 사장이 담배를 피워 물며 탁자에 앉았어.


"내가 우리 아들한테 약속을 한 게 있었거든. 니가 대학교만 붙으면 니 공부 뒷바라지는 다 하마. 내신 니도 열심히 공부해라, 말이지."


사장 아들이 대학에 붙던 날, 알고 지내던 서점으로 갔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대학교에 척 붙었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책을 읽는 게 맞다고 생각한 서점 주인은 사상전집을 소개해주었고 단숨에 사다 놨지. 근데 아들이 학교 공부가 많은지 통 책 읽을 시간이 없대. 앞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필요한 책들은 더 많아질 거고 졸업 후 고시까지 통과해 나랏일을 하게 되면 책들이 더 많아질 텐데 집에는 공간이 부족하니 나중에 다시 가져가더라도 일단 여기에 보관해 놓고 자기도 가끔 와서 읽으려고 한다는 거야.


"아드님이 똑똑하신갑네요, 저런 책을 줄줄 읽을 정도면 고시 같은 거야 식은 죽 먹기죠. 헤헤."


형은 사장 듣기 좋은 말을 하다 다시 때를 밀러 들어갔어. 형의 말로도 부족한지 사장은 나를 앉혀 놓고 더 얘기를 했어. 요즘 대학생들은 통 공부를 안 하고 데모를 하러 다니고 지랄들인데 지들이 뭘 안다고 데모를 하느냐. 나처럼 육이오 때 맨 손으로 내려와서 끼니 굶어가며 일해도 다 먹고살았다. 부모 등골 뽑아서 대학 다니는 생각은 안 하고 팔자 좋아서 데모하는 새끼들은 다 잡아다가 쫄쫄 굶겨 봐야 정신 차린다. 넌 데모할 생각일랑 아예 말라고.


"네, 알겠습니다. 데모 안 하겠습니다. 사장님."


형처럼 나도 사장 비위를 맞추려고 싹싹하게 대답했어. 반응이 흡족한지 사장도 고개를 끄덕였어. 근데 사장이 잠시 나를 보더니 피식 웃는 거야.


“흐흐. 아참, 니는 데모할 일은 없갔다야. 데모도 대학 다니는 똑똑한 애들이 하니까니. 니 중학교는 나왔냐?"


"전 데모할 일 없습니다. 중학교만 겨우 나왔습니다. 헤헤."


사장은 당장 그날로 책장 하나를 사 왔어. 그리고 기어이 탈의실 옷장 몇 개를 옮기면서까지 잘 보이는 곳에 떡하니 놓고는 책을 옮겨 꽂으라고 시켰어. 내가 책을 옮기는 동안 사장은 일 마치고 나온 형을 앉혀 놓고 또 자랑을 늘어놓았어. 얘기하는 걸 들으니 사장 아들과 때밀이 형이 동갑이래. 형은 연신 사장 비위를 맞추면서 아드님이 똑똑하신 모양입니다. 아이구, 저도 공부 좀 해 볼라 그랬는데 워낙 돌대가리라 그런지 안 되더라구요. 꺼먼 건 글씨고 허연 건 종이 라는 구분밖에 못 했거든요. 헤헤, 주억거렸어. 사장은 기분이 좋았는지 제일 비싼 음료를 세 개 꺼내더니 나와 형에게도 하나씩 건넸어. 우리가 황송해하며 감사합니다! 를 외치는 동안 사장은 꿀꺽꿀꺽 마신 뒤 총총 나갔어. 난 형과 내 몫의 음료수를 다시 냉장고에 넣었지. 형이 전부터 그렇게 시킨 거야. 가끔 손님이 형에게 음료를 사주면 형은 바로 마실 것처럼 따는 흉내를 내다가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딴청을 피우라고 했어. 손님이 계산하고 갈 거 아냐? 그러면 그걸 다시 냉장고에 넣는 거야. 먹은 셈 치고 다시 팔 수 있으니 두 배로 남는 장사라며 좋아했어. 드물게 나에게도 음료수를 사 주는 손님이 있으면 나도 형처럼 했어. 그러면 형이 좋아했거든. 근데 그날은 아니었어. 형은 방금 내가 넣은 음료수를 냉장고에서 다시 꺼내 벌컥벌컥 마시더니 신경질적으로 쓰레기통에 던졌어.


"시팔노무새끼, 지 애새끼가 대학생이면 대학생이지 씨발, 나랑 비교하구 개지랄이야. 지 아들이 지즈바들 따처먹느라 책 안 보는 걸 누가 모를 줄 알구."


그건 형 말이 맞는 것 같았어. 카운터 이모가 그랬거든. 사장 아들이 대학가서 여자애들만 쫓아다니고 공부는 영 안 한다고. F학점도 여럿 받았다는 걸. 공부하라고 비싼 책을 사줬는데 읽지도 않으니 화딱지가 나서 책을 다 치워버렸다는 거야. 그래서 목욕탕으로 온 거지. 형이 사장 아들을 미워할 수밖에. 또 자기와 동갑인 사장 아들에 대한 시샘도 있었을 거야. 나나 형이나 학교를 못 다닌다는 건 마음 속 증오를 품게 만드나 봐. 그 뒤로 형은 책장을 아예 쳐다보지 않았어.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사장 아들 욕을 했어. 일 안 하고 밥 처먹고 다니는 '먹구대학생'이라고. 먹구대학생이라... 난 형과 달리 낭만적인 느낌이 들어서 일기장에 적어두었어. 먹기만 하는 대학생이라. 얼마나 풍요로운 말이니. 내 형편에 견주면 상상하기 힘든 경지야. 먹고 놀면서 대학까지 다니잖아. 줄무늬 셔츠에 멋진 니트를 받쳐 입고 캠퍼스 계단을 오르는 대학생. 넓은 잔디에 모여 앉아 고상한 책을 읽거나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들. 옆에는 멋진 남녀가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하는 그곳. 목욕탕 꼬마인 내게 그 모습은 현실에서 꿈꿀 수 없는 천상의 모습이었어.


책 안 읽는 사장 아들 덕분에 탈의실이 한결 고상해졌지만 덕분에 난 청소가 늘었어. 책장의 먼지를 닦아야 했으니. 탈의실이라는 공간은 모든 사람이 알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원시의 공간이잖아. 한편 내가 형에게 따귀를 맞는 공간이거든. 그런데 칸트나 쇼펜하우어가 꽂혀 있는 사색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게 묘한 기분이 들게 했어. 그런데 묘한 게 한 가지 더 있었어. 책장을 닦을 때마다 그 이질감이 나를 끌어당기는 거야. 자꾸 관심이 가더라. 며칠 뒤 사장은 책장 빈칸을 채우기 위해 집에서 더 많은 책을 가져다 꽂았어. 당시 꽤 큰 출판사에서 내놓은 문학전집이야. 이문열, 오정희, 김원일, 김승우, 한수산 같은 작가들의 책. 구두 공장 친구들을 데려다 술을 마신 일로 형에게 얻어맞고 외출 금지령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일이 끝나도 밖에 나갈 생각을 못 했어. 물론 길 건너 장깨 역시 나를 만나러 오지 못 했지. 나를 만나러 오면 내가 때 또 맞을 걸 아니까 참고 있었을 거야. 하루 종일 탈의실에 갇혀 나가지도 못하지, 책은 자꾸 눈에 밟히지. 밤은 길지. 뭐하겠어? 자연스럽게 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했어. 이왕이면 제일 두꺼운 책을 골랐지. 그게 안나 까레니나였어. 톨스토이 책 말야. 두꺼운 책 세 권짜리인데 다 합치면 천오백 쪽이 넘어. 근데 말야. 내가 글쎄 그 책에 빠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12. 난 왜 책 제목들에 시비를 걸었을까?




나는 왜 그 두꺼운 안나 카레니나를 첫 책으로 골랐을까. 그 책이 제일 앞에 꽂혀 있었던 것도 아니었거든. 만약 내가 다른 책을 처음 골랐다면, 근데 하필이면 니체나 칸트였다면 더 이상의 독서는 없었을지도 몰라. 당시 내 삶은 그까짓 책들이 아니어도 눈길 가는 게 얼마든지 있었거든.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책을 고른 건 어디까지나 제목 때문이었어. 다른 책들은 제목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 기분 나쁠 정도로. 누가 사상전집 아니랄까 봐 얼마나 고상한 척하는지 눈꼴이 시더라니까. 그냥 아무 책이나 먼저 읽든지, 아니면 안 읽으면 될 텐데 그때의 난 그런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아이였어. 그러니 피곤하지. 열등감이었을 거야. 그런데 책들이 그걸 깨닫게 해 줬단다.


책장 맨 앞에 꽂힌 책은 키에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어. 마음에 안 들었어. 무슨 제목이 이래? '죽는 병'도 아니고 '죽음에 이르는'? 우리가 평소에 잘 안 쓰는 표현이잖아.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거지 죽음에 이른다니. 문어체를 써서 잘난 척하는 것 밖에 더 돼? 문어체를 숭상하는 게 더 수준 높아 보여서 그런가? 귀족의 말이라는 거야? 고등학교 못 간 나는 지금 문어체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있잖아. 내게 오는 말들은 대부분 쌍욕으로 상징되는 구어체들 뿐이라고. 그럼 나 같은 인간은 사상전집이랑은 해당 없겠네. 시발. 니들 잘났다, 그래. 장깨와 뒷골목을 걸으며 침 뱉던 때의 말버릇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어. 책을 탁 소리 나게 덮고 꽂았지.


아니, 근데 잠깐.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책은 아무 말 없는데 나 혼자 식식거리잖아. 민망했어. 그래서 다시 꺼내서 펼쳐 봤지. 철학의 대중화 어쩌고 하는 서문이 있었어. 철학의 대중화?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뒷골목 언어로 서술되어야 하잖아. 근데 문어체는 뭐람. 나 같은 애를 이해 못 시키는 철학도 철학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나? 그렇겠지. 철학이 그 정도로 수준이 낮진 않을 거 아냐. 그러니 사장도 이렇게 귀하게 여기겠지. 근데 제목이 저게 뭐냐고. 재수 없게. 얼치기 지식인의 거드름이라도 발견했다고 느껴서였을까, 저자에 대해 아는 게 없었지만 까닭 모를 반감이 올라왔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무슨 암이나 당뇨병, 뭐 이런 건 아닐 거잖아. 담배 피우고 침 뱉다가 형에게 걸려 맞아 죽는 건 더 아닐 거고. 나중에 그 책을 읽고 나서야 절망이 생명 의지를 죽인다는 것과 내가 책들에 대해 공연히 느꼈던 적개심이야말로 절망이라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그럴 거라면 굳이 제목을 그렇게 지을 건 또 뭐야? 총이나 칼에 맞아서가 아니고 절망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는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자빠져 있는 게 철학이라면 나라도 하겠네. 때 미는 것보다 못한 게 철학인 것 같은데, 뭐. 뻥이 심해도 어지간해야지. 존나 잘난 척하고 있잖아.


나머지 제목들도 마음에 안 들긴 마찬가지였어. 일기장에 책 제목을 쭉 써 놓고 읽을 순서를 매겨보았어. 마음에 안 드는 건 가차 없이 가위표야. 대충 이런 책들이었어. 생의 한가운데서(루이제 린저), 이방인(알베르 까뮈), 구토(사르트르), 꿈의 해석(프로이트), 체호프 단편, 티베트 사자의 서,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그리고 제목 자체가 문법에 맞나 싶은 '꿈에의 의지(니체)'까지. 책 제목을 지을 때 원래 거드름을 잔뜩 넣어 짓나? 과대포장 같아. 내용이 부족하거나 자신이 없으니까 강렬한 제목으로 메우려는 얍삽함이 느껴진 건 기분 탓이었는지도 몰라. 내가 당해봐서 알거든. 당시 골목길에서 나와 장깨 같은 약자들을 위협하고 돈 뺏던 양아치 형들이 그랬어. 위협적인 무늬가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고 배 까지 올라오는 바지를 입었거든. 자기들도 겁은 날 테니 혼자는 못 다니고 떼로 몰려다니면서 주먹이나 욕설로 위협하곤 했어. 짧게 깎은 머리도 사실은 자신의 약점을 감춰보려는 행동일 거야. 근데 이 책들도 그런 식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울컥했어. 허세 가득해 보이는 제목들도 기분 나쁜데 이번엔 그 책들이 일제히 양아치 형들 모습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거야.


"목욕탕 뽀이 주제에 감히 '사상전집'을 읽으려고? 고등학교도 못 간 새끼가."


고등학교라는 말에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목울대가 뜨거워 휘청거리는 느낌이었지만 지고 싶지 않았어. 나도 책들을 노려보았지.


"웃기시네. 당신들 사상가들이야 말로 자의식 과잉 환자들 아냐? 그런 얍삽함이 나한테 먹힐 것 같아? 우쭐대는 꼴 좀 보라지. 당신들의 지적 허영을 뽐낼 대상으로 나처럼 무식한 새끼는 꽤나 만만하겠군. 안 그래? 하지만 당신들이 내 삶을 알아? 당신들은 다들 부잣집에 태어나 운 좋게 공부한 도련님들일 거면서 버러지 같은 내 삶을 알기나 하냐고. 그걸 모른다면 세계의 사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어?"


근데 자꾸 기가 죽는 건 어쩌지 못하겠더라. 사상가가 말하는 삶의 이치는 사회에서 이미 검증된 거잖아. 그들의 깊고 고결한 사유들은 나 같은 바닥인생바닥 인생과는 어울리지 않는 게 당연할 것 같았어. 사상전집이라는 건 고등학교, 아니 대학을 졸업하고 사색의 궤도에 안착한, 말 그대로 정제된 인간들의 고상한 생각을 모아 놓은 거잖아.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또 우울해졌어. 그런 건 애초부터 내 팔자에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던 거잖아. 난 목욕탕 뽀이일 뿐이라고. 그런데도 자꾸 눈이 가는 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떠밀리듯 읽기 시작했어. 어쩌면 그 책들에게 묻고 싶었는지도 몰라. 고등학교에 못 간 나 같은 놈도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당신들의 책이 나를 위로해줄 수 있나요? 제발 나 같은 놈도 이해하게 해 줘요. 책은 답을 하지 않았어. 화가 났어. 그리고 우울했어. 그래서 또 내던지고 싶기도 했어. 지하 다방의 그녀가 길 물어 온 아줌마에게 퉁명스럽게 우리 학생 아니라고 쏘아댔던 것처럼. 나도 같은 심정으로 사상가들에게 대들고 싶었어. 근데 대들려면 뭘 알아야 되잖아. 읽어야 알지. 일단 그럼 큼직한 거 하나를 읽어보자. 그 뒤에 판단해도 되잖아.


결국 나의 독서를 이끈 건 열등감이었던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어. 근데 잠시 뒤 이번엔 창피한 마음이 또 슬며시 일어나는 거야. 내가 책을 대상으로 지금 샘내는 거야? 모른척했어. 그렇게라도 해서 나를 위로하고 싶었어. 이기적으로 나도 얍삽하게 생각하기로 했어. 뭐 어때? 사장의 대학생 아들이 이 책들을 안 읽은 이유도 연애질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서일지도 모르잖아. 책을 상대로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던 기간이 며칠 이어졌어. 고단한 목욕탕 생활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일부러 시간 내서 읽자니 귀찮고, 모른 척하자니 또 눈에 보여 신경 쓰이고. 에라, 모르겠다. 읽기 시작했지. 어려운 사상전집을 읽기 싫어서 괜히 제목을 트집 잡은 것 같지만, 아니야. 때밀이 형뿐 아니라 손님들의 반응도 비슷했거든. 가끔 읽은 척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아는 것 같진 않았어. 어릴 때 저런 책들을 변소에 쌓아 놓고 똥을 닦았다는 둥, 담배 말아 피우기 딱 좋은 종이라는 둥 책 내용과 관계없는 말들만 했어.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괜히 후련해졌어. 그런데 그럴수록 책 내용이 더 알고 싶은 거야, 글쎄. 다른 책들과 달리 <안나 카레니나>는 사람 이름이잖아. 과시나 은유의 허세가 없는 제목이야. 그래서 이 책을 점찍었지. 책이 두껍다는 건 진입장벽이 되지 못했어. 못 읽겠으면 그냥 덮으면 되지, 뭐. 그리고 다신 안 보면 돼. 난 목욕탕 뽀이니까. 그런데 한 번 펼친 그 책을 다시 덮을 수 없었어. 첫 문장 때문이야.


[행복한 가정은 다들 비슷비슷한 이유로 행복한데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그래, 이 문장 때문에 못 놓았어. 아냐, 책에게 포박당했다고 해야 하나? 어떤 문장이 이렇게 함축적일 수 있을까. 어떤 작가가 인간의 삶과 행복을 이렇게 투명하게 기술할 수 있을까. 책 등허리에 지은이가 누군지 봤어. 레프 톨스토이. 모르는 이름이었어. 그때까지 난 책이란 걸 읽은 기억이 없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읽은 로빈 후드 정도? 그것도 중간까지 읽다가 뒤로 건너뛰어 결말을 보고 말았으니 다 읽은 것도 아니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어떻게든 끝까지 읽은 건, 그 책 속 인물 레빈이라는 사람 때문이었어. 읽을 수록 나도 그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첫 문장에 빠지듯 그에게 빠져들었어. 초보 애독자의 서툰 동일시라고나 할까. 책 내용은 여주인공이 자식과 남편을 버리고 바람이 나서 아이까지 낳지만 정작 남자의 사랑이 식어가는 걸 알고 성질만 내다가 기차에 뛰어들어 죽어버린다는 드라마야. 막장드라마지. 그런데 그땐 아직 어려 그런지 주인공인 안나에 대한 관심은 별로 안 갔어. 다행히 이 소설의 초점은 주인공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다양한 주변 인물의 삶을 나란히 따라가거든. 그중 한 사람이 레빈이야. 그는 머리가 좋거나 인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연을 좋아해. 이게 마음에 들었어. 또 자기 내면의 욕망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이야. 돈이 많거나 명예가 높은 것도 아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쪽으로 존경받지는 못하지만, 천박하지도 않아. 그냥 주어진 일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애쓰지. 사랑에 능한 것도 아니어서 짝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좋아해도 말 못 하고 혼자 아파해. 더구나 나중에 그 여자가 실연 후 다시 돌아와도 특별히 환호하지 않아. 대신 따뜻하고 듬직한 남편이 되어주지. 귀족이지만 농노들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스며들어갈 줄 알아. 나도 레빈 같은 아버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덕분에 나는 지겨워하던 목욕탕 일이 조금씩 고맙게 느껴졌어. 레빈의 농노들처럼. 현실이 힘들어도 먹고살게는 해 주니까. 레빈 이외의 등장인물들의 삶 또한 조금만 각색하면 나와 비슷하거나 이상향과 같았어. 당시 내 삶은 불우, 불행, 불미 같은 불(不)로 가득하다고 생각했거든. 불행한 가정은 각자 여러 이유가 있다는 말이야 말로 나에게 딱 맞는 표현이었지. 나의 불행은 어디에서 왔을까. 돌아가신 아버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 고등학교에 못 가고 돈벌이에 나선 일? 포악한 때밀이 형? 그 어떤 이유도 딱히 떨어지는 설명이 되지 않던 때였어. 그저 현실이 더럽다고만 느꼈지. 내가 겪어야 하는 일들 그 무엇 하나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던 때였어. 그래서 그 책에서 뭐라도 찾아내고 싶었는지 몰라. 찾아내서 위안 삼고 싶었어. 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어. 분명 우리말인데도 이해 안 가는 문장이 너무 많은 거야. 특히 사람의 심리를 묘사하는 문장이 그랬어. 나의 어휘력이 형편없었거든. 매일 담배나 피우고 침 뱉는 일상에서 배울 어휘랄 게 뭐 있겠니. 언제 사색을 해 봤어야 말이지. 그렇다고 이해 못한 채 책장을 넘기자니 그건 또 싫었어. 톨스토이한테 미안할 것 같은 거야. 결국 어떻게든 이해가 갈 때까지 앞 뒤 문단을 왔다 갔다 여러 번 읽는 수밖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어. 또 한 가지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었어. 그 나라 사람 이름은 왜 이리도 길고 이상한 거야? 미치고 팔짝 뛰겠는 건 본명 말고 부르는 이름은 또 따로 있다는 거야.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카레니나,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안나 카레니나의 남편),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안나의 애인. 알료쉬아라고도 부름),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니콜라이 레빈의 친동생,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코즈느이쉐프의 이부동생). 그나마 이건 자주 언급되는 주인공들의 이름이야. 각 주인공마다 관련된 사람들이 또 수십 명씩 있어. 아이고, 머리야.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있나. 결국 난 일기장에 인물들 이름을 써 가며 누가 누구와 형제고 친구고 부부사인지 선을 그어가며 읽었어. 그러니 조금씩 윤곽이 보이더라.


책의 초반에는 방대한 스케일에 적응하느라 좀 헤맸지만 시간이 지나자 술술 읽혔어. 책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목욕탕 손님이 와도 응대를 하는 둥 마는 둥 할 정도였어. 손님이 없으면 아예 탈의실 탁자에 엎드려서 책을 읽었어. 형에게 혼났지. 그러면 형 눈을 피해서 읽는 거야. 읽다가 손님이 오면 일회용 칫솔이며 때 수건을 책갈피로 끼워놓고 일을 봤어. 일이 끝나면 탈의실 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읽었어. 다음 날 하품이 나올 정도로. 그럴 때마다 형이 머리통을 쥐어박았어.


“어이, 좆바리! 니가 보면 뭐 아냐, 새꺄? 그래, 잘해 봐라, 자식아.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잉. 킬킬.”


'잘해 봐라.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잉.' 이건 당시 유행어였어. 형은 내가 책을 보는 것 같으면 욕을 하다가 꼭 그 말을 덧붙이며 킥킥거렸어. 가끔 들른 사장도 마찬가지였어. 그가 오면 보통 카운터에서 미리 알려주거든. 그러면 나는 재빨리 책을 꽂고 일하는 척하는데 한 번은 불쑥 들어온 거야. 책을 읽다가 들켰지.


"어쭈? 이 시애키 봐라. 동작 그만. 너 그 책 가지고 뭐 해. 내가 책 잘 꽂아 놓으라고 했어, 안 했어, 인마!"


그 책이 얼마 짜린지 아느냐. 잘 꽂아놓고 누가 훔쳐 가나 잘 지키라니까 왜 함부로 꺼내냐고 신경질을 냈어. 정작 대학생인 자기 아들은 안 읽는데 나 같은 애가 읽겠다고 하니 분했을지도 몰라.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자 형이 내 편을 들어주듯 말했어.


"싸장님, 저 새끼도 대학 갈라나 봅니다. 얌마, 열심히 해라.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잉. 킬킬."


사장도 어이없다는 듯 웃었어. 난 도둑질을 들킨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잽싸게 책을 꽂고 탈의실을 쓸기 시작했어. 사장은 형과 담배를 피우면서 장기를 몇 판 두다가 갔어. 형은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그러게, 새꺄, 좀 눈치 있게 하라며 넌 송충이니까 솔잎이나 잘 처먹으라고 했어. 어떤 날은 내가 읽던 책을 형이 베고 낮잠을 자기도 했어. 책을 못 읽게 하려고 그랬다기보다 아마 거기 있으니까 베개로 썼을 텐데도 난 속상했어. 손님들의 반응도 비슷했어. 대부분 목욕탕에 오면 옷 벗자마자 체중계 위에 올라갔다가 바로 욕탕으로 들어가잖아. 목욕이 끝나고 나오면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탈의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지. 그러다 보면 대형 거울 바로 옆에 있는 책장이 눈에 띌 거야. 대부분은 제목을 휙 보고 끝이야. 하지만 가끔은 그걸 꼼꼼히 읽는 손님도 있었어. 책을 실제로 빼서 들춰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바로 그 책장에 있던 책이라는 걸 알고 의외라는 듯 말을 걸기도 했어.


"꼬마야, 그거 뭐냐?"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입니다. 헤헤."

"재미있냐?"

"잘 모릅니다. 그냥 봅니다. 헤헤."

"너 몇 살이냐?"

"열일곱 살입니다. 헤헤."

"그럼 고1이냐?"

"아닙니다. 고등학교 못 갔습니다. 헤헤."

"고등학교 못 갔어?"

"네, 못 갔습니다. 헤헤."

"야, 이런 거 말고 무협지 없냐? 그런 게 재미있잖아. 왜 피곤하게 사냐?"

"아, 무협지 재밌습니까? 제가 아직 못 봐서... 헤헤."


목욕탕에는 무협지나 있어야 할까. 칸트가 있으면 어색할까. 왜? 노동에서 돌아와 땀을 벗고 때를 미는 곳이라서 <순수 이성 비판>은 안 어울리는 거야? 사람들은 때밀이 형이 노동자의 등을 미는 행위와 동갑내기인 사장 아들이 연애질 하는 행위의 가치를 인간의 이성이 판단할 수 있는지 알아 보려고 이런 책을 읽잖아. 나도 같은 이유였어. 고등학교 못 가고 여기에서 일하는 나의 노동과 학교에서 공부하는 다른 아이들의 노동은 같은 지, 다르다면 어떤 것이 더 천하고 귀한 지 알고 싶은 거야. 그런데 사람들은 나 같은 애가 읽는 게 이상한가 봐. 목욕탕 뽀이는 그런 걸 알 필요가 없다는 건가? 알아선 안 된다는 건가. 그러거나 말 거나. 손님 앞에선 치웠다가 그 손님이 가면 다시 읽었어. 비수기여서 목욕탕이 한산한 데다 학교까지 안 다니니 시간이 많지. 마음껏 읽었어. 사상전집도 소설집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거의 다 읽은 다음엔 전에 읽었던 걸 다시 읽었어. 다시 읽어도 모르는 건 몰랐지만 어떤 건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어. 몰랐던 걸 아는 일이 꼭 기쁜 것 만은 아니었어. 책 속의 세상을 알아갈 수록 지금 내 현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거든. 뭐, 할 수 없지.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어. 또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 있어. 책이 사람을 바꾼다면 어쩌면 지금의 나처럼 바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고등학교 못 가고 목욕탕에 갔을 때, 난 세상을 향해 뾰족하고 날카로운 날을 세운 칼날 같았어. 누가 시비만 걸면 맞받아치겠다는 험한 눈빛을 하고 있었지. 그래서 장깨를 따라, 혹은 내가 먼저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어가니 마음속에 어떤 부대낌 같은 게 생기는 거야. 항상 눈에 힘주고 긴장해야 한 채 사는 게 오히려 피곤한 거야. 세상을 향해 시작도 끝도 없는 분노를 키우면서 소모할 기운이 열일곱 아이에게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니.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고 욕을 아무리 해도 벗어지지 않는 일상의 굴레가 지겨웠어. 매일 저녁 욕탕을 청소하고 새벽에 물을 받는 일은 아무리 월급을 많이 받아도 영원히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또 내 삶을 이어나가려면 적응해야 할 일 같았어. 그러면 또 무서워졌어. 목욕탕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까 봐. 형이 내쫓아도 나 스스로 못 나가겠는 거지. 사상전집만큼이나 세상은 아직 낯설고 무서웠거든. 담배와 술은 나를 이런 환경에서 구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 몸을 해치는 자학일 뿐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한 것도 사실 그 무렵이었어. 체념이라고 해야 할까, 그 환경을 부정하거나 벗어나려 애써도 안 되잖아. 그러니 술로 울분을 풀지. 그런데 그런 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어.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책 속 인물이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어.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지주 레빈이 농민들에게 군림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풀을 베고 밥을 먹고 나서 말하는 거야. 나는 너를 이해한다고. 네 마음속에 나도 있다고. 이제 울지 말라고. 그 뒤로 어른이 되어 안나 카레니나를 또 읽은 적이 있지만 레빈의 목소리는 다시 느끼지 못했어. 그땐 위로받을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서였을까. 열일곱의 첫 독서에서 레빈은 어두운 뒷골목에 분노의 침을 뱉는 나를 식혀주러 온 손님이었어.


그다음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였어. 욕망이라는 가면을 쓴 신들이 인간처럼 지지고 볶는 이야기. 연속극을 보는 느낌이었어. 그다음 책은 아무거나 막 골랐어. 누가 계통을 잡아주고 순서를 알려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뭐, 할 수 없었어. 무턱대고 읽는 수밖에. 그래도 마음에 든다 싶은 책들이 생기더라. 가장 인상적인 건 니체였어. 세계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천명했던 천재.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불친절한 문장을 나열해 놓았더라만, 그래도 어쩌다 내 이야기다 싶은 문장이 나오면 일기장에 옮겨 적기도 했어. 예를 들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낙타, 사자, 어린이, 초인이라는 단어라든지. 아직도 난 니체를 잘 모르지만, 내 삶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가장 의지하는 건 니체를 비롯한 사르트르, 까뮈, 하이데거 같은 실존주의자들이야. 그들의 책을 보면 이상하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거든. 특히 인간이 ‘무목적적’으로 태어났다는 문장 말야. 가난한 엄마에게 착한 아들이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났다는 거. 그러니 엄마에게 매몰되지 않고 나를 위해 살아도 된다는 말. 때밀이 형에게도 마찬가지였어. 비록 그에게 월급은 받지만 부하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니까 굳이 비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잖아. 우리는 도덕과 윤리를 구현하러 이 세상에 온 게 아니기 때문에 관습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살아도 된댔어. 내 삶을 처절하게 반성할 필요도 없고 그냥 초인을 지향하며 살면 되는 거야. 얼마나 멋있어. 비록 발은 시궁창 같은 현실에 있지만 이상은 목욕탕 창문 밖 하늘을 향하는 기분이랄까. 그 책들을 결국 좋아할 거였으면서 단지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다니. 책들에게 민망했어. 난 왜 제목들을 마뜩잖아했을까. 마음에 안 들면 안 읽으면 될 일을. 고등학교에 가지 못한 부끄러움이, 그래서 고담준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열등감을 그 책들에게 들킨 건 아니었을까. 나의 독서를 비꼰 때밀이 형이나 사장 또한 들키기 싫은 무언가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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