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등교시간. 한 아이가 실내화를 안 신고 손에 들고 들어온다. 내가 실내화를 왜 안 신느냐고 묻자 실내화를 내 쪽으로 흔들어 보이며 소리친다.
"실내화가 너무 짝으니깐 그렇죠! 이것 좀 보라구요!"
"아이고, 실내화가 작아?"
"네, 그래서 아빠한테 사 달라 그랬는데 맨날 까먹구. 아, 짜증 나! (바닥에 내팽개치며) 에이, 씨! 실내화 안 신을래!"
"(다른 아이가 나무라며) 야, 너 왜 선생님한테 짜증 내. 선생님이 뭐 잘못했다구. 오늘 이따 집에 가서 니네 아빠한테 '오늘은 꼬옥 사주세요' 하고 이쁘게 말하면 되잖아."
"야, 내가 벌써 몇 번이나 말했거든! 근데 안 사주니깐 그렇지!"
"아이고, 그럼 선생님이 교무실에 가서 실내화 얻어다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싫어요. 그건 손님들 신는 거잖아요. 커서 발이 막 빠져요."
"그럼 네가 아침에 신고 온 운동화 줘. 선생님이 화장실 가서 바닥 닦아다 줄 테니 교실에서 신어."
"안 돼요. 운동화는 더 작거든요."
"아이고, 그래?"
"(밖에 신발장에 가서 뒤축이 꺾인 운동화를 들고 와 보여주며) 봐요. 이것도 작아서 꺾어 신는다구요."
"아이고, 그래도 뭘 신긴 신어야..."
"됐어요. 그냥 맨발로 다니죠, 뭐."
"그런가? 그래도 맨발로 다니면 양말에 먼지가 묻을까 봐."
"묻어도 괜찮아요."
"(옆 아이가) 야, 뭐가 괜찮냐? 먼지 묻으면 빨기가 얼마나 힘든데."
"우리 아빠가 빨겠지. 너나 신경 쓰지 마라."
실내화 이야기로 잠시 들끓던 대화가 잠잠해지고 아이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한다. 아이는 실내화를 책상 밑에 벗어놓은 채 양반다리를 하고 여전히 분이 안 풀렸는지 식식거리며 그림을 그린다.
그네를 타고 있는 두 아이 앞 쪽에 한 아이가 서 있다. 주인공 아이는 그네를 타는 대신 나뭇가지를 들고 친구들이 그네를 탈 때마다 횟수를 세어주고 있다. 그런데 아이의 표정이 슬프다. 다른 손도 유난히 쳐져 있는 듯하다. 그네를 못 탄 속상한 마음을 그리나 싶어 슬쩍 물어보았다.
"와, 그네 타는 그림이네? 언제 탄 거야?"
아이는 내 말에 대답할 마음이 없는지 조금 언짢은 표정으로 자기 얼굴에 눈물을 그려 넣는다. 그러고는 잠깐 동안 들여다보더니 연이어 눈물을 여기저기에 찍찍 그려 넣는다. 곧 그림 전체에 눈물이 흩뿌려진 그림이 된다.
"아이고, 그네 때문에 속상했나 보네. 우리 공부 빨리하고 나가서 타자."
그랬더니 아이가 내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저 그네 못 타요. 그네 싫어요! 아빠도 싫어! 아, 짜증 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아이의 눈물에 주변 아이들도 그림일기를 멈추고 쳐다본다. 아이는 잠시 주변의 반응에 멈칫하는 것 같더니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지 그림 속 발을 가리키며 내지른다.
"이 발 좀 보라구요. 나 그네 못 타요. 발 아파서."
그제야 그림 속 주인공의 발을 보니 그네를 타는 두 친구와 달리 다리와 발이 두껍게 표현된 게 보인다. 내가 그제야 그림을 이해하는 것 같아 보였는지 아이가 조금 진정된 목소리로 말한다.
"제가 어제도 아빠한테 새 운동화랑 실내화 사야 된다 그랬단 그랬단 말이에요. 근데 아빠가 어제 너무 늦게 끝나서 오늘까지만 신으라 그랬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신은 유치원 때 산 거란 말이에요. 그니깐 짝아져서 (엄지발가락을 가리키며) 여기가 튀어 나올라 그러잖아요. 그네 타면 여기가(엄지발가락) 쪼끔씩 아푸단 말이에요. 땅에 서서 발꿈치를 땅에 탁탁 치면 좀 안 아프긴 하지만요. 그래서 그네 못 탔잖아요. (울기 시작한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지자 아까 나무라던 아이가 손을 등에 올리며 언니처럼 말을 건넨다.
"헐. 니네 아빠 에바다(심하다). 으이구. 야, 그렇다고 아빠한테 짜증 내면 되냐."
아이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언니에게 투정하듯 말한다.
"니가 발 안 아팠으니깐 그렇지. 아프면 더 울었을 거면서."
"야, 그러다 니네 아빠가 차 안 태워주면 학교도 못 올라 그러냐?"
"야, 니가 뭔 상관인데. 상관 쓰지 마. 나는 우리 엄마 차 타고 오면 되니깐.
이러다 아빠로 시작된 불똥이 친구에게 튈까 봐 내가 끼어들었다.
"선생님도 어릴 때 고무신이 짝아져서 발 엄청 아팠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 엄마가 새 신 발 안 사 줘서 여기(엄지발가락을 가리키며)가 뽕 튀어나왔어."
아이는 겨우 고무신 가지고 뭘 그러냐는 듯 덤덤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래도 선생님네 엄마는 새 신 빨리 사 줬죠?"
"아니, 우리 엄마는 밭에서 일하느라 바빠서 구멍 난 것도 몰랐거든. 나중에 신발 바닥에 구멍도 났잖아. 그때 내가 엄마한테 말했더니 사 줬어."
"(아이들이 일제히) 헐, 그럼 비올 때 물이 막 들어가잖아요."
"아이고, 물만 들어가면 다행이게? 흙이랑 모래도 발바닥에 막 묻었어. 닭똥도 막 묻고 소똥도 막 묻고."
아이들은 나를 잠시 불쌍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제각기 자기 실내화를 뒤집어 보며 발바닥을 확인하고 이상 없음을 확인한 뒤 안도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1학년 입학한 지 보름쯤 지난 시기여서일까. 아이들 대부분의 실내화는 아직 눈처럼 하얗다. 내 말이 끝나자 아까 그 아이를 위로하던 아이가 이번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서, 선생님도 울었어요?"
"그럼. 울었지."
"(다시 내 어깨를 토닥여주며) 울지 마세요. 그냥 추억이라고 생각하세요. 다 지나간 일이잖아요."
교실에서 우는 아이가 나올 때 서둘러 달래지 않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공론화시키는 건 친구가 우는 이유에 대해 모든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린 1학년 아이라도 사람이 우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테고,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친구의 눈물에 공감할 수 있다면, 달래는 아이도 나오게 마련이다. 보통 처음엔 담임 눈치 보느라 망설이다가 한두 달쯤 지나서 나오는데 다행히 일찍 나왔다.
아이가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자 위로하던 아이가 내게 와 속삭인다.
"선생님, 쟤 신발 빨리 사 주라고 쟤네 아빠한테 전화해야겠어요."
"아, 그럴까? (우는 아이를 향해) 선생님이 아빠한테 전화해서 너 신발 작아졌으니깐 새 신발 사 주세요, 그렇게 말씀드릴까?"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발이 아픈 게 아빠 때문이니깐요."
그러자 위로하던 아이가 언니처럼 훈수를 둔다.
"으이구, 그러다가 니네 아빠가 화나서 신 안 사주면 어떡할라구."
"오늘은 꼭 사 온다 그랬어. 우리 아빤 약속을 꼭 지켜."
난 잠시 딴생각하는 척하다가 또 묻는다.
"니네 아빠한테 니가 오늘 신 때문에 그네 못 타서 짜증 났다는 말도 할까, 하지 말까?"
"(망설임 없이 결연한 표정으로) 하세요. 아빠 때문에 발이 아팠잖아요."
* 그림일기장은 그림 그리는 넓은 칸 아래에 깍두기 모양의 글을를 쓰는 칸이 붙어있다. 1학년이라 아직 글자를 잘 모르지만 아이들은 어떻게든 그림이나 글자로 자기 마음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쓰고자 하는 글자를 미처 모를 땐 내게 와서 불러주는데, 그럴 때마다 난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 펜으로 깍두기 위에 조그맣게 써 준다. 그러면 아이는 내 글자를 따라 자기 일기장을 채운다.
어떤 아이는 글씨를 쓰기 싫어서 아무 내용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난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모른 척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1학년 아이들은 자기 마음속 감정을 담아두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그런 점에서 그림일기는 아이들에게 감정을 해소하고 분출하는 수단이다. 일기장에 뭔가를 퍼붓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걸 아이는 안다. 지금은 글자를 몰라 나의 손을 빌지만, 곧 글씨를 알게 되면 자기 글로 마음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오늘의 그림일기를 다시 본다면, 글자를 모르는 동안에도 건강하게 성장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대견해하면 좋겠다.
* 다른 아이들의 그림일기를 봐주고 다시 그 아이 차례가 되었을 때, 난 이미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오늘 아빠가 짝은 신발 신으라 그래서 발이 아파 그네를 못 탔어요. 그래서 아빠한테 짜증이 났어요. 이렇게 써주면 되지?"
그리고 아이가 늘 고르는 파란색 펜으로 막 쓰려고 하는데 아이가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렇게 말한다.
"그냥... 그네를 타다가 발이 아펐다고만 써 주세요. 내일부터 새 신 신을 거니깐요."
"아, 그런가?"
"네. 아빠가 약속 꼭 지킨다 그랬어요."
아! 과연 누가 이 아이보다 빨리스스로의 힘으로 화해 할 수 있나. 수도승도 쉽게 하지 다루지 못할 분노의 소용돌이를 아이는 순식간에 잠재웠다. 좋아하던 그네를 타지 못한 게 아빠 때문인데도 아이는 간단히 긍정의 힘으로 치환해 해결해버렸다. 이 기회에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모두 끄집어 내 퍼부어도 될 텐데, 방금 전만 해도 그럴 분위기였는데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었을까, 아이가 덤덤해졌다. 노자도, 틱낫한도 아닌 아이의 해결력이다. 난 또 물었다.
"그럼 아빠한테 짜증 났던 건 아빠에게 할까, 하지 말까?"
"해주세요. 그것 때문에 제가 울었다는 거랑, 그러니깐 오늘은 새 신을 꼭 사주라는 말도 해주세요."
자신의 속상함은 무게를 가볍게 해 마음 안 다치게 보호하면서도 아빠에게 전하고 싶은 감정은 살려내는 아이다. 아빠에 대한 마음을 일기장에 기록하는 걸로 감정을 다스리는 것도 알고 선생님을 통해 우회적으로 마음을 전달할 줄도 안다. 보통 아이들이 아빠 탓으로 잘못을 돌림으로써 상황을 외면하거나, 차라리 자기 잘못이라고 자학을 하는데 비하면 건강한 아이다. 건강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이제 겨우 1학년 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평소 학교에서 아빠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아이의 말에 의하면, 아빠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아이와 가까이 지내나 보다. 급식에 생선 메뉴가 나오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집에서 아빠가 가시 발라 준 이야기를 하고 고학년 오빠들이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빠도 조기 축구에서 엄청 잘하는데, 그런다. 자기도 모르게 불쑥불쑥 아빠 이야기를 한다. 그때 아이의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아이가 돌아간 뒤 아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가 참 대견하더라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안 그래도 아이 신발을 사려고 애썼는데 마침 회사에서 너무 바빠 며칠 넘겼다고,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난처해했다. 그 선한 목소리에 아이의 천진한 표정이 겹쳐 들리는 듯했다.
아이가 자기감정을 읽고 자연스럽게 분출하고 아빠는 기꺼이 들어주는 사이가 되는 건 단지 시간만 주어진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아이와 교감하고 또 교감해야 가능하다. 아빠가 아이의 마음에 켜켜이 쌓아놓은 신뢰의 시간 덕분에 아이에게 선뜻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 지루하고 힘든 과정을 알기 때문에, 이런 아빠를 만나면 다시 보인다.
이 나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빠를 빼앗긴 채 성장하고 있다. 권위적인 아빠가 되지 말고 친구 같은 아빠가 되라고, 그러려면 많이 놀아주어야 한다고 캠페인을 하면서 아빠를 일찍 가정으로 보내주지 않는 사회 때문이다. 돈 버느라 이미 진이 다 빠진 아빠들이 무슨 기운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얻나. 아빠를 아이들에게 일찍 돌려보내는 나라를 만드는 정치가 좋은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