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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Mar 21. 2016

4개의 책걸상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도시의 큰 학교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을 담임할 때, 3월엔 항상 줄 서는 연습을 시키곤 했다.

체육관 갈 때, 급식실 갈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집에 갈 때. 언제든 줄을 세웠다.

줄에서 벗어나는 아이를 데려다 다시 세우면 다른 쪽 아이가 또 빠져나가곤 했다.

아이들의 대열을 유지하기 위해 이동 중에도 계속 잔소리를 했다.

내가 웃는 표정을 지으면 아이들이 떠들까 봐 표정을 지운 채 조금은 엄격한 얼굴을 하고 아이들을 이끌곤 했다.


언젠가 내 아이들을 봐주시던 어머니가 아이들 운동회를 보러 학교에 가시던 날.

교사들이 챙이 긴 모자를 눌러쓴 채 건조한 표정으로 애들 앞에 서서 화난 사람처럼 서 있는 모습이 이상하셨나 보다.

그래도 부모들도 와 있는데 너는 니네 반 애들 앞에서 좀 웃고 그러라는 말씀을 지금도 가끔 하신다.


줄을 서야 하는 건, 도시에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숙명이다.

우리 아이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공부하고 있으니 염려 말라는 안내장의 이면에는

긴 줄 늘어선 아이들이 있다.

내가 처음 교사가 되던 때, 교실 하나에는 60여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나라가 부강해지면서 학급당 학생수도 당시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아이들까지 줄고 있다고 하니

드디어 우리 아이들도 더 이상 줄을 설 필요가 없는 학교에 다녀보게 되려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줄 서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한다. 그게 안 되면 최대한 앞 쪽에 서려고 한다.

이로 인한 분쟁이 많다 보니 보통은 번호순으로 줄을 세운다.

그렇다 보니 번호가 빠른 아이가 늘 이익을 보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돌아가면서 앞에 서게 하면, 또 그 순서를 기억하는 일이 문제다.

그래서 또 그걸로 분쟁이 생긴다.


줄을 세우고 나면 그다음엔 대화를 참는 걸 가르친다.

조용히 이동해야 다른 교실의 수업에 방해가 안 될 테니.

그래서 이동하는 시간보다 줄을 서는 시간이 더 걸린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면 아이들은 자동으로 줄을 잘 서게 된다.

영문도 모르고. 그저 툭하면 줄을 서야 한다는 걸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내가 고학년을 담임하던 때, 한 아이가 그 모습을 수용소에 적응한 포로에 비유해서 일기에 썼다.

그토록 기가 막힌 문장을 보고도 내가 뭐라 답을 써 줘야 할지 몰라 당황하던 생각이 난다.

그 뒤, 아이들이 길게 늘어 선 줄을 보면 그 아이 생각이 나곤 한다.


올해, 나는 다시 1학년 담임이 되어 3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도시로 집중되는 사람살이의 푸석한 흔적 때문일까. 요즘 농촌엔 아이들이 귀하다.

3명의 아이들과 나. 교실엔 이렇게 4명이 있다. 교실엔 4개의 책걸상이 있다.

내 책상을 가운데 두고 앞에 한 명, 그 양옆으로 한 명 씩 앉아 있다.

굳이 일부러 고개를 돌려 볼 필요도 없이 앉아만 있어도 아이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복도로 내달리는 아이를 잡으러 쫓아갈 필요도 없고

조용히 하고 선생님을 보라고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아이들은 화장실을 가거나 급식실에 갈 때에도 줄을 서지 않는다. 그냥 간다.

학교의 일상에서 아이들은 줄 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간다.

어느 조용한 카페에 온 것처럼, 조용조용 작은 목소리로도 공부가 된다. 신기하게도.

세 명. 이 아이들만 가르치고도 월급 받아먹는구나 생각하니, 아이들이 다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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