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희운 Oct 21. 2017

세상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욕망’에 대하여

<유리정원> 속 '결핍'을 가진 인물들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고 작성되었습니다.

※ 본 리뷰에는 <유리정원>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욕망’하게 될까? ‘욕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단어이다. 욕망이라는 단어의 뜻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는 살면서 우리의 삶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 나에게는 없지만 남에게 있는 것들을 탐하고 그것을 소유하고자 한다. 그것을 가지는 순간 더욱 많은 것을 탐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해질 수 있다는 환상을 안고서.




<유리정원> 속 인물들에게도 당연히 욕망은 존재한다. 한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온전한 다리를 갖지 못해 늘 자신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은 소설가로 어떻게든 성공을 갈구하는 인물이다. 이 인물들은 모두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를 깊게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첫 번째 인물은 자신의 결핍을 감추기 위해 자신이 이때까지 해왔던 연구가 옳다고 믿은 채 집착하면서 매달리고, 두 번째 인물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감추기 위해서 첫 번째 인물의 사생활과 모든 비밀을 캐내는데 집중한다. 단순히 글로만 나열한 이 인물들의 행위에 대해 공감하거나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감정과 행동에 동화되게 된다.



<유리정원> 속 재연은 참으로 기구한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연구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도 같은 연구팀 후배에게 빼앗긴다. 자신이 이룩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빼앗긴 그녀는 스스로를 자신의 숲 속 유리정원 안에 가둔다. 그녀는 스스로를 나무와 같다고 호칭하고, 영화도 계속해서 나무를 그녀에게 대입시켜서 보여주는데, 그것은 다리를 쓰지 못하는 그녀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방어 체제와도 같다. '나무'는 자신이 이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존재라는 그녀의 환상이 투영된 존재이면서 동시에 세상 속에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정당화 할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세상 속에서 그녀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닌 자신의 연구를 사랑했던 교수, 자신이 일궈낸 연구를 가로챈 후배까지. 세상은 오로지 그녀를 갈취하기만 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갈구했던 모든 것들이 좌절된 뒤,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혔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세계 속에서 세상 속에서 외면받았던 연구를 계속해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여전히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유리정원>은 결국 결핍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욕망이 생긴 인물들은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넘어서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나간다. 그것은 남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을 한 단계 확장시키는 것이 아닌, 마치 나무처럼 땅 속으로 깊숙이 뿌리를 박아내리는 것과 같은 내면을 향한 파괴와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재연이 스스로 나무가 되고 싶다고 상상하는 것이나, 그녀의 세계가 깨지고 부서지기 쉬운 ‘유리정원’이라는 점은 특이한 지점이다. 보통 자신의 세계가 안으로 굽어 들어 갈수록 외면은 더욱 두껍고 단단한 벽을 만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가 되기를 희망하는 나무는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받기 쉬운 존재이고, 그녀가 자신을 가둔 유리 정원은 다른 누군가 쉽게 침입하여 훔쳐볼 수 있는 연약한 공간이다. 그녀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원했고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배신했던 정교수를 어떻게든 되살리려고 했던 것이다.



재연의 결핍은 소설가 지훈의 결핍과 연결된다. 세상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그녀는 스스로 나무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자신의 집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작은 알갱이 속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 그녀의 집으로 이사 오면서 그녀가 세상을 향해 남긴 흔적을 발견한 지훈은 그녀의 삶을 캐내기 시작한다.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와 심하게 다툰 뒤 사회 어디에서도 발붙일 공간을 얻지 못한 지훈은 자신에게 결핍된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그녀를 이용한다. 그녀에게 끊임없이 접근하며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했던 지훈. 재연은 지훈이 자신을 훔쳐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그에게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이 숨기고 싶었던 비밀인 정교수의 시체를 보여주며 소설을 통해 세상에게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달라고 이야기한다. 결핍에 휩싸인 인물들은 사람과 관계를 형성할 때, 서로 착취하는 형태로 밖에 관계를 맺지 못한다. 결핍은 또 다른 결핍을 만들어 내고,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것을 되돌리고자 했던 지훈은 그녀를 향해 손길을 내민다. 그녀의 대사처럼 그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녀가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삶을 살아나갈 수 있었던 정원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들켜 파헤쳐져 버렸고, 그녀는 유일한 삶의 터전을 잃고 말았다. 신수원 감독님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어딘가 소외된 인물들이다. <명왕성> 속 성적 만능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들, <마돈나> 속 물건처럼 거래되는 환자들, 그리고 <유리정원>에서 장애인이었기에 주류사회로 편승되지 못하는 재연까지. 감독님의 작품 속에서 소외된 인물들은 사회 속에서 철저하게 내몰리는 것을 경험한다. 특히 <유리정원>에서는 소외된 인물들이 사는 세계와 그 인물까지 처절하게 파괴된다. 재연이 발을 붙이고 살았던 그녀의 유리정원은 주류 사회가 주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아주 작은 공간이다. 지훈의 소설 속 자극적인 마지막 한 구절로 인해 사회는 그 공간을 주목하게 되었고, 결국 그 공간은 파괴되고 만다. 재연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발붙일 공간 조차 없어졌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절망한다.





영화는 어떻게 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속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상처 입힐 줄 밖에 모르며, 자본이나 사회적 지위로 형성된 권력관계에 따라 상처를 받는 대상과 상처를 주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 이러한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에게 없거나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하는 강렬한 욕망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오로지 욕망만을 위해 존재하며, 욕망을 위해 다른 이에게 쉽게 상처입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란 의문이 든다. 영화는 재연이란 캐릭터를 통해 순수하기에 더욱 오염될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인간을 보여주며 그녀를 끝까지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의 희망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른 뒤, 재연이 돌봤던 나무가 있던 곳으로 찾아가는 지훈. 커다란 나무는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잃었던 결핍된 존재였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아간 그곳에는 다시 줄기가 자라 있었다. 그 줄기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 세상을 벗어나 나무를 되기를 희망했던 재연은 결국 나무의 일부가 되었다. 신비로운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끝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결핍과 욕망에 눈이 먼 나머지 우리 속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순수했던 재연을 쉽게 오염시켜 버린 것은 그녀 자신의 욕망이 아닌, 그녀를 둘러싼 세상의 욕망과 결핍이었을지도 모른다. 재연을 철저하게 파괴시키는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누군가의 결핍과 욕망으로 인해 파괴된 존재를 보여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지를 보여주는 거울. <유리정원>은 그렇게 은유로 그려진 현실적인 동화가 되었다.

이전 03화 내가 아닌 것은 어떤 것도 '내'가 될 수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