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들기의 마무리 단계가 왔다.
저자의 말을 써 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독자님들이 책을 읽으면서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들을 간단히 쓰면 된다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을 만들게 된 건 목적이 있어서였으니 그럼 그걸 쓰면 될 텐데 왜 머뭇거려질까.
맨 처음 떠오르는 건 면구스러움이다. 민망함, 창피한 마음도 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과연 잘 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문장 쓰는 연습을 좀 해둘 걸, 후회도 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후회가 무슨 소용일까. 이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책을 묶지 말았어야지. 이렇게 지질한 생각으로 궁상을 떨고 있으면 그동안 나만 믿고 추진해 온 출판사는 어쩌라는 거냐고 나 스스로를 야단쳐 보았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나마 쓴다.
내가 글을 쓴 건 단순한 이유였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부모님 보시라고 썼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성격, 행동 유형을 갖고 살아가는데 이건 날 때부터 지닌 기질과 양육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거,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초등학교 시기까지는 많은 영향을 받고 변화도 많아 중요하다는 거, 그 시기가 지난 다음엔 거의 변하지 않는 상태로 평생을 살아간다고 하니 아이가 어릴 때 양육에 신경을 쓰십사 알리고 싶어서다.
31년 동안 아이들을 담임하면서 아이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수없이 접했다. 한 번은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친구와 놀다가 불리하거나 지면 떼를 쓰고 울어서 나와 부모님을 힘들게 하던 아이가 한 해를 보내면서 우는 일이 줄어드는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걸 보았다. 같은 승부욕이지만 친구를 이기는데 쓰지 않고 자신을 극복하는데 쓰는 아이로 변한 것이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욕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친구와 경쟁하고 불화하는 대신 공부를 선택하게 되는 과정에는 담임인 나와 부모님의 안내가 있었다. 아이가 친구에게 이기려고만 할 때 목표를 전환시켜주는 게 필요한데 어른의 개입이 들어가면 매끄러워진다. 교사인 나는 이런 성장의 과정에 수없이 개입하지만, 정작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님들은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분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내가 관찰한 순간을 글로 기록해서 학부모님들께 알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같은 아이를 기르는 학부모님 처지에서는 아이가 성장하는 순간을 알아채기 힘들다. 매일 똑같은 것처럼 보인다고, 동생과 매일 싸우고 엄마 말도 매일 안 듣는데 무슨 성장이 이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아이가 교실에서 어떻게 조금씩 성장하는지, 어떻게 어제보다 더 나은 아이로 변하는지 보여드리기 위해 신경 썼다. 집에선 똑같은 아이 같은데 학교에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고 늘 부모님께 의존하던 아이가 언젠부턴가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글을 읽은 학부모님들은 때로 대견해하셨고, 안도하셨다. 그렇게 쌓인 글들이 책으로 묶였다.
그렇다고 이렇게만 쓰면 너무 딱딱할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내 아이가 어릴 때 며칠 만에 변화한 이야기를 써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았던 그 순간을. 자기가 좋아하는 슬리퍼를 신고 등산을 하겠다고 고집하던 아이가 며칠 만에 스스로 생각을 바꾼 일.
쓴 다음에 고치기. 고치고 또 고쳐도 문장이 어색하다. 읽으면서 빨간색 볼펜으로 표시를 한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읽을 때마다 고칠 게 늘어간다. 어떤 사람은 한 해에도 여러 권의 책을 만든다지. 대단하다,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