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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온유 Apr 05. 2024

시가 멈춰버린 마음


집에서 직선으로 9분 정도 차를 타고 달리면

바닷가, 그리고 카페가 보인다.


빙글빙글 돌고 싶지만

늘 멈춰있는,

화려한 회전목마가 있는

거대한 카페.


커피만 마실 수 있는 게 아니라,

으리으리한 빵 코너도 있고,

그리고 심지어 시집도 판다.


요즘은 시가 멈춰버린 마음을 생각했는데.

시곗바늘에 걸린 목덜미 탓에

발자국으로 동심원만 그려가는 일상은

사색하는 법을 잊었다.


카페에 시집이라니.

시를 깨나 좋아하던 속사람이 그만 철렁했다.

커피를 너끈히 들이마시고 다시 소득 없는 일이나 하려 했는데

갑자기 시집들이 가지런하게 나를 찌르고 있더랬다.


그래서일까? 오늘 밤은 잠도 안 오고 입도 까칠하다.

기대 없이 열어젖힌 냉장고의 참외가 반갑다.

참외를 보니 연상적으로 참회라는 단어가 겹친다.


애써 외면하며 짐짓 명랑하게 마음에 말을 걸어본다.

참외라니! 10년 타향살이에 실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한국 특산물인데?


접시에 담자니 설거지가 귀찮다.

돌돌 깎아 사과 먹듯이 살살 베어 먹는다.

참회를 할 시간에 참외나 먹고 있는 내가

마음속 단칸방을 빙글빙글 돈다.


그러다,

고운 십자가를 보고 부끄러워하던 한 시인을 떠올린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분께 어떤 의미였을까.


이렇게 통으로 참외를 먹으니 하나도 손에 남지 않는데,

온전한 참회라도 하면 흔적이라도 남을까 봐

손하나 그러모으지 못하는 내가

그분을 향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참회를 드리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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