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머리를 잘랐다.
머리카락이 어깨 선을 넘을락 말랑한 상태였다. 기존 스타일은 빗자루마냥 층이 많았던 터라 머리가 지저분해 보였다. 층을 없애고 싶어도 다 잘라버리면 짧은 커트머리가 될 게 뻔했다. 그래서 참고, 어느 정도 기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잘라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머리를 자를 '시기'가 온 것 같아 미용실에 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미용실 예약이 귀찮았던 나는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스마트폰에 미용실을 검색하고 미용실 예약 버튼을 터치해서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고를 그 기회.
그러다 우연이도 길거리에서 미용실 원장님을 만났다. 이거슨 바로 자만추?!
강아지와 산책하던 중 우리 강아지와 비슷한 크기에 같은 털 색상을 가진 친구를 만났다. 이름은 은비라고 했다. 털색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은비는 이제 막 한 살이 된 친구라서 깨알 발랄했다. 우리 강아지 한 살 때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 강아지도 은비를 보고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둘이 상성이 잘 맞는구나' 하며 견주 두 명은 흐뭇하게 그들이 노는 걸 지켜봤다. 그러다 스몰톡을 시작했다.
"어쩜 얘는 이리 얌전해요? 은비는 천방지축이에요. 힘도 어찌나 센지 감당하기 어려워요."
"저희 강아지 한 살 때는 이불이란 이불은 죄다 뜯어놔서 이불을 계속 사야 했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전처럼 이불을 뜯거나 무언가 부시지 않아요."
"어머, 지금 은비는 인형이란 인형은 다 뜯어놔요."
"아이코, 개춘긴가봐요. 호호. 그래도 두 살쯤 되면 얌전해질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이 주변 사시나 봐요."
"네, 이 근처 아파트 살아요."
"저는 저어기 골목에서 미용실 해요."
"앗, 그럼 지금 머리 자를 수 있나요?"
"네. 자를 수 있어요."
"그럼 지금 자를게요."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 강아지, 은비 강아지, 원장님, 나 이렇게 넷은 나란히 나란히 걸어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흐뭇했다. 미용실 원장님도 같은 마음인지 '어쩜 저리 예쁘냐'를 남발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 이후로 원장님과 나는 강아지에 대한 여러 사담을 나누고, 각자 강아지의 배변활동을 위해 흩어졌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사회성이 많이 늘었다.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소리 내서 인사하고, 상대 견주분에게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정한 인사를 전한다. 전에는 지나가던 사람과 멈춰 서서 대화를 한다는 거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고 사람들을 피해 다니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젠 그렇지 않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상대방의 말에 호응을 하고 밝게 웃기도 한다. 이런 나의 변화를 보면 나에게 우리 강아지는 정말 복덩어리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머리를 잘랐다. 나는 동글동글 짧은 단발이 되었다. 마음에 든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