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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었다

by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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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인의 시를 읽었다.



내가 아는 강아지는 폭신한 곳을 좋아한다. 이불을 차곡차곡 접어놓으면 거기가 제 자리라는 듯 그 위에 올라가 눕는다. 이불을 깨끗하게 빨아놓으면 나보다 먼저 그 위에 가서 눕는다. 나 보란 듯이. '난 여기가 제일 편해'라는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반쯤 눈을 감고 지긋이 나를 쳐다본다. 매우 나른하고 편안해 보이는 눈빛이다.

이 강아지는 겨울이면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바닥 중에 제일 따뜻한 바닥을 골라가며 배를 붙인다. 바닥이 뜨거워지면 배를 천장으로 드러내며 두 발을 공중에 띄우고 있다. 가끔 그런 자세를 볼 때면 '저거 사람 아니야?' 혼잣말을 하게 된다. 강아지는 여름이면 시원한 바닥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깔리지 않고 에어컨 바람으로 인해 시원해진 바닥에 배 깔고 누워 세월을 즐긴다. 가끔 저 인생이 부럽다.

내가 아는 강아지는 입맛에 맞는 음식만 먹으려 한다. 사료 위에 토핑이 꼭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북어 큐브가 항시 준비되어 있다. 토핑으로 화식을 섞어주기도 하며, 강아지용 츄르는 당연하고, 영양을 고려해 계란찜, 닭 가슴살 등을 올려준다. 만날 밀가루만 찾는 나보다 건강하게 먹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 강아지는 청결함을 중요시 여긴다. 배변은 실외에서만 해야 하고 자기가 잘 자리는 깔끔해야 한다. 몸에 무언가 묻는 걸 싫어해서 발에 물이 튀면 바로 핥아내고, 예쁘다며 쓰다듬어 주면 털이 엉킨 느낌이 싫은지 바로 털어내며 털 정리를 한다.

내가 아는 강아지는 나를 제일 좋아한다. 독립적이면서 독립적이지 못한 이 강아지는 혼자 거실에 누워있다가도 내가 침대에 누우면 침대 위로 껑충 올라와 나에게 엉덩이를 꼭 붙이고 눕는다. 날씨가 덥거나 춥거나 상관없이 내가 누우면 내 옆에 꼭 붙어눕는다. 안아주는 건 싫어하면서 엉덩이만은 내게 꼭 붙인다. 내가 나갔다 오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을 물고 와서 아는 척하고, 밖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왜 이제 왔냐고 끙끙대며 잔소리를 한다. 내가 바닥에 앉으면 단숨에 달려와 만져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산책을 나가면 나와 함께 발맞춰 걷는다. 내가 가면 가고, 내가 멈추면 멈춘다. 내가 달릴 자세를 취하면 옆에서 함께 달릴 준비를 한다. 운동장에 가서 잘 놀다가도 내가 집에 간다고 소리치면 달려온다. 내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든 나를 찾아온다.

이 강아지는 아침에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을 표한다. 이 강아지는 항상 내가 일어나길 기다린다. 먼저 나를 깨우지 않는다. 내가 몸을 일으켜 앉으면 잘 잤냐고, 밤새 무슨 꿈 꿨냐고 물어온다. 나를 열심히 핥아주며 온 힘을 다해 꼬리를 흔든다. 온몸으로 애교를 부리며 몸을 비빈다. 내가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하루 중 제일 기쁘게, 열렬히 인사한다. 이 강아지는 꿈의 고단함을 아는 걸까 가끔 궁금해진다.

이런 강아지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밖에서 살아도 불편함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포근함을 좋아하고, 맛을 즐길 줄 알고, 사람을 신뢰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이 강아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끝별 시인의 시를 읽었다.

자고 있는 강아지 앞에 쭈그려 앉아 눈처럼 하얗고 풀처럼 거친 털을 한참이고 쓰다듬었다.






국도에 버려지는 순간에도 개는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저를 버리고 떠난 주인의 차를 쫓아 수백 리 먼길을 달려 옛집을 찾아왔다 주인은 이미 떠났으나 개는 옛집 앞에 앉아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낯선 사람들이 쫓아내면 달아났다가 돌아왔다 몇 밤이 지나고 몇 날이 지났다 먹을 걸 찾아다니다 다시 돌아왔다 몇 번의 천둥이 치고 몇 번의 세찬 비바람이 불고 몇 번의 눈이 왔다 어느 겨울, 옛집 앞에서 개는 엎드려 자는 듯이 죽었다 밤새 흰 눈이 쌓였다 봄이 오자 그 자리에 개의 발이 새싹처럼 돋았다 수백 리 먼길을 달려왔던 발바닥에서 피가 흘렀다 붉은 꽃이 가려주었다 여름이 오자 개의 다리가 나무처럼 솟았다 수백 일을 기다리던 슬개골에서 진물이 흘렀다 장맛비가 씻어주었다 가을이 오자 주인을 쫓던 코와 귀가 벌어지고 펼쳐지더니 마침내 떨어져 쌓였다 흰 눈이 덮어주었다 또 어느 겨울, 옛집 근처를 지나던 주인이 눈사람처럼 솟은 땅을 보며 이건 뭐지? 우리 개를 닮았네, 혼잣말을 건네며 어루만졌을 때 그제야 개는 귀와 코와 다리와 발과 하염없는 기다림을 땅속으로 거둬들였다 환하게 녹아내렸다


끝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외곬의 믿음, 너를 향한 나의


_정끝별의 시,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시쓰기 딱 좋은 날』,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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