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가 한 번 주디?"

어느 목욕탕 뽀이 이야기 - 05

by 나는일학년담임

5. "걔가 한 번 주디?"



삶은 언제나 불행만, 혹은 행복만 선물하지는 않나 봐. 죽어서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삶은 이어지게 마련이잖아? 힘든 일 가운데에도 즐거움이 곳곳에 숨어있을 거라는 걸 미리 안다면 우리 삶이 더 넉넉할 텐데. 중국집 배달부 친구. 그를 생각하면 포장마차에 갔던 일이 가장 먼저 떠올라. 소주병, 참새구이, 곤계란, 그리고... 나의 첫사랑. 이번엔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설레었고 뜨거웠지만 막막해서 우울했던 나의 첫사랑 이야기.


그때가 5월 무렵이었나? 중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인 1월 말에 시작한 목욕탕 생활도 제법 적응해 갈 무렵이었어. 여기저기 배달을 많이 다녀 꽤 발이 넓은 장깨 - 때밀이 형이 그렇게 불러서 별명이 됐어 - 가 그녀를 소개해 줬어. 나보다 몇 살 위였던 그녀는 목욕탕 건물 지하 다방에서 일했어. 그 다방은 낮엔 일반 다방, 밤엔 심야 다방 영업을 했어. 왜 있잖아. 성인용 비디오를 틀어준다는 명목으로 커피 값을 비싸게 받지만 대신 소파에서 잠을 자게 해주는 거야. 아마 불법이었겠지? 밤 10시가 넘으면 잘 곳 없는 사람들이 밤에 와서 커피 시켜놓고 소파에서 자는 거야. 그 사람들이 아침이 되면 배가 고플 거 아냐? 누군가는 라면도 끓여 팔고 재떨이도 비워야 되잖아. 그녀에게 그 일을 시키려고 마담이 고용을 한 거야.


때밀이에게 고용당한 나와 마담에게 고용당한 그녀라는 동질감이 용기를 부추겼을까, 그녀와 사귀어 보고 싶었어.


그녀는 빛을 제대로 못 보고 지하에 살아서 그런지 얼굴이 늘 하얬어. 그녀를 소개받고 목욕탕 마당 쓸러 왔다 갔다 하면서 마주치며 인사를 몇 번 나눴어.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거야. 난 새벽에 문을 열어야 하니 일찍 자야 하고 그녀는 밤새 일하고 낮에 자야 하니 통 얘기할 시간이 있나. 그래서 나와 그녀 사이의 메신저 역할은 장깨가 했어. 난 시간이 날 때마다 편지를 썼어. 달이 뜨면 달 이야기, 꽃을 보면 꽃 이야기. 주인공은 언제나 그녀였어. 그리고 매일 밤, 영업이 끝나면 장깨를 기다렸지. 나만큼 자주는 아니었지만 아주 가끔 그녀도 내게 편지를 썼어. 난 그걸 읽고 또 읽었어. 그리고 와이셔츠 케이스에 잘 넣어 내 옷장 깊은 곳에 넣어놓았어. 근데 장깨 녀석이 어느 날, 킬킬 거리며 때밀이 형에게 그만 말을 해버린 거야. 형은 별일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빈정거렸어.


"어쭈, 동작 그만! 야, 이 좃바리 새끼들 봐라?"


그 형은 나와 장깨가 같이 있는 걸 볼 때마다 항상 좃바리 새끼들이라고 했어. 어떤 집단에서 가장 낮은 계층을 이르는 '핫바리를 더 상스럽게 부르는 말. 불가촉천민 주제에 무슨 연애질이나 하느냐, 뭐 이런 의미였을 거야. 그 말에 얼굴이 확 붉어져서 잠시 멍하니 있었어. 난데없이 눈물까지 핑 도는데 형이 바로 또 묻는 거야.


"걔가 한 번 주디?"


주다니. 뭘 말하는 거지? 혹시 그걸... 말하는 건가?


"따먹었냐고, 새꺄."


헉. 누군가 몰래 뒤에서 다가와 갑자기 코와 입을 막는 느낌이었어. 캄캄한 밤에 혼자 걸어가는데 어떤 갈고리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내 목을 확 낚아채는. 그러면 몸이 붕 뜰 거 아냐? 내 목이 끊어질지도 몰라. 나도 모르게 내 목을 손으로 감쌌어. 난 그녀를 상대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감히 해보지 않았는데 저 사람 눈엔 내가 그렇게 보이는 거야? 그냥 들판에 오다가다 아무나 하고 그 자리에서 야합하는 사람 같아? 왜, 내가 좃바리라서?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형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 했어. 제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난 그녀를 상대로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짓을 상상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난 목소리를 쥐어짜듯 말했어.


"저희는... 그런 거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대할까. 언제까지 내 감정을 밟아댈까. 남녀가 좋아한다면 섹스부터 떠오르는 게 원래 맞나? 그럼 지금 자기 여자친구와도 그랬을까? 내가 여자라면 그런 생각부터 하는 남자가 좀 무서울 것 같은데. 설사 형이야 그런 인간이라 해도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하지? 내가 아무리 자기 밑에서 일하지만... 마당을 쓸러 건물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혹시 그녀도 그 시간에 쓰레기 심부름이라도 나오려나 얼굴 한 번 볼 희망에 미리부터 가슴께가 뭉클해지는 내 마음을 형도 알까. 내가 밤마다 수없이 쓰고 지우는 편지를 형도 읽는다면 어떨까. 아직 얘기도 한 번 나눠보지 못한 나와 그녀에게 저런 말을 하지는 않을 텐데. 내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얼굴까지 일그러지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런 거 아니라고 하며 버티자 형은 어쭈, 이 새끼, 대드네, 하는 표정으로 한 대 칠 듯 다가와 잠시 째려보더니 그럴 가치도 없다는 듯 내 볼을 꼬집어 흔들며 말했어.


"하이고, 진짜 가지가지한다, 좃바리 새꺄."


전 같으면 난 또 서러워 찔끔거렸겠지.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어. 무엇보다 난 그녀가 좋았거든.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을 다치지 않고 형으로부터 지켜냈다는 기분이 들면서 뿌듯함마저 느껴지더라. 여자는 따먹는 존재로 비하하면서 우리의 연정을 미개인의 교잡쯤으로 치환하려는 형의 천박함에 맞섰다는 생각 말이야. 조금 겁은 났지만 그 일은 내가 뭔가 그녀를 지키는 기사라도 된 듯 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어. 빛나는 갑옷을 입고 온 몸을 바쳐 공주를 지키는 그런 기사. 입이 가벼워 미안했던 장깨는 내가 형에게 대든 걸 제법 과장해서 그녀에게 전했어. 그때 난 결심했어. 어떻게든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데이트를 해야겠다고.



6. 맞아서라기보다 서러워서 더 아프게 느껴질 때에는



그녀는 밤새 다방에서 커피며 라면 심부름을 하다가 아침에 손님들이 빠져나가면 다방 청소를 하고 낮에는 구석방에서 잤어. 반대로 난 낮에 일하고 밤에 자다 보니 마주칠 시간이 없었어. 그래도 같은 건물에 그녀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났어. 덕분에 일도 덜 힘들게 느껴졌어. 그녀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미소가 피었어. 그래도 형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어.


목욕탕은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이 있었어.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집에 언제 갔었나 싶게 아득해질만하면 돌아오던 휴일. 그 날이 다가오면 저절로 신이 나서 전날이면 탕 청소를 서둘러 마치고 사오십 분을 뛰어 집에가곤 했어. 날 보면 엄마는, 목욕탕에서 일해서 그런지 얼굴이 번지르르한 게 좋아 보인다고 하셨어. 목욕탕 일이 할 만하냐고 물으면 할 만하다고, 때밀이 형도 잘해주고 라면도 꼬박꼬박 먹게 해 준다고 말할 거였는데 엄마는 목욕탕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어. 목욕탕에 대해 잘 모르시니 그랬겠지. 하지만 혹시 물으면 내가 힘들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울며 떼쓸까 봐 그러셨는지도 몰라. 사실 내가 떼를 써서 안 갈 수 있는 일이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거든. 때밀이 형이 나를 거칠게 대하는 게 힘들어서. 내가 일을 마치고 집에 왔으니 이미 밤이 깊어서 엄마도 피곤하신지 누워서 얘기하자고 하셔. 그럼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잠에 둘 다 빠지고 말아. 집이라 그런가, 잠이 얼마나 달게 오는지 몰라. 다음 날은 쉬는 날인데도 새벽 다섯 시면 잠이 깼어. 늘 일어나던 습관이 몸에 밴 거야. 엄마도 그 시각에 일어나 새벽기도 갔다 오시고 밥을 하셔. 동생들은 아직 자니까 이불 한쪽을 들춰고 그 자리에 상을 펴고 엄마랑 밥을 먹었어. 밥 먹으면서 나 목욕탕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꺼내보았어. 중학교 다닐 때처럼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어디 공장에 다니면서 밤에는 집에서 자고 싶다고. 엄마는 못 들은 척 밥을 드시더니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드시면서 말했어.


“거기 간 지 몇 달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관둘 생각부터 해? 니가 힘이 있니, 그렇다고 무슨 강단이 있니? 때밀이 기술이라도 착실하게 배울 생각을 하지 않구. 그만 둘 생각부터 하니, 원. 쯧쯧.”


엄마는 내가 모질지 못하고 끈기가 없다고 늘 걱정하셨어. 어머니 출근하시고 한 시간쯤 자다가 일어나 동생들 밥 먹고 학교 가는 거 보고 다시 늦도록 잠을 자고 오후에 일어났어. 지하 단칸방엔 시골에서 가져온 쌀자루가 그대로 쌓여 있었어. 서울에도 쌀을 팔 거라는 걸 알면서도 비싼 서울 쌀 사 먹겠느냐며 외할아버지가 실어주신 거야. 환기가 잘 안 되는 지하여서 그런지 쌀이 묵으면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집안에 감돌았어. 이불을 개고, 못쓰는 수건을 빨아 방바닥을 닦으면서 집안을 대충 치우다 보면 초등학교 갔던 동생들이 돌아왔어. 걔네를 데리고 슈퍼에 가서 돼지고기를 사다가 소금만 뿌려 석유곤로 불에 볶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저녁 먹고 어머니가 퇴근해 오시기 전에 나는 다시 목욕탕으로 가야 해. 그래야 내일 일찍 일어나 문을 열 수 있으니까. 근데 참 가기가 싫은 거야. 한 번 집에 오면 영 가기 싫어. 정말 '죽어도'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그만두고 싶다고 졸라봐야 엄마한테 물러 터졌다는 걱정만 들을 테니 결국은 털고 일어나는 거야. 그런 날은 내가 먼저 장깨한테 포장마차에 가자고 했어. 담배도 내가 더 피고. 침도 더 뱉고. 눈빛도 내가 더 사나웠을 것 같아. 난 시골서 와서 쉬는 날에도 갈 곳이 없는데 그래도 니는 집이 가깝게 있잖어, 새꺄 하고 장깨가 위로를 했지만, 그런 위로는 아무리 들어도 위로가 안 되잖아.


한 번은 집에서 하룻밤 더 자고 싶어서 쉬는 날 밤에 안 가고 다음날 새벽에 일찍 나섰는데 그만 첫 차가 늦게 오는 바람에 문 열 시간을 못 맞췄어. 출근해서 사장에게 한 소리 들은 때밀이 형이 다짜고짜 내 뺨을 후려치는 거야. 내 잘못인 건 알지만 맞아서 아픈 것보다 까닭 모를 서러움이 얼굴에 훅 끼쳤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눈물을 감추는데 때밀이 형이 그러는 거야.


"핫바리 새꺄. 뒤질라고 쪽을 써라, 아주."


그렇게 가고 싶은 집을 그 달엔 안 갔어. 그녀와 데이트하려고. 그날따라 목욕탕에 비치된 싸구려 스킨로션을 더 많이 바르고 아끼는 옷을 꺼내 입고 주머니에 천 원짜리도 몇 장 넣고 목욕탕 마당으로 나갔어. 평소 같았으면 내 또래 고등학생들이 수없이 지나가는 마당을 고개 숙인 내가 담배꽁초를 쓸고 있을 때야. 하지만 오늘은 그걸 안 해도 되는 거야. 더구나 그녀와 데이트를 하잖아. 남, 녀 고등학생들이 아무리 많이 지나가도 이상하게 예전처럼 시선이 피해지지도, 고개가 숙여지지도 않았어. 난 당당하게 서서 그녀를 기다렸어.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게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드디어, 그녀가 나왔어. 엷게 혹은 짙게 드리운 산안개 뒤에 숨어 몰래 핀 물매화가 그런 모습일까. 수풀 사이에 있는 줄도 몰랐다가 주홍빛 꽃순을 내미는 원추리가 그럴까. 그날따라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어. 형은 저런 그녀를 두고 따먹는다는 표현을 쓰다니. 누가 때밀이 새끼 아니랄까 봐. 난 속으로 마음껏 형을 비웃어 주었어. 막상 그녀를 만났지만 나는 손을 어디다 둬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덥수룩한 머리를 넘기고 또 넘겼어. 보다 못한 그녀가 먼저 중랑천 뚝방을 향해 걸었어. 일단 지긋지긋한 지하다방을 벗어나고 싶었을까. 그녀를 가두는 컴컴한 그곳을.



keyword
이전 02화목욕탕 뽀이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