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퀸븐니 Nov 11. 2022

3층 할머니의 진한 동치미 국물이 그리워지는 계절

<송븐니 나라에 송븐니 곤듀> | 옛날이야기.

송븐니 나라에 송븐니 곤듀는 과거, 맨션왕국 시절 맨 꼭대기 층에 살았다. 그리 높지 않은 4층 맨션에, 오랜기간 평화와 고요함, 또래 친구들의 존재로 인한 설렘과 즐거움 같은 것들이 공존하면서 지금 생각해도 인생 전반적인 시기 중 가장 행복한 시절로 분류되는 그 때의 기억은, 힘들고 기운 나지 않는, 때로는 고되고 지친 삶을 살아가게 하는데 면역증진제같은 역할을 하는 고마운 선물이자 비타민 같은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는 그런 종류의 추억들이다.


입동이 지나고, 겨울을 알리는 계절이 왔다는 것을 코끝에 스치는 차가워진 공기로 느낄 때쯔음 생각나는 3층 할머니의 정겨운 동치미 김치가 있으니... 그 시절에 갈증나는 저녁에 목을 축축하게 적셔준 할머니의 동치미가 유난히 스치는 날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집까지 오르는 계단 길의 골목에 앙증맞게 자리잡고 있는 3층 할머니의 항아리의 모습들이, 그 속에 자리잡는 맛좋고 건강한 음식들을 상상하게 하면서 하루를 마친 귀가길을 즐겁게 했다.


그래서 찬 계절의 바람이 겨울을 알릴 때에는 그렇게 가끔 3층 할머니가, 3층 할머니의 항아리가, 3층 할머니의 동치미가 떠오르면서 입맛 떨어진 날에 다시 입맛이 살아나게 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서 나박김치와 동치미 먹고 싶다며 가족들에게 칭얼대게 만드는 나의 모습을 보면, 추억의 힘은 때로는 아주 강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도 한다. 맛 좋은 김치를 한 손에 들고 오셨던 웃음이 인자하시고, 나보다는 나를 낳아준 엄마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인 그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괜스레 따스해졌다. 진짜 가족같은 할머니의 마음으로 다정하게 다가왔던 그 할머니와 엄마의 현관문에서의 대화 장면은, 어린 내가 보기만해도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보물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스치기만 해도 고드름이 떨어질 것 같은, 약간은 냉정하고 차가운 외할머니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보기만해도 인자하신 웃음으로 자녀들을 챙기시는 따스함을 지닌 이웃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온정을 느끼고, 그 할머니의 온기를 보며 어린 아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바로 평온함과 안정감, 행복함과 다정함 같은 것들이었을 테니... :) 뽀글뽀글 볶음우동 머리를 하시고, 검정 뿔테안경을 쓰시면서 종종, 맛있는 요리가 있으면 주변 이웃들 챙기면서 계단 오르시던 그 모습이 선연히 떠오르는 날들엔, 종종 "엄마, 그 3층 할머니 뭐하고 지내셔?"라며 유난히 친절하신 그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취곤 한다.


겨울이 되어, 엄마는 그 때의 할머니만큼의 나이는 아니지만 어느 새 연차가 쌓이고 노하우가 쌓여서 그 때 할머니가 가져다주신 맛있는 동치미 김치 만큼이나 장사해도 손색 없을 만큼의 맛 좋은 김치를 뚝닥뚝닥 만들어낸다. 그, 맛이 예전에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이웃을 위해 만들어낸 고향의 맛과 비슷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 포근해진다는 걸, 엄마는 내가 말을 하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우리도 과거에 그 3층 할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어떤 누군가와 나누어먹고 싶어했던 그 마음처럼,, 누군가에게 또 나누어주면 어떨까를 생각해보며 겨울이 짙어진 11월에 3층 할머니의 따스한 미소를 떠올려본다.


*3층 할머니의 진한 동치미 국물이 그리워 지는 계절, 에피소드 편은 감동적으로 읽어주세욥~! ^~^*

작가의 이전글 한 걸음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