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꿈을 닮아가는 우리 l 지금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학창시절 뒷이야기: 대학정보, 입시정보 관련 노트가 사라지다.
고3때의 일이다. 맨 앞에서 문 앞을 지키며 반에서 가진 별명이 '문지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선생님이 나가실 때마다 문을 열어드리고, 들어오실 때 노크를 하면 다시 열어드려야 하는 아주 귀찮은 자리에 배정이 되었다. 당시,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내성적인 나에게 많은 리더 자리를 추천하시기도 하셨다. 그 중 하나가 '생각노트'를 선생님 자리에 옮기는 일이었다. '생각노트'란 시사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다양한 의견을 정리한 노트였다. 한 반에 30-40명 정도가 생활하니 그 수첩의 수도 그러했다. 30-40개가 되는 수첩을 옮기고 나면 아주 교복이 땀으로 젖어 힘들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문지기 생활과 수첩옮기기 리더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는 어느날, 내가 책상에 둔 대학입시정보 관련 노트가 사라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에는 그 노트에 정말 필요한 정보들을 자세하게 적어놓아서 다시 적으라고 하면 적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정보들까지도 다 적어놓은 노트였다. 그 노트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문득, 이 자리에 놓고 선생님 자리에 갔다 온 사이, 도대체 누가 가져갔을까?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고3시절의 생활을 그렇게 망나니처럼은 하지 않아서, 나름 좋은 기억으로 생각하려고 했는데 어찌되었든 30-40명의 친구 중 한 명이, 아니면 다른 반에서 놀러온 친구들이, 아니면 청소를 하다가 내 노트가 떨어졌을 때 어떤 친구가 노트가 쓰레기인줄 알고 버렸을까?라고 생각하며 다양한 실종 경로를 생각해보았다.
처음부터 그런 중요한 노트를 왜 책상에 버젓이 올려놔서 노트실종사건을 만들었는지, 지금도 후회가 된다. 그 노트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었더라면 종이문서를 되짚어보면서 추억에 젖는 습관이 있는 나에게 아주 좋은 추억의 자료로 남아있었을텐데.. 하고 후회도 많이 했다. 당시에는 없어진 노트를 대체하려고 많은 노력을 재투자 하였다. 꼭 필요한 정보들은 다시 작성해내기 시작했는데, 큼지막한 중요한 정보들은 일단 내 머릿속에서 저장되어 있기에 다행이었다. 그런데 다시 노트를 작성하면서도 친구들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였다. 누군가는 나의 목표에 대한 열정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이고, 더 과격하게 말하자면 누군가는 나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노트에 깨알같은 정보들이 있어서 잃어버릴 당시에 충격은 매우 컸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의 결정이 때로는 종이 한장으로 결정되듯이, 그 중요 정보들을 잃어버림으로써 내가 원하는 어떤 목표들을 놓치게 되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은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항상 고민하고 머릿속으로 되내며 기록했던 노트이므로 복구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다시 정보는 찾아가면 되니까 너무 큰 상실감에 젖어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계속적으로 정보를 찾고 장기기억으로 저장된 머릿속의 기억들을 떠올려내어 첫 노트 만큼의 만족감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나만의 또 다른 노트가 새롭게 탄생하였다. 그래도 그 노트에 대한 미련은 항상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슬픈 '문지기'시절의 추억이 있기에,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은 자주 꺼내보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말로
입시 때만큼 집착한 것이 하나 있는데, 시간에 대한 집념이다. 그러니까 이건 취업, 이직을 준비하면서도 생긴 습관이기도 하다. 이력서에 뭐하나라도 여백이 생기면, 뭔가를 채우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매년을 무언가의 경험으로 채우 지도 못하고, 공모전 같은 시상에서도 큰 결과를 내지도 못한 날들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면 뭐하나라도 쟁취해서 자랑해야하는 성격에,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입이 근질근질하고 자랑거리가 없어짐을 한참 동안 슬퍼하고 있었다. 더불어 자격증 공부를 준비하려고 해도 뭔가 나만 뒤처지면서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재미있지도 않고, 자격증 공부를 위해 또 다시 도서관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자니 넌덜머리가 나서 펜을 아예 놓고 살았다.
그래도, 아예 손을 놓고 있자니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사람들이 '쉬는 기간에 뭐하셨어요?'라고 질문을 할까봐 거기에 대한 나름의 질문을 준비하면서 휴식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에 대한 집념과 강박에 매일매일 짓눌리면서 갖는 휴식은, 육체적으로는 편할지언정 정신적으로는 매우 피곤하다. 차라리 일을 하는 편이 나을 정도의 휴식기간이라고나 할까? 누군가는 나의 휴식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부럽다고도 말했다. 별로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만한 휴식이었다. 시간만 흐르는 가시방석같은 휴식기간이 길어지느니 차라리 노동을 하면서 짧게 쉬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쉬는 날들 중에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나, 사실은 서류작성 준비나 내가 원하는 업계의 시장에 대한 동향을 나름 분석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새롭게 등장하는 시사용어나 사회현상에 대하여도 깊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매일 서점에 가서 제일 두꺼운 시사책을 하나, 두개씩 사오면 그게 그렇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게 아예 손을 놓지 않고 있으니, 나름의 몇몇 좋은 성취를 이룬 적도 많았다. 그러면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 목표에 대한 집념을 갖고 오랫동안 주시를 하고 있으니, 마침내 그 목표를 따라간 결과를 맛볼 수 있는 성취가 오기도 하는구나' 하고 감사의 시간을 가진적이 많았다. 오늘도 많은 여백의 미에 고민하고 있는 어떤 이들을 위해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않아'라고 말해주기 위해 위와 같은 나의 흑역사(?)를 공유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