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가 아닌 것들의 이야기' 일곱 번째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남들이 다 좋아한다고 해서 나도 좋아하면 뭔가 나만의 개성이 없어지는 것 같아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것과는 먼 지점에 떨어져 있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청개구리 같은 심리가 강했달까. 남들과 다른 나의 모습으로부터 나만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또 유형은 별개의 문제라서 그 당시 유행하는 것들은 다 따라 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도 있었다.) 옷부터 시작해서 액세서리 등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런 독특함을 추구했지만, 그중에서도 남들과 다른 취향을 유독 고집을 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사실 취향이라는 것을 굳이 선택해서 골라 좋아한다는 개념 자체가 조금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지금 내 기준에서는 이상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취향이라는 것이 "내가 지금부터 이것을 좋아하기 시작해야지!"라고 선택해서 바로 좋아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남들과 다른 평범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고 싶었고 그러한 일면의 하나로 호러, 공포 영화를 골라서 좋아하게 되었다.
왜 하필 수많은 장르 중에서도 호러였을까? 지금 와서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유였지만 '여자들 중에서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여자들이 보통 선호하지 않는 호러, 공포 영화를 좋아한다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내가 남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독특한 취향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받고 싶어 했었다. 처음에는 내 무의식 속에서 이러한 생각을 갖고 호러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막상 호러 영화를 보기 시작하다 보니 생각보다 내 취향에 너무나 잘 맞았기에 이제는 내 인생에서 호러 영화 장르는 없어서는 안 될 장르가 되었다. 내가 인생 영화로 꼽는 영화들은 대부분 호러 영화이고, 어떤 영화를 보기 전 호러 영화라면 거의 가리지 않고 무조건 보는 장르가 되었을까. 사실 '여성들이 호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편견이 가득한 발언인데 그 당시에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인지도 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에는 그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취향이라는 것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은 참으로 셀 수 없이 다양해서 모든 사람의 취향이 동일하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다른 이들과 남다른 취향으로 나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수많은 이들이 듣는 음악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인디 음악을 열심히 찾아내며 그중에서 내 취향에 맞는 것들을 골라내고자 애썼고,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입는 똑같은 디자인은 입고 싶지 않아서 유행하는 옷 중에서도 디자인이 독특하고 화려한 옷들만 골라 입고는 했었다. 또한 내가 호러 영화만큼이나 신경 써서(?) 독특함을 추구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화려한 액세서리였다. 액세서리들 중에서도 반지, 목걸이는 절대 하지 않았지만 유독 귀걸이에만은 엄청 집착을 해서 무난한 기본적인 디자인의 귀걸이는 거의 산적이 없고, 모두 크고 화려한 귀걸이를 구매해서 하고 다니며 남들의 시선과 반응을 즐기고 다녔었다.
사실 20대까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가는 시기이다 보니 이러한 것들이 내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었지만, 남들과 다른 특별함에 빠져있었던 나는 가끔 스스로 독특함을 선택하고도 후회하는 과정을 밟고는 했었다. 독특함에 빠져 정작 내 취향과는 다른 옷을 선택한다던지 독특함에 함몰되어 남들이 잘 모르는 것을 찾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다던지 등등등.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독특한 취향을 찾아 헤매다가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고는 했었다. 이러한 취향들 이면에는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나라는 존재 위에 다른 것을 덮어 가리려고 하는 마음들이 컸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은 스스로 자신이 없고 초라해 보여 그 위로 독특함이라는 취향을 덮어 씌우고 그것을 '나'라고 우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것이 '나'라는 존재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남들보다 내가 좋은 취향 또는 특별한 취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나'는 단순히 취향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것들로 이뤄진 존재이며 내가 어떤 취향을 갖고 있던지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나와 그러한 내가 갖고 있는 취향이 소중한 것처럼 타인과 타인의 취향도 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이유에서 소중하다. 모든 것들이 비윤리적이지 않은 범위에서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 모든 이들의 취향은 각자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 당신의 취향에 대해 딴지를 걸 때, 혹은 당신이 타인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어질 때 이 말을 잊지 마시길.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