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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내성적인 나는

얼굴이 빨간 나 2

by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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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그러니까 새벽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아침이라기에도 애매한 오전 5시에 일어났다. 강아지가 자신의 배변 이슈로 인해 창문을 열심히 두드렸기 때문이다. 어서 나가자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문을 캉캉캉 두들겼다. 자기 전에 물을 많이 마시더라니... 어차피 오늘 강아지 접종일이기도 해서 오픈런 병원에 가야 하므로 겸사겸사 몸을 일으켜 산책을 나갔다. 우리 강아지가 다니는 동물 병원은 예약이 안 되는 병원인데 병원에 당일 방문해서 당일 대기 순번을 적어야지 진료가 가능하다. 이 병원은 보통 6시에 문을 열어놓는다. 그런데 오늘은 문이 꽉 닫혀있었다. 불은 켜져 있길래 열려있구나 싶어서 양쪽 문을 번갈아가며 흔들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 싶어서 주변 산책을 하고 다시 왔다. 6시였다. 그럼에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한 바퀴 돌고 왔다. 그곳엔 나 말고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 더 와있었다. 그분이 계속 서있길래 아직도 문이 안 열렸구나 하고 다시 또 건물 한 바퀴를 돌았다. 그분이 계속 서있길래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문 아직 안 열었죠? 제가 아까부터 확인했는데 안 열려있더라고요."

그분이 대답했다.

"어머, 그래요? 보통 이 시간이면 열어 놓는데 다른 사람들도 안 오고 이상하네요."

새벽의 힘인 걸까. 유난히 내성적이던 어제의 나는 사라졌다. 오늘은 천연덕스러운, 외향인인내가 나타났다.

"원장님이 이 건물에 사시는 거 같던데.. 그리고 아침마다 청소하러 나오시는 분이 어머니 같으시더라고요."

술술 스몰 톡이 시작되었다.

"그래요? 아 맞아요.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 근처 사시죠?"

"네네. 맞아요"

그분이 나에게 사는 곳으로 물어보자 갑자기 느낌이 왔다. 스몰 톡이 깊은 톡이 될 거 같은 느낌. 나는 뒷걸음질 쳤다. 강아지를 핑계로 덤불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병원 문을 흘낏거리며 문이 빨리 열리길 간절히 바랐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병원 앞에 차 한 대가 섰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으러 온 사람이었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도 문을 한 번 덜컹이고 어머 왜 아직 안 열렸지? 이렇게 말하겠지' 추측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문이 열리는 게 아닌가?! 나와 함께 덜덜 떨며 시간을 보내던 그분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정말 눈이 땡그래졌다. 어머 어머 문이 왜? 갑자기 왜? 분명히 닫혀있었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었는데? 내가 몇 번이고 문을 흔들었을 땐 열리지 않았는데??????????????? 물음표들이 머릿속에서 펼쳤다. 정말 황당해서 입이 딱 벌어졌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분과 나는 서로 어이없어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분과 나는 병원에 나란히 들어섰고,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었다.

"이따가 뵐게요.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말했다. 병원을 나서면서도,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게 뭐야.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자동으로 시간 되면 문이 열리는 시스템인가? 시간에 맞춰서 문을 한 번 더 흔들었어야 하는 것이었던가' 머릿속에 물음표의 향연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는 추억이 하나 생겨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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