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 많던 구두 공장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침이면 책가방을 들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사정이란 결국 가난으로 수렴될 거야. 막상 목욕탕에 가고 보니 나처럼 학교에 가지 못한 처지를 비관한 아이들이 주변에 꽤 있었어. 학생이라는 주류에 끼지 못하고 자청해 뒷골목을 떠돌던 아이들 말야. 고등학교를 못 가는 삶이란 공장에 가야 하는 걸 의미했어. 학교 못 가는 형편이란 가난하다는 거잖아. 놀 여유도 없어. 당장 돈을 벌어야지. 목욕탕과 멀지 않은 허름한 건물 지하에 구두 공장이 있었어. 을지로 큰 구둣가게에 납품할 정도로 꽤 비싼 구두를 만드는 공장이야. 비싼 구두라 그런지 신발 틀 몇 개 빼면 대부분 수작업을 했어. 그 공장에는 열 명 남짓 청년들이 일하고 있었어. 그들을 알게 된 것 역시 장깨 덕분이야. 녀석은 어디든 배달을 갔으니까. 그 공장 막내 둘이 우리와 동갑이었어. 어리면 서열문화의 불합리한 고충을 겪게 마련이잖아. 당시 열일곱이라는 나이는 대부분의 노동현장에서 가장 어린 축이야. 밤 여덟 시쯤 구두 공장 일이 끝나고 사장이 퇴근을 하면 공장 청소를 해. 물론 청소는 내 친구들 차지야. 안 하면 공장 형들에게 맞거든. 선임자가 어린 후임자를 때리는 일이 흔했어. 학교도, 군대도. 공장에선 더했어. 내가 때밀이 형에게 맞은 것처럼 장깨도 맞았대. 배달이 늦었느니, 단무지를 조금만 가져왔느니, 군만두 서비스를 안 가져왔느니 하면서 때리더래. 그러려니 했어. 이유도 모르고 맞을 때도 많았어. 안 맞으려면 눈치껏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어. 노동현장에서 우린 그런 위치였어. 청소가 끝나면 작업대 위에 이불을 깔고 자. 물론 나이가 좀 있는 형들은 바로 자지 않았어. 내 친구들에게 소주와 담배 심부름을 시켜서 한 잔 하지. 하지만 그 무서운 형들도 쉬는 날은 다들 어딜 가곤 했어. 그때를 틈타 친구들이 장깨를 통해 나를 초대했지. 일을 마치고 밤 10시쯤 장깨와 그곳에 처음 갔을 때가 기억 나. 작업대 주변엔 온통 구두를 만드는 가죽과 밑창, 깔창, 실타래와 바늘, 본드 깡통들이 쌓여 있었어. 갓 가공한 가죽 냄새, 본드 냄새가 환기 안 되는 지하에서 엉켜 이국적인 느낌났어.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사람이 종일 일하고 잠까지 잤을까 싶지만, 당시 일터는 위험하거나 더러움에 대한 기준이 없었어. 사장은 어떻게든 돈이 안 드는 운영을 했어. 공장이 싫으면 내가 나가야 해. 나가면 다른 공장을 가야 하잖아. 그 공장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어. 장깨와 나도 작업대 위에 앉았어. 우리를 초대한 친구들이 소주와 새우깡을 내왔지. 첫 만남의 어색함은 잠시, 금세 우리 넷은 그 공장 형들을 흉내며 술을 마셨어. 지하에 담배 연기가 자욱해지고 우리들의 상스런 언어와 낄낄거림이 오가던 중, 한 친구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구석에서 본드 깡통 하나를 가져왔어. 뚜껑을 따고 본드를 한 숟가락 퍼서 비닐봉지에 담더라. 이어서 봉지 주둥이로 입과 코를 감싸더니 본드 냄새가 새 나가지 않게 두 손으로 감싸 막고 풍선 불듯 불기 시작했어. 그들의 호흡에 따라 비닐봉지가 부풀었다 쪼그라들었다를 한 스무 번이나 반복했을까, 친구가 봉지를 내던지더니 축 늘어져 누웠어. 곧이어 장깨 녀석도 익숙한 듯 따라 했어. 그걸 본 나도.
구두 공장 친구들에게는 여자 친구들이 있었어. 옆 골목 청바지 공장 여공들인데 스물 갓 넘은 누나들이었지. 청바지 공장은 일이 많아서 늘 야근을 했는데 어쩌다 작업이 없으면 누나들이 오곤 했어. 어떤 날은 목욕탕 앞 포장마차에도 왔는데 그런 날은 나와 장깨도 얻어먹었어. 그 친구들은 여자 친구들과 종종 외박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럴 때마다 무용담처럼 자랑했어. 열일 곱 사내아이들이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여자 친구와의 섹스를 떠벌린다면 그 수준이 어떻겠니. 특히 자극적이게 마련이잖아.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지하다방 그녀가 연상되곤 했어. 그럴 때마다 까닭 모를 죄책감과 수치스러움이 일었어. 마음이 불편했지. 남녀가 뒤엉키는 이야기를, 그것도 자기 여자 친구를 상대로 한 은밀한 이야기를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떠드는지 모르겠어. 여자 친구가 알면 실망할 것 같은데. 만약에 친구들이 나의 그녀도 같은 선상에 놓는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어. 그들의 말처럼 내가 그녀와 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거든. 내가 그녀에게 어떻게 그래. 안돼. 그럴 순 없어. 혹시 나중에, 더 어른이 된다면 그녀와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는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 죄짓는 것 같아서. 친구들은 나더러 지하 다방의 그녀도 한 번 데려와 보라고 했어. 그녀가 일하는 시간이 겹쳐서 안 된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했어. 하지만 사실 그녀가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뭐랄까, 그녀와 그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면서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거든. 술과 섹스, 본드. 그들의 삶은 거칠고 즉흥적이고 무질서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해서 그녀가 저들을 만나면 그녀만의 맑은 무언가가 오염될 것 같은 걱정이 되는 거야.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그녀가 나를 좋아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어. 그녀는 나에게 호감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짝사랑. 그래, 짝사랑이었어. 수없이 편지를 써서 장깨를 통해 보냈지만 그녀는 그다지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 그렇다고 그녀가 내 편지를 거절한 것도 아니야. 가끔 그녀도 아주 가끔 내게 답장을 주곤 했어. 하지만 내용은 주로 다른 사람이 쓴 글이었어. 버스, 또는 미장원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같은 글들 말야. 아무리 읽어도 나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었어.
어울릴 사람이 없던 나와 장깨는 그들의 여자 친구가 낀 포장마차에서 자주 얻어먹었어. 그런데 항상 돈은 그녀들이 내는 거야. 월급을 많이 받나? 궁금해서 물었더니 비밀이 있었어. 구두 공장 친구들이 공장에서 구두를 빼내서 그녀들에게 넘긴다는 거야. 원래 구두 완제품은 사장이 따로 퇴근길에 챙겨 납품하지만 불량품은 다시 해체해서 부품으로 쓰거든. 수량 파악도 안 해. 그걸 이용하는 거야. 일부러 멀쩡한 구두 뒤꿈치에 칼자국을 낸다든가 하는 식으로 불량을 내고는 사장이 퇴근하면 뒤꿈치 교체 작업을 해. 그럼 멀쩡한 상품이 되잖아. 청바지 공장 누나들은 그 구두를 구제 가게에 팔아주는 대신 수고비를 떼는 거지. 구두 한 켤레 가격이 내 월급과 비슷했으니 그들이 얻는 수익도 꽤 되는 것 같았어. 그렇게 돈이 모이면 택시를 잡아타고 청량리 집창촌으로 갔어. 매춘을 하러.
어린애들이 어쩜 그리 엄청난 짓을 벌일까, 놀라울 거야. 그래, 그 친구들은 어떤 도덕과 윤리로부터도 자유로웠어. 아니, 자유로웠다기보다 보호받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학교 못 가고 세상에서 내쳐진 삶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 저질렀어. 부끄러움이라는 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구두 빼돌리기든 취객을 상대로 한 퍽치기든 아이들의 돈을 뺏든 가리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학교에 갈 생각은 하지 않더라. 대신 막 유행하기 시작한 나이키 운동화를 사거나 더 나중에는 오토바이를 샀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범죄 집단에 들어가기도 했어. 칼이나 야구방망이를 대신 휘두르고 감옥에 가거나 몸이 상하기도 했어. 그때 누군가가 그들을 말려주었다면, 빈말로라도 이놈들, 그러면 안 된다고 나무라 주었다면 그 뒤의 삶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린 대체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결손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양육자의 따뜻한 격려나 배려의 경험이 적었어. 냉정한 환경에서 약자로 눈치 보며 자라다 보니 뭘 하더라도 자신감이 못 붙었어. 이런 아이들은 어딜 가나 귀찮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잖아. 누가 편들어 주지도 않으니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도 못하지. 무시하고 때려도 누가 쫓아와 항의할 보호자도 없으니 함부로 부려먹다가 적당한 이유로 내쫓아도 부담이 없는 대상이잖아. 평소엔 잊고 살거나 귀찮게 여기다가도 무슨 날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 구호 대상으로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만 그렇다고 끝까지 돕거나 이끌어주기에는 꺼려지는 대상. 그게 우리들이었어. 우리 같은 친구와 어울리면 물든다고 아이들을 단속하고 우리가 몰려다니는 동네를 슬럼가라고 피하는 시선을 늘 읽었어. 비행청소년이라는 틀과 수틀리면 잡아 쳐 넣어버리겠다는 위협 속에서 어린 우리의 선택지가 얼마나 됐겠니. 결국 뒷골목에서 선량한 시민을 상대로 범죄의 유혹 밖에는. 돈 없어서 사회에서 밀려난 우리들이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사회의 위협적인 존재로 낙인까지 찍혀 있었어. 그들의 삶이 얼마나 가혹하게 풀려나갔는지를 다음에 하려니 벌써부터 애잔하다.
10.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반죽으로 만든 빵
삶이란 즐거움과 괴로움이라는 반죽으로 빚어진 빵이 아닐까. 어떤 빵은 즐거움이라는 맛이, 어떤 빵은 괴로움이라는 맛이 더 강할 거야. 지금 너희 삶은 어떤 맛이니. 삶이 어떤 맛이었는지는 마지막 눈을 감을 때에 가서야 알게 될 거야. 늙은 내가 돌이켜보자니 삶은 어떤 맛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어떤 맛을 느끼려 했는지의 결과인 듯 하다. 구두를 빼돌려 번 돈으로 유흥을 즐기던 친구들에게 주어지던 호시절도 오래가진 않았어. 나와 장깨가 밤에 구두 공장을 드나드는 횟수가 늘수록 그곳의 형들하고도 인사를 트게 됐어. 가끔 그들의 포장 마차 회식에 끼어 얻어먹기도 했지. 그 대신 우린 소주나 담배 심부름을 했어.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술을 마시고 형들이 본드를 불고 그중 몇 명은 바지까지 내리고 성기를 꺼내 수음을 하던 그때였어. 사장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 온 거야. 눈 앞에 벌어진 광경에 놀란 사장은 구석에 있던 마포 걸레 자루를 빼들고 휘두르기 시작했어. 본드에 취한 형들은 피할 생각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맞을 수밖에. 심부름은 했지만 형들 무서워 감히 술을 못 마시고 앉아 있던 나와 장깨는 후다닥 도망을 쳤어. 그런데 그중 본드에 덜 취해 있던 형 하나가 매를 견디다 못해 구두 틀로 사장의 머리를 후려친 거야. 사장이 피를 흘리며 경찰을 불렀어.
그 사건은 가출 청소년들의 집단 탈선으로 신문에 났어. 기사에서 구두 공장 사장은 평소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봉사를 많이 한 선한 기업가로 소개되었지. 오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을 불쌍히 여겨 숙식 제공은 물론 일자리까지 제공하며 자립을 도왔는데 은혜도 모르고 본드를 흡입하는 등 탈선을 한 것도 모자라 선도하는 사장까지 폭행한 청소년들을 지탄하는 내용이 덧붙여졌어. 한 달에 십만 원도 안 주면서, 단무지에 칼국수나 먹여가며 하루 종일 일을 시킨 사장은 선하디 선한 어른으로, 지문이 닳고 손톱이 빠지도록 구두를 만든 친구들은 배은망덕한 철부지 청소년이 됐어. 시팔 좆같은 세상이라고 장깨는 욕을 했어. 나도 같은 마음이었어. 사람들이 보는 우리는 쥐새끼 같은가 보다, 생각했어. 괜히 돌아다녀서 사람들 불편하게 하지 말고 알아서 어디로 꺼져주거나 존재하더라도 중심이 아닌 구석에서 티 나지 않아야 하는 존재. 우리 같은 불행아들은 하나도 없다고 믿고 싶은 이들 마음이 불편해지면 안 되니까. 그날 공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찰서에 잡혀 갔어. 신문에 났으니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아 보였지. 그런데 단 한 명, 사장을 때린 형이 소년원에 간 걸 빼고는 나머지는 예상과 다르게 단 하루 만에 공장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열심히 일 했어. 밤마다 하던 술자리는 더 이상 없었어. 심지어 구두를 빼돌리던 일도. 하지만 막내였던 두 친구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그들은 그날 술을 마시지도 본드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야. 당장 갈 곳이 없는 그들이 목욕탕으로 왔지.
그들이 돌아온 걸 기념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장깨가 중국집에서 고량주를 훔쳐 왔어. 우린 새우깡을 펼쳐 놓고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었어. 무섭고 무섭고... 무섭기만 한 이야기를. 우리처럼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일단 경찰서에 잡혀가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수갑을 채우고 사방이 막힌 지하실에 끌고 가 불을 끈 다음 채찍인지 막대기인지로 한참을 사정없이 때린대. 너무 아파서 혀를 깨물어 죽고 싶어도 입에 재갈을 물려서 못 죽는대. 그저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엎드린 채 조금이라도 덜 아픈 곳을 내밀어 맞을 수밖에 없었대. 맞고 나면 없는 잘못도 지어내게 된대. 그도 본드 한 거, 청량리 집창촌에 간 거, 어린애들 돈 뺏은 거, 구두 빼돌린 걸 썼대. 하지만 그들이 빨리 풀려난 게 그들의 반성문 때문은 아니었대. 당장 납품기한을 지켜야 하는 사장의 사정 때문이었지. 막내 두 명은 아직 숙련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난 거야. 경찰서에서 있었던 말을 하는 내내 매 맞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친구들의 표정이 공포와 안도 사이를 오가고 그를 보던 우리도 전율과 공포로 온 몸을 떨던 그때, 내게도 큰일이 일어났어. 때밀이 형이 갑자기 들어온 거야. 마침 근처에서 술 한 잔 하고 가다가 목욕탕에 불 켜진 걸 보고 들어 온 거지. 나는 어떻게든 상황을 설명해보려고 종종걸음으로 형에게 다가갔지만 첫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형의 주먹이 얼굴에 닿았어. 한 대로 끝나지 않았어. 입술이 터지고 발길질에 나동그라지기를 여러 차례. 잘못했다고 앞으로 안 그럴 테니 한 번만 봐주시라고 비는데도 계속 때리는 거야.
"아, 씨발! 제 얘기 좀 들어보시라구요, 진짜!"
술김이라 그랬을까, 계속 맞다가 뭐가 치밀었는지 내가 소리를 질렀어. 나도 놀랐어. 씨발이라니. 형에게 대들다니. 형도 놀란 것 같았어. 불콰하게 취한 형의 표정이 기분 나쁘게 변하면서 시계를 풀었어. 그 사이에 공장 친구들은 후다닥 도망 나갔고 난 맞았어. 형에게 대든 게 미안했을까, 별로 저항도 안 하고 이리저리 몰리면서 때리면 때리는 대로. 형에게 평소 아양을 떨던 장깨가 매달려 살려달라고 울부짖지 않았더라면 아,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형은 화가 다 안 풀렸는지 장깨 뺨도 후려치며 이 좆바리들, 똑바로 안 하면 다 죽여버린다고 식식대다가 가버렸어. 형이 나가자 장깨가 휴지에 물을 조금 묻혀 내 코피를 닦아줬어. 형이 가고 없는데도 눈물이 계속 나왔어. 그걸 장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화장실에 가서 코피를 마저 닦고 입안에 고여 있던 피를 뱉어냈어.
그땐 왜 그렇게 사람을 때렸을까. 툭하면 때렸어. 정강이를 구둣발로 차거나 뺨을 때리거나. 구두를 잘 못 닦았다고 때리고 때를 덜 밀었다고 때리고. 뭐, 개새끼, 병신 새끼 같은 욕은 기본이야. 맞은 분풀이는 또 다른 약자에게 하게 마련이잖아. 하긴, 국가에서 삼청교육대를 만들던 시절이니. 군대에서도, 심지어 학교에서도 그렇게 때리다 보면 가장 약한 계급인 누군가는 계속 맞기만 해야 하잖아. 난 아마 맨 끄트머리쯤에 있었던 것 같아. 목욕탕에 가기 전만 해도 내가 담배를 피고 침을 뱉고 씨팔, 같은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부류가 될 줄은 몰랐어. 굳이 변명 하자면, 그렇게라도 하면 세상을 향해 꾸역꾸역 기어오르는 화가 좀 달래지는 기분이었어. 내 속의 분노를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껌을 질겅대며 밤거리를 쏘다닌 게, 사실은 내가 혼내 줄 대상이 딱히 있어서라거나 누구 들으라고 한 건 아니야. 그냥... 그렇게라도 내 속에서 뜨겁게 끓고 있던 것들을 토해놓으면 좀 나았어.
밤이 깊어지면 목욕탕 동네는 화려한 네온의 거리로 변했어. 술과 매춘, 싸움과 구토, 범죄가 골목 곳곳에서 난무했지. 예전엔 밤 10면 청소년 귀가 권유 방송이 나왔지?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으니 부모님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방송 말야. 근데 그 방송을 들으면 더 짜증이 났어. 시팔, 돈 버느라 존나 뺑이 쳐야 되는데 가긴 어딜 가라고 지랄이야. 우린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킬킬거렸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각자 마음 한 켠이 쓸쓸해지는 건 감출 수 없었어. 그걸 감추려고 더 욕을 하고 담배를 피고 침을 뱉었어. 그러면서 속으로 빌었어. 우리도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같은 청소년인 우리는 그 시각에 당연히 안락한 집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공부를 했어야 했지만 학생이 못된 우리는 누구의 애정 어린 권유나 심지어 법의 강제도 받지 못했어. 대신 후미진 골목길 여기저기에 이리떼처럼 숨어 본드를 불거나 담배를 물고 밤거리를 돌아다녔어. 취객의 주머니를 뒤지고 시비가 붙으면 욕지거리를 하고 쫓아오면 도망가고. 누군가가 토해 놓은 토사물과 쓰레기가 넘치는 골목 여기저기를 이유도 모르고 배회하던 그 날을 생각하면 난 지금도 서늘해져. 무섭고 아슬아슬하고 무지했던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