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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그루 Aug 20. 2023

올드 잉글리쉬 쉽독 순향씨 작업기 <13>

드디어 단합력이 생긴 밴드와 데모 마지막 변경

뮤비 작업이 시작되면서, 우리 밴드는 향후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사실 그동안 '브릿팝' 혹은 '포펑리' 이 두 개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는데, 이 두 장르는 장르적 특성이 도드라지는 장르가 아니다. 특히 브릿팝은 더더욱... 


그래서 우리는 우리 밴드 이미지에서 브릿팝을 덜어낼 필요가 있었고, 조금 더 음악에 힘을 주는 요소들을 덜어낼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내가 그런걸 안 좋아하기도 하고. 사실 이렇게 중간에 방향을 제고하는 과정은 여러번 있었지만, 이번에 정말 강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일부러 무언가를 덜어내는 것'에 대한 동의는 오랫동안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날은 권진이랑 조금 일찍 만났는데, 사실 극 초창기 때는 음악적으로 권진이와의 갈등이 제일 컸었다. 그래서 사실 내가 살짝 말을 꺼냈을 때 권진이와도 다툴 줄 알았다. 그러나 권진이의 반응은 달랐다. 

"나도 듣다보니 형 말이 맞는 것 같아. 나도 형 도와서 같이 설득해볼게."


합정 투썸플레이스에서 내가 화두를 던졌다. 

얘들아 두괄식으로 말할게. 우리 이대로 가면 답없다. 순향씨 내고 싱글 하나 더 내고 계약 끝나면 우리 해체하자


아마 당시 애들 표정일 줄 알았는데...


사실 애들과 언성이 높아질 각오로 이 이야기를 꺼냈다. 이자식 뮤비 만들라고 투자까지 받아놓고 나가라고? 할까봐. 

우리 작업은 항상 이랬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자기들도 팀에 안 묻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이제는 키를 넘겨주겠다고... 사실 나는 저 말이 얼마나 힘든 말인지 안다. 


나는 중간이 없다. 팔로워형 인간일 땐 무조건 아무 생각없이 따르고, 리더형 인간일 땐 무조건 내가 주도하는 상황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완벽히 설계된 상황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듯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밴드 같은 경우에는 내가 리더로 있고 내가 주도하고 싶기 때문에 친구들의 피드백이나 의견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건 내 줏대가 생긴 좋은 영향 뿐 아니라 성격이 괴팍해진 안 좋은 영향도 끼쳤다.


아무튼 다들 밴드에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을텐데, 그걸 내려놓고 위임을 해준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감사히 모두의 동의를 얻어내고, 밴드는 운영방식을 개편한다.


밴드의 공통된 취향을 공유하기 위해 90-00년대 밴드 곡들을 일주일에 한 두개씩 커버하며 비평시간을 가졌다. 아직까진 순향씨 V3였다. Last Nite 비평이 끝나고 다음 합주 때 권진이가 갑자기 화두를 꺼낸다.


형 근데 데모가 여태까지 한 버전 중에서 제일 좋았던 거 같아


이 말을 듣고, 잊고 있었던 내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순향씨는 싸클 데모 속 순향씨였다. 피디님께 데모를 바꿔야겠다는 사과의 카톡을 보냈는데, 의외의 답장이 왔다.


저도 싸클 데모가 더 좋았습니다. 왜 편곡 바꾸시나 했어요. 그걸로 가는 게 좋아보입니다.


이렇게 3년만에 순향씨는 몇바퀴를 돌고돌아 원래의 버전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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