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미국에서 출산을 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요즘 일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데, 무엇 하나라도 안정된 상황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다. 미국 생활은 여전히 낯설고 서툴고 또 어렵지만 그래도 남편이 의지가 되고 몇 달 동안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 늘어져 있는 내 물건들도 그냥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보인다. 부랴부랴 준비해서 한국에 가고, 아직은 자가격리가 있으니 격리를 하고 나서, 다시 출산 준비를 위해 친정으로 가고 새로운 선생님들을 만나 적응하고… 하는 그 과정에서 애를 많이 써야 할 것 같았다. 어떤 선택을 해도 장단점은 있는 지라, 그래서 여기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다행인 건 양쪽 의료진에 대한 신뢰는 갖고 있다는 것 같다.
오늘은 지난번 병원 방문 이후 2주 만에 다시 정기 검진을 받는 날이다. 의사는 내가 두드러기가 한창 심했을 때 만났던 분인데, 이곳 카이저 퍼머넌트는 산과 시스템이 한국과는 좀 다르다. 대부분 한국에서는 한 의사를 지정해서 진료를 받고, 야간이나 응급상황 아닌 낮시간 동안 출산을 하게 되면 대부분 담당의가 함께 하게 되는데 이곳은 7명의 산과 의사가 팀을 이뤄 환자 한 명을 두루 진찰한다. 나도 지금까지 4명의 의사들을 만났는데 이 팀은 내 차트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상태, 검사 결과, 질문했던 내용들을 알고 있다. 질문을 이메일로 한 의사에게 보내도, 그 의사가 나에 대한 처방 혹은 의견을 주치의처럼 보내준다. 실제 출산을 할 때도 이 팀에서 그날 출산을 담당하는 의사가 배정된다. 이 부분을 질문하자 오늘 만난 의사는 컴퓨터 화면의 내 차트를 보여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확인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병원에 갈 때마다 질문을 많이 적어 간다. 이곳에서의 출산을 결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질문은 한국과 비교해서 이곳은 어떠냐 하는 것이다. 오늘은 위에 말한 담당의 지정뿐만 아니라, T-dap 주사(백일해 주사, 가족들도 접종을 해야 하는지), 유도분만(나는 꼭 자연분만만 고집하지 않고, 안전을 위해 제왕절개에도 열려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 회음부 절개(한국은 열상을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 한다는 것을 알리고) 마지막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백신들을 맞게 되는지 까지 물어보았다. 뭐, 언제나 느끼지만 질문이 이러하면 대답이 아주 특별하지는 않다. 일단 가족 접종은 확인을 하는 것이 좋고, 제왕절개도 고려할 수 있지만 내가 아직 건강하기 위해서 수술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유도분만을 하면서 필요에 따라 벌룬 시술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그거 되게 아프다고 어디서 읽었다고 하니 눈을 크게 뜨며 ‘야, 아기가 지금 내려오고 있는데 당연히 모든 게 아프지! 그 고통은 정상인 거야!’라고 강조를 했다(그렇죠…. 그래도 말하고 싶었어요….). 회음부 절개도 상황에 따라 시술을 한다고 해서, 동양 산모들의 경우 골반이 작다는 점을 다시 이야기했다. 그것도 일반적인 사실인데, 아직 내가 출산 경험이 없으니 그건 상황이 되어 봐야 알 수 있는 거라고 한다. 혹시 한국 산모들 출산 경험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오늘 진료의는 자신은 없지만 자기 팀의 일본 의사 선생님을 동양인들이 많이 선호한다고 하기도 했다. 마지막 아기 백신은… 그건 소아과 의사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이야기 도중 속으로 피식, 하는 게 있었다. 담당의가 지정되는 부분에 대해 대답을 하면서 자기네는 7명의 산과 의사가 협진을 하고 팀으로 함께 움직인다, 한 명이 한 환자에 전념하기에 우리는 너무 바쁘다 그러는데… 이 분들이 한국 의사들이 일하는 거 보면 이런 말이 나올까 싶어서 마음으로 웃었다. 바쁜 건 맞겠으나 앞 뒤로 예약환자 꽉 차있고, 상대적으로 낮은 수가에 진료 기계처럼 일하는 한국 의사들이 떠올랐다. 진료 환경이 다르니 어쩔 수 없지…
아마 우리가 갈 때마다 불안해서 하는 질문들을 한 아름 가지고 가서 그들 사이에서는 걔들도 참 유난이다 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당장은 좀 바보 같고 이상하게 느껴져도, 궁금한 게 있는데 더 물어보지 못하고 어물쩡 나왔을 때의 좌절감이 더 큰 걸 알기에 우리는 오늘도 용감하게 물어봤다. 그렇게 30여분의 진료를 마쳤고, 나는 T-dap을 맞고 병원을 나왔다.
진료를 보고 나서 남편이 이런 날에는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고 하면서 크레이프 집에 데리고 가줬다. 오… 진짜 맛있었다. 오랜만에 뭔가 좀 외식해서 좋은 그런 기분. 미국에서 애 낳는다고 하니 누군가에게는 졸지에 원정출산 온 여인이 되어있기도 하다. 내 상황은 그렇지는 않지만, 뭐… 그렇게 생각한들 어떠랴? 다들 자기가 보고 싶은데로 세상을 보는걸 내가 무슨 수로 막으리. 여하튼 어떤 경험이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펼쳐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가는 수밖에. 뭔가 한쪽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울감의 그림자가 계속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선택한 길을 간다.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