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뽀이가 되다

어느 목욕탕 뽀이 이야기 -03

by 나는일학년담임

3. 목욕탕 뽀이가 되다.



마이클 잭슨은 산타클로스 같았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선물을 주지는 않는 산타클로스. 어떤 이에게는 그분이 그렇고 그런 딴따라 가수에 불과할지도 몰라. 많은 돈을 벌었지만 삶은 그다지 풍성하지 못했다지? 말년의 불행했던 죽음도. 하지만 나에게 마이클 잭슨은 불우한 현실과 환호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였어.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가 나오면 햇볕 한 줌 없는 지하 단칸방이 환해지는 느낌이었거든. 그에게 이 신세를 어찌 갚을까. 그러고 보면 나의 내면에도 세상을 향한 흥이 조금은 숨어 있었던 것 같아. 그걸 드러내게 해 주신 담임선생님과 노래 못하는 나를 도와 떼창을 해 준 친구들 또한 마이클 잭슨처럼 나를 성장시켰어.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이 모든 것과도 작별을 해야 했어. 고등학교에 못 갔으니까. 예정된 건 아니었어. 어느 날, 갑자기 결정됐고 난 낭패감을 안고 불안에 휘청거렸어. 삶이란 게 원래 그런 건지 아직 모르던 때였어.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원래는 나도 고등학교를 가기로 되어 있었단다. 우리 집 형편을 아신 담임 선생님이 국비로 공부할 수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알아 봐 주셨거든. 합격만 되면 돈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고 기숙사에서 먹여주고 재워도 준다는 거야. 대신 졸업 후에 군인으로 조금 길게 복무해야 한대. 군대 가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걱정은 되었지만 그건 몇 년 뒤의 일이고 일단 고등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어. 내가 잘 만하면 부사관이라는 직업군인이 될 수도 있다니 얼마나 좋아? 면접을 보고 머잖아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은 84년 1월쯤이었을 거야. 엄마가 나가시던 교회에 어떤 형이 실업계 공고생이었는데 공장 실습을 나갔다가 팔을 다쳐 온 걸 보신 거야. 나도 공고에 가면 그 형처럼 팔을 잘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나더러 공고를 가지 말래. 차라리 취직을 하래.


사실 어머닌 처음부터 나의 공고 선택을 탐탁지 않아하셨어. 고등학교 가지 말고 어디 가서든 돈 벌기를 바라셨지. 고등학교 3년이라는 공백은 우리 형편에 너무 길잖아. 하지만 나는 엄마의 바람을 모른 척하고 있었어. 고등학교에 너무 가고 싶었거든. 친구들이 다 고등학교에 간다는데 나만 못 가고 공장에 갈 생각을 하니 서러운 거야. 어머닌 나의 이런 태도를 걱정하셨어. 맨 주먹으로 서울 지하방에 왔으면 독하게 일해서 돈 모아 지상 방으로 이사 갈 생각은 안 하고 다 큰 녀석이 가 봐야 별 볼일 없는 고등학교 타령만 한다는 거야. 니가 지금 다른 애들하고 똑같냐고, 돈 따박따박 벌어 오는 아부지 기신 다른 애들하고 형편을 비교하냐고 혀를 차시는 거야.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이야기도 하신 것 같아. 엄마 말을 들으면 고등학교 포기하고 돈 벌러 나가야 할 것 같은데 그 순간은 잠시 뿐, 떼를 써서라도 고등학교에 가고 싶은 거야. 그렇다고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그러겠다는 각오를 한 것도 아니었어. 그냥 다른 애들이 다 가는 고등학교를 나만 못 가면 창피하지 않을까, 정도? 어리긴 어렸지? 단지 그것 때문에 제발 인문계든 실업계든 고등학교만 보내주면 뭐라도 하겠다고 조른 거야. 이런 내가 얼마나 딱하셨을까.


내가 고집을 부리니까 엄마는 차마 가지 말라는 말은 안 하시고 대신 성남 어딘가에 있다는 야간고등학교를 알아 오셨어. 낮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장에 붙어 있는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교래. 월급도 받고 공부도 하니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어. 근데 난 그것도 내키지 않는 거야. 낮에 일하면 피곤할 텐데 공부가 되겠느냐는 말은 어디까지나 핑계였지만 사실 그런 학교에 가기 싫었어. 집에서 너모 멀어지는 느낌이 들잖아. 내 생각 수준은 고작 거기까지였어. 한편 난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났을까 한탄도 했어. 우리 집이 가난한 게 내 잘못은 아니라는 반항기도 생겼어.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엄마 권유를 모른 척 버텨냈지. 근데 팔 다친 교회 형 이야기까지 하시며 가지 말라시는 엄마를 보니... 더 이상은 못 버티겠는 거야. 결국 엄마한테 공고를 포기하겠다고 하고 지하 방을 나와 동네를 꽤 걸었던 것 같아. 눈물도 조금 났었지 싶네. 죄 없는 동생들에게 화풀이도 했을 거야.


고등학교를 포기하자 어머닌 바로 내 일자리를 수소문하셨어.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집에서 몇 정거장 떨어져 있는 목욕탕 일자리가 나왔어. 중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 나는 옷가지 몇 개와 이불 보따리를 들고 일하러 가야 했어. 당시 최대 규모였던 장안평 중고차 시장 근처에 있는 목욕탕.


요즘은 어떤 방식인지 모르지만 당시 목욕탕은 실질적인 주인 외에 탕에서 때를 미는 사람이 있었어. 우리가 '때밀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일정 금액을 사장에게 보증금으로 내는 대신 때밀이 영업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증금 금액에 따라 탈의실에서 판매하는 물품(음료, 과자나 1회용 목욕용품) 판매권을 갖기도 했어. 나를 고용한 그 때밀이가 그런 경우였어. 그가 손님의 때를 밀면 난 그분의 옷장 번호를 기억했다가 나갈 때 돈을 받는 거지. 목욕용품이나 음료도 팔고 그 외 그가 시키는 모든 일을 하는 대신 월급으로 6만 원을 받았어. 공장에 갔더라면 2~3만 원은 더 받을 수 있었는데 목욕탕으로 보낸 건 거기서 때밀이 기술을 배우라는 엄마의 계산 때문이었어. 1~2년 때밀이 기술을 배워서 독립하면 공장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거든.


목욕탕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됐어. 일어나자마자 탕에 물 틀고 그 물이 차는 동안 밤새 탈의실 바닥에 널어놓았던 수건을 개서 탕 입구 바구니에 차곡차곡 놓아. 탕에 물이 다 차면 꼭지를 잠그고 한증막 전원을 올린 다음 탈의실을 쓸어. 이어서 못 쓰는 수건을 몇 장 빨아서 양손에 짝 편 채 엎드려뻗쳐 자세로 탈의실 바닥을 밀어. 그다음 거울과 음료수 냉장고, 테이블을 닦고 나서 탈의실 라디오를 켜면 6시가 되는데 특별히 궂은날이 아니라면 어김없이 아침잠 없는 단골손님들이 들이닥치거든.


손님이 오면 나는 '어서 오십쇼!'를 외치며 달려 나가 손님이 벗어 놓은 신발을 잽싸게 들고 종종걸음으로 옷장으로 먼저 달려가 신발을 넣어드려야 해. 그 사이에 반드시 '칫솔이나 면도기, 또는 이태리 타올 필요하신지' 물어봐야 하고. 일회용품 판매금은 때밀이의 수입이거든. 나의 고용주인 때밀이 형은 해병대를 갓 제대한 이십 대 중반이었는데 군에 있을 때 사귄 아가씨랑 이미 동거를 하고 있었어. 그러니 돈이 필요했겠지? 그는 10시쯤 출근했어. 아침엔 때 미는 손님이 거의 없으니까. 출근하자마자 목욕용품과 음료수 냉장고를 살폈어. 내가 잘 정리해놓았는지 보는 거야. 또 얼마나 팔았는지도. 그는 실력이 꽤 좋았는지 단골손님이 많았는데 매사가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어. 나더러도 항상 '대강 철저'하게 하라는 말을 했어. 대강...철저라니. 해병대에서 쓰는 말인가? 형은 내게 그날그날 팔아야 하는 물건들을 할당해 줬어. 문제는 내가 지시받은 만큼 팔 지 못하는 거야. 잘해야 절반 남짓 팔았을까? 생각해 봐. 칫솔이나 샴푸, 린스 같은 일회용품은 원래 품질이 조악하잖아. 대부분 집에서 가지고 온 걸 쓰고 목욕탕에 비치된 걸 사는 경우는 준비 없이 갈 때뿐이잖아. 그런데 형은 나더러 무조건 팔라는 거야. 내 생각엔 손님 입장에서 일회용품이 필요가 없어서 안 사는 건데 형 생각은 달랐어. 내가 요령이 없어서 못 판다는 거야. 어떤 날은 내가 답답했는지 형이 시범을 보이기도 했어. 생글생글 웃는 표정과 능청스러운 말투로.


"싸장님, 이번에 애경에서 나온 최고급 샴푸 한 번 써 보실래요? 단 돈 200원입니다. 헤헤."


"이 이태리타올은 몇 년은 써도 끄떡없습니다. 수입 원단이거든요. 헤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었어. 유명 상표를 흉내 낸 가짜 용품이었거든. 형의 언변은 내가 봐도 능숙해 보였지만 사람을 속이는 일이어서 선뜻 따라 하기가 싫어지는 거야. 내 태도에 형은 화가 났어. 내 정신 상태가 문제라 판단했지. 몇 번 시켜도 내가 우물우물하니까 나를 탈의실 구석으로 몰아넣고 눈에 힘을 줬어.


“시양노무 쉬애끼가 까라면 까지, 개겨?”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욕을 듣자 정신이 번쩍 났어. 하지만 이미 늦었어. 차렷, 열중쉬어, 앉아, 일어서, 엎드려뻗쳐,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 이 시얘끼, 똑바로 안 하지? 정신 안 차려? 형이 내 귀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어. 중학교 때 지각한 애들이 마포 걸레 자루로 맞는 걸 봤을 때처럼 무서웠어. 바짝 겁이 난 나는 형이 시키는 대로 큰 소리로 외쳤어. 싸장님, 이번에 애경에서 나온 최고급 샴푸... 단 돈 200원입니다. 헤헤... 얼굴에 바짝 힘을 줘서 웃는 척하면서 따라 하자 형이 돌아섰어. 하지만 막상 그렇게 교육을 받아도 실제로 손님 앞에선 잘 안 되는 거야. 형은 손님이 뜸해서 한가할만하면 나를 불러 세워 <정신교육>을 했어.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 그러면 그 날은 정신교육이 훨씬 더 길었어.


“사내 시얘끼 정신머리가 이렇게 빠져있으니 앞으로 세상 똑바로 살아가겠나, 이거!”


어느 날은 정신교육 중에 갑자기 나더러 엄마 계신 곳을 향해 서래. 그러더니 큰 소리로 '어머니'를 외치래. 그렇게 어머니를 외치면 눈물이 더 나는 거야. 내 생각엔 어머니를 외치는 것과 목욕용품 파는 건 관계가 없을 거 같은데 형이 내 월급 준다고 생각하니 안 할 수가 있나. 나보다 먼저 일하던 아이도 물건을 잘 못 팔아서 잘랐다는데 나도 잘리면 어쩌나. 마음이 급했어. 그래서 그 형이 시키는 대로 손님한테 소리도 빽빽 지르고 굽신거리며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썼어. 목욕 좀 오래 하고 나온 손님은 목이 마르실 테니 냉장고의 음료를 권해드리고, 어린 손님에게는 딸기 우유나 요구르트를 권하며 헤헤거렸어.


시간이 지나면서 내 장사 수완도 좋아졌는지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어. 매출이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정신교육도 없어져갔지. 원래 목욕탕 음료가 비싸잖아. 당시 제일 비싼 음료로 이온음료가 있었어. 200원에 들어오는 거야. 그걸 500원에 팔았어. 냉장고에 있어서 시원하다는 이유만으로 500원을 받기엔 너무 비싸지? 사람들이 그걸 잘 사 먹는 걸 보면 맛있는 것 같은데 난 감히 먹어볼 생각을 못했어.


잠은 탈의실 바닥에서 그냥 자고 밥은 형이 먹여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형이 10시에 출근을 하니까 자연히 아침은 굶어야 했어. 월급은 아직 못 받았고 가져 간 돈이 없으니 뭘 사 먹을 수도 없었어. 점심은 손님이 뜸해지는 오후 2시쯤 먹었어. 형이 석유버너와 코펠 사용법을 알려주었고 내가 탈의실 구석에서 라면을 끓였어. 저녁에도 비슷했어. 반찬은 따로 없었어. 라면도 귀해서 자주 못 먹던 나는 라면으로 먹는 끼니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속이 더부룩하고 느끼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어. 그렇다고 따로 밥을 해 달라고 할 수도 없었어. 그러다 쫓겨나면 어떡해?


저녁 여덟 시쯤 되어 손님이 끊기면 슬슬 문을 닫아. 때밀이 형도 퇴근을 하지. 그러면 난 그날 손님들이 사용한 수건을 모아서 지하 보일러실 세탁기에 넣어 돌려놓고 올라와 탕 청소를 시작해. 손님들이 쓰다 버린 일회용 비누를 모두 모아 손으로 마구 주물러 비눗물을 만들어 탕 벽이며 거울, 바닥에 뿌리고 큰 솔로 박박 닦아. 그다음에 탕에 있던 물을 바가지로 퍼서 뿌리지. 샤워기로 물을 뿌리면 좋을 텐데 사장이 물 아깝다고 못 하게 했어. 목욕탕이 넓어서 그 큰 탕에 있던 물을 거의 다 뿌려야 해서 힘들었어. 탕 청소를 마치고 탈의실을 빗자루로 싹 쓴 다음 지하 보일러실 세탁기에서 수건을 꺼내다 탈의실에 널어. 주말처럼 손님이 많은 날은 탈의실 바닥 전체에 수건을 널어야 했어. 그 일까지 끝나면 아홉 시 반에서 열 시쯤 됐어. 피곤해서 바로 쓰러져 자야 했어. 그래야 내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니까.



4. 뒷골목에서 담배 피우고 침 뱉는 청소년을 만난다면


잠이 모자랐어. 하루 종일 몽롱하고 툭하면 졸음이 밀려왔어. 목욕탕 탈의실이 따뜻해서였을까, 탈의실에는 손님들 손톱 깎는 테이블이 가운데 있잖아. 자꾸 앉게 되는 거야. 근데 또 앉기만 하면 하품이 나네? 때밀이 형이 화를 냈어. 답답한 새끼가 재수 없게 하품이나 하고 있으니 목욕탕 꼬라지가 개판이라고, 손님들이 때를 밀고 싶다가도 정이 딱 떨어진다는 거야. 바로 엎드려뻗쳐에 정신통일을 했어. 하품을 하면 쫓겨날까 봐 하품이 나올 것 같으면 입을 틀어막고 형 없는 방향으로 재빨리 피했어. 목욕탕 일이 새벽 다섯 시에 시작되어 저녁 아홉 시 넘어 끝나다 보니 잠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어. 처음이라 요령을 몰라 시간이 더 걸리는 것도 잠을 못 자는 원인이었을 거야.


학교를 안 가니 머리를 깎을 필요가 없는 데다 목욕탕에 하루 종일 있다 보니 이발소 갈 시간이 없어 장발이 되어갔어. 츄리닝 바람에 쓰레빠. 나는 그야말로 목욕탕 뽀이가 되었어. 그러면서 일에도 조금씩 익숙해져 갔어. 그런데 적응 안 되는 게 있더라. 아침마다 목욕탕 앞마당을 쓰는 일이었어. 마당은 버스정류장과 이어져 있어 사람들이 늘 몰려들었어. 항상 담배꽁초가 있었지. 목욕탕 사장님은 자기 건물 앞이 지저분해지는 걸 싫어했어. 그래서 그가 나오기 전에 청소를 해야 해. 아직 손님들이 오기 전에 재빨리 계단을 내려와 지하 보일러실에 가서 큰 빗자루를 가져다 쓸었어. 담배꽁초는 너무 작아서 한 번에 안 쓸려. 결국 보도블록 사이에 낀 건 손으로 주워내야 해. 그러다 보니 쪼그려 앉아야 했어. 돈 벌기 위해 갔으니 시키는 대로 해야지. 쓸라고 하면 쓸어야 하고 손으로 주워야 하면 주워야지, 생각했어.


그런데 그 시간이 하필이면 등교시간이야. 근처 고등학교가 있어서 학생들이 지나다녀. 그런 아이들을 가득 태운 버스도 지나가고. 모두들 지나치는데 한 사람이 그 길을 쓸고 있으면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잖아. 그럴 때마다 자꾸 움츠리게 되는 거야. 고등학교 못 가고 마당이나 쓸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 가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운 거야. 대부분의 보통 아이들이 누렸던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의 혜택을 가난하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것 같았어.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쓸었어. 그냥 저 아이들은 고등학교 다닐 형편이 되니까 다니는 거고 나는 그렇지 않을 뿐인데 내가 너무 과민한가 싶어 일부러 그런 생각 안 하려고 해도 그게 잘 안 됐어. 선하고 순수한 느낌을 주는 학생이라는 처지와 추리닝에 쓰레빠 신은 목욕탕 뽀이라는 처지로 담배꽁초를 주워야 하는 처지가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은 다를 것 같았어.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내게는 꽤 큰 상처였나 봐. 그런데 그런 나를 구해 준 친구가 있었어. 목욕탕 길 건너 중국집 배달부.


목욕탕에 일하는 동안 식사는 주로 라면이었어. 형은 집에서 아침을 먹고 오니까 아침은 나 혼자 해 먹거나 사 먹어야 했어. 그런데 돈을 안 가져갔으니 사 먹을 수가 있나. 목욕탕 뽀이인 나를 믿고 외상을 줄 식당도 없으니 첫 월급을 받을 때까지는 아침을 굶어야 했어. 점심과 저녁은 항상 라면이야. 형이 돈을 몹시 아꼈거든. 그런데 아무리 형이라도 라면이 질릴 때가 있는지 가끔은 짜장면을 시켜줘서 같이 먹었어. 길 건너 중국집엔 내 또래의 배달부가 있었어. 형은 짜장면 두 개 시키면서 항상 서비스로 군만두를 달라고 했어. 주인이 들어줄 리가 있나? 그러면 배달 온 애를 잡는 거야. 욕도 하고 쥐어 박고. '짱깨 시얘끼가... 단골한테 군만두도 안 줘? 일루와 시얘꺄. 앉아, 일어서, 엎드려뻗쳐...' 그 애도 나처럼 훌쩍거렸지. 이상하게 동질감이 느껴지더라. 어느 날, 짜장면을 시켜 먹고 형이 퇴근을 한 뒤였어. 배달 온 아이에게 그릇을 내주면서 말했지. 지금 아무도 없으니까 목욕하고 가라고. 솔깃했는지 일단 갔다가 중국집 끝나면 다시 온다는 거야. 9시 넘어서 그 친구가 목욕하겠다고 왔는데 이런, 몸이 아주 새까만 거야. 냄새도 코를 찔러. 중국집에서 하루 종일 자전거 배달하고 땀에 젖은 채 홀에 붙어 있는 구석방에서 자니 목욕을 해 봤겠어? 아주 때가 드글드글 징그럽더라고. 때밀이 형 하는 걸 봐서 요령이 있으니 그 아이 때를 밀어줬지. 그 녀석 아파 죽겠다고 아주 난리야. 깔깔 웃으면서 인정사정 안 보고 박박 밀었어. 때가 한 바가지는 나오도록 하얗게 만들어 놨지. 목욕을 하고 나온 녀석을 보니 키도 크고 훤칠한 게 허여멀거니 잘 생겼어. 마구 자란 머리도 나름 야성미가 있고. 녀석이 중국집 배달부가 아니라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폼 나겠더라고. 그렇게 동갑 친구를 사귀게 되었어.


목욕시켜준 게 고마웠는지 걔가 나를 데리고 목욕탕 앞 포장마차에 갔어. 태연하게 소주를 시키더니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일회용 비닐 잔에 따라 쭉 들이키더라. 캬, 소리를 내면서 술맛 존나게 좋다, 그래. 열일곱 살짜리가 술을 마셔도 되나? 내가 놀란 눈으로 보니 못 본 척하면서 자기 잔을 내 앞에 놓고 가득 따라줬어. 그러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어. 장발에 큰 덩치로 보면 성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미성년자잖아. 그 대담함에 압도당해 뭔지 모를 겁이 났어. 거부하면 때리지 않을까. 어울리면 안 될 것 같은 친구 같은 불길함도 일었어. 중학교 다닐 때에도 이런 아이들이 있었거든.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고 소풍 갈 때 술을 숨겨오는 아이들. 공부를 잘 못하고 규칙도 어기고 대부분의 말썽에 개입 돼 있어서 선생님들에게 맞거나 정학을 당하던 아이들 말야. 하지만 여기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고, 앞으로 더는 생길 것 같지 않았거든. 목욕탕 뽀이는 목욕탕에서도 최하층 계급이라서 나를 부려먹는 사람들은 많아도 친구해 줄 사람은 없었어. 어떻게든 그에게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릿하면서도 역한 알코올 냄새가 콧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소주를 그냥 순순히 마셨어. 사레들린 듯 기침이 컥 하고 나왔어. 하지만 바로 뒤 뜨거운 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고 저 아래 배꼽 부근부터 불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 때는 내 몸도 같이 붕 떠오르는 게 그다지 나쁘지 않았어.


그 아이는 시골에서 중학교 다녔는데 새엄마가 버스비를 안 주더래. 새벽마다 학교까지 걸어 다니기도 멀고 공부도 귀찮아서 그냥 가출했대. 그땐 시골에서 학교 때려치우고 가출해서 서울 온 애들이 꽤 있었잖아. 그 애들 중엔 이상한 길로 간 경우도 있었을 거야. 그 친구는 그나마 다행이었나. 태어나서 술, 담배를 녀석에게 처음 배웠어. 일단 시작하고 나자 그다음부터는 거부감이 안 들었어. 포장마차에 앉자마자 마시기 바쁜 거야. 소주에 안주로 참새구이나 곤계란을 먹으면서 열일곱 먹은 두 남자애가 할 수 있는 대화가 뭐 있겠니. 그저 다리 꼬고 삐딱하게 앉아 담배 꼬나물고 바닥에 침을 찍찍 뱉는 거지. 여자애들이 지나가면 흘겨보고 낄낄 거리기도 했어. 그 순간엔 열일곱이 아니라 목욕탕 뽀이와 중국집 배달부였어. 서로의 일만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포장마차로 가는 거야. 그리고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않아 담배를 피우는 거야. 주변 어른들이 우릴 째려보든 말든 개의치 않았어. 그냥 막 술을 먹고 씨발 씨발 욕이 들어가는 문장을 남발하면서. 누가 언짢게 바라보는 것 같으면 우린 더 세게 노려보곤 했어. 어쩌라고. 한 판 붙자는 거냐, 씨팔 한 판 붙자, 이런 마음도 있었어. 그러면 이상하게 내 마음이 후련해지는 거야. 고등학교 못 간 것도 덜 창피하게 느껴져. 아이고, 근데 하는 짓은 딱 양아치지 뭐야.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꼬나물다니. 시발시발 이라는 상스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다니.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꿈도 못 꾸던 내 모습이었어.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땐 그게 폼 잡는 거라고 생각했어. 어쩌면... 그렇게라도 안 하면 걔나 나나 스스로 너무 비참하다 생각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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